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 동영상을 하나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느 한국 교회에서 초등학생들을 모아 놓고 방언기도 훈련을 시키는 장면인데 가슴이답답했다. 얘기를 계속하기 전에 한번 그 장면을 간략하게 먼저 보기 바란다.
https://youtu.be/OQZFBH_7tt8
동영상에선 4박자의 빠른 템포 음악이 연주되고 아이들은 교육 받은대로 구령을 외치며 두 손으로 동일한 액션을 취하며 눈을 감고 방언기도 훈련받는 모습이 보인다. 몇명의 교사들이 돌아 다니면서 아이들의 몸을 두두리며 훈련에 도움을 주고 있다.
마치 북한에서 아이들에게 주체사상 훈련시키는그런 장면이 느껴지는것은 나 혼자만의생각일까?
내가 보니 애들은 적게는 7-8살 많이 잡아야 10-11살 …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 철 모르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에게 방언기도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런 훈련을 받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고 손을 흔들고 있는지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하다.
교회의 장로로서 이런 아이들의 교회 할동이 기쁘지 않고 걱정이 되니… 내가 비정상적인가.
이 아이들은 지금 어와나 (AWANA) 프로그램으로 깔깔 웃으며 친구들과 함께 뛰어 다니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거나, 찬양율동을 배우며 폴짝폴짝 뛰면서 솜씨를 뽐내거나, 아니면 전도사님의 구수한 목소리에 빠져 구약 이야기에 눈망울을 굴리며 흥미롭게듣고 있어야 할 나이이다.
이렇게 그들의 나이에 맞게 차근차근 놀며 배워며 기본 신앙의 바탕을 깔아 가는게 정상이다. 삼위일체나 예정설 논할 나이도 아니고, 갖은 미사여구를 집어 넣은 공 기도 하는법 배울 나이도 아니고, 더더욱 영적인 신비를 이해할 만한 나이도 아니다.
이 아이들은 방언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면, 랄랄랄랄~ 하며 대화하려고 다가오는 아이들과 예수님 나 핸드폰 하나 사주세요~ 하며 응석부리는 아이들중 누구를 더 정상적으로 보시겠는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면 <방언기도> 가 아닌 <주기도문>을 차분차분 가르치면 된다.
성경적으로 한번 살펴 보자.
먼저 방언기도 받는 “훈련”이라는 말 자체가 비성경적이다. 방언은 하나님의 선물 즉 은사 중 하나이다. 이 방언 은사는 성령 “충만” 할 때 주체자인 성령께서 내가 원하든 안 원하든 임의대로 강권하여 터지게 하시는 성령 역사의 주권적 증거가 된다.
이 말은, 방언은 내가 “임의”대로 어느때나 언제나 할 수 있는, 마치 MP Player 를 키고 끄듯, Invoke 할 수 있는 그런 기능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 더욱 성령의 은사는 “훈련” 받아 터득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어떤이들은 일단 방언은사를 받으면 어느때 어느 장소라도 내 임의대로 방언기도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면 언제 어디든 … 자리에 앉자 마자 룰랄랄라~ 방언을 한다는 것이다.
나도 1981년도에 “충격적”으로
방언을 받았다. 교회 출석한 초창기인지라 너무 놀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그렇게 확실하게 받은 방언도 그 다음날 내가 “임의” 대로 할려고 하니까.. ㅎㅎㅎ 스윗치 켜면 자동적으로 좔좔 나올줄 알았던 방언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 후 2번 정도.. 한번은 찬양집회에서 한번은 골방 기도때 방언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을 뿐이다).
내 맘 내키면 방언한다는건, 내가 가짜 방언 만들어 babble 하는 것이지 (그리고 나는 그게 진짜 방언인줄 착각하는것이고) 결코 성령님이 말하게 하시는 방언은 아닐 확률이 높다.
사도행전 2장 4절 은 다음과 같은
말씀하고 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방언의 전제조건 (pre-requisite) 이 <성령충만> 과 < 성령이 말하시게 하심> 이라는게성경의 말씀이다. 즉, 성령 받았다고 다 방언하는게 아니라, 어느 순간 내가 성령 “충만” 하고 성령님께서 (어떤 목적하에)
“Initiate” 하실때… 방언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을 건너 뛸 만한, 예를 들면 우리가 하나님과 동급인 아닌 이상, 우리는 감히 성령님을 Bypass 하여 내 임의대로 방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말이 아니다 성경 말씀이다.
사실 여기서 방언도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 오순절 다락방 사건, 가이사랴의 고넬료 사건, 에베소서의 요한 제자 사건등) 순수한 Foreign Tongue
(Language) 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린도서에 나오는 신비로운 방언 (prayer
in spirit) 을 말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즘 우리가 말하는 방언은 거의 후자에 집중되어 있다.
참고로 고린도 교회는 정말 영적으로 말썽과 하자가 많은 교회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간통, 간음, 근친상간, 이혼, 성만찬, 헌금및 이 방언 때문에 파벌과 당파가 생긴 교회이다. 그래서 이 고린도 교회에서의 방언의 진위성에 대해서 학자들간에 이견들이 상당히 있다.
예전에 Toronto Airport Christian Fellowship의 거짓 목사인 존.아낫 (John Arnott) 은 집회하는 도중, 마치 무림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액션으로 (마치 낚시하듯, 마치 무엇을 잡아 당기고 밀듯) 성령을 Force 취급하며 “저쪽으로 간다.. 받아라~ 그쪽으로 보낼테니 준비해라~” 하며 마치 어떤 기운을 (aka, 성령) 자기 마음대로 “부리던” 행동을 보이곤 했는데, 꼭 이런 행동을 하기전에는 ‘Dueling
in Tongue” 이라는 요상한 세션을 갖곤했다.
사이비 부흥사들인 Kenneth Copeland 나 Rodney Howard 등을 포함한 많은 Faith Healer 들 중에는강단에서 상대방과 함께 서서 이 Dueling
in Tongue 을 즐기는 (?) 자 들이 많다.
예를 들면, 내가 상대방에게 아무 의미 없는 (이걸 물론 방언이라고 하지만) “우또레쉬크 꾸아르 또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씨익 웃으며 “쓰미리치키 카카타파타~” 하며 응답한다.
이런 행동이 멋진 (?) 제스츄어를 동반하여 수분동안 지속되면 (당연히 아까부터 아무 의미 없이 Repeat 되는 백그라운드 음악이 계속 연주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어느듯 청중들 (?) 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온 교회안이 열광적 분위기로 고조된다. (깊이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이건 Mass Hypnosis 상황과 identical 하다)
이때에 목사가 무대 앞으로 나오며 위에서 말한 성령을 이리 저리 왼쪽 코너로 오른쪽 코너로 이층 청중들에게 뒷쪽 찬양팀에게 … 날려 (?) 보내는 세션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서운 것은 목사가 청중들에게 손을 들라든지 박수를 치라든지 하는 repeat 되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떨땐 Holy
Laughter 라고 그냥 마음껏 웃으라고 하며 청중들을그냥 툭 건드린다. 그러면 이 Holy Laughter 가 터진단다. 어떨땐 완전히 바닦에 누워서 부끄러움도없이 깔깔거리며 발과 손을 마구 흔들어 된다. 이게 성령의 역사란다. Yeah Right!)
https://youtu.be/9gbpec1jJnk
이런 아무 의미 없는 repeat 되는 행동과 아무 의미 없는 repeat 되는 음악을 장시간 계속하게 되면 자가최면에 빠지게 될 확률이 커진다. (Resist 와 Control 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은 훨씬 더 쉽게 빠질 수 있다.)
짝짝이 두두리며 외우는 천리교의 주문도 있고, “남묘호렌게쿄” 계속 외치는 소위 말하는 호랭교도 있고, 우주 음의 기원이라며 “오옴” 이라는 주문만을 계속 외우는 요가.불교 혼합 종교도 있고 (참고로 조용히 앉아서 “오옴” 이라고 깊고 낮게 소리를 내어 보라… 기묘한 느낌을 받을것이다. 모르고 이것만 계속하면 위험에 다분히 빠지게 된다) 그밖에 불교, 힌두교, 요기명상, 무당굿, 샤마니즘 등등 … 체면효과를 극대화하는 주문들이 수두룩 하다.
어쨋든, 일단 이 상태에 빠지면, Mass Hypnosis 및 Peer Pressure 를 무의식적으로 받게 된다.
즉, 남이 박수 치면 자기도 박수를 치고 싶거나 쳐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평상시 비정상적이고 우습게 보이던 챙피하게 보이던 모든 행동들이 이상태에선 지극히 정상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철 없는 아이들에게 바로 이런 훈련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자세히 비디오를 보면 뒤에 매우 빠른 템포의 의미없는 음악이 계속 나오고 아이들이 의미없는 행동을 계속 하고 있고 (그 애 들도 자기가 왜 이렇게 손을 움직여야 하는지 모를것이다) 의미없는 말을 (아예 좋게 말해 chant 나쁘게 말해 주문 같다) 계속 하고 있다.
이러다가 (미성숙한 아이들이 돌발적 행동 못 하겠는가) 돌발적인 말을 하면 그게 <방언> 이 되고 법석을 떨게 된다. 주위에 아이들은 위에서 말한 peer
pressure 와 경쟁심이 발동되어 자기도 또 이상한 소리를 훙내되게 될지도 모른다.
도대체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려는것인가? 어릴때부터 방언을 해야 된다는 것인가?
성령은 어떤 상황이나 (조용하거나 시끄럽거나) 형태 (기도, 묵상, 찬양…) 에서도 역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인위적으로 방언을 유도하는 훈련은 지극히 비성경적이다. 더군다나 아무것도 모른채 무조건 따라 해야만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강압적 훈련을 한다는것은 더더욱 이해 하기 힘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성령의 은사들이 그 목적이 없이 주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점이다. 모든 은사가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궁국적으론 어떤 면으로든 하나님 사역에 도움이 되게 하는게 이 은사의 특징이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방언의 은사가 주어지면 그 잇점이 무엇이며 그것으로 하나님에게 올려지는 영광이 무엇인가?
나는 10살 먹은 내 아이가 컴퓨터 encryption 을 사용하여 나에게 I
Love You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것 보다는 아빠 사랑해~ 하고 아이답게 있는 그대로 어리광 부리며 말하는게 더 좋다. 아직 까지는.
그가 나중에 커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된다면 RSA 를 쓰건, AES 를 쓰건, 3DES 를 쓰건, 블록체인 인크립션을 쓰건 상관 안 하겠다. 그런데 10살짜리 아이가 … 아빠 사랑해~ 하면 됐지 무슨 방언으로 울룰랄라~ 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냥 놔둬라.. 그냥 놀고 먹고 장난치고 울고 웃게 하라… 그대신 교회에서 사랑하는 법이나 잘 가르치면 된다.
부모형제 사랑하고, 친구들 사랑하고, 교회와 예수님이 좋다는… 마음만 들게 하면 그들 나이에선 성공이다.
나중에 때가 되어 성령님이 은사를 주시면 그때 방언을 하드라도 하면 된다.
방언이 전부는 아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에겐.
고린도 전서 13장 1절이나 묵상하며 생각을 <정상화> 하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놋쇠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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