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Baggy Pants 가 한창 유행했을때가 있었다.
한국에선 <똥바지>라고 불리기도 했을만큼 내가 보기에도 민망한 스타일의 바지였다. 질질 끌고 다니는데 달려가서 끌어 올려 주고 싶은 충동을 들게 한 한시대의 유행물이었다.
레깅스라는 옷도 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잠옷 같기도하고 수영복 같기도하고 운동복 같기도 하고 암튼 묘한 옷이다. 여자들은 편하고 느낌이 좋다고 좋아하고 남자들은 시각적 예술미 (?)가 충만하다 하여 좋아한다.
둘다 다 개인적인 의견들은 다르겠지만, 한 시대의 유행의 물결이라는 점에선 그리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는듯하다. 즉, 내가 싫어해도 나의 취향과 다른 스타일이 존재하는 것이 나에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예술>을 빙자 (?)하여 해괴망측한 행위나 개념들을 공공연하게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 맞다. 예술을 하려면 남들보다 색다른 시각과 개념이 필요한것은 맞다. 남들과 동일한 시각이나 Insight 로 무슨예술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일부 자칭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예술이라는 미명아래 변퇴적 퇴폐적 비정상적 사고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강요(?) 하기도 한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영국을 대표한다는 포스트 모던이즘 예술가인 마크 퀸은 자신의 피 (4.5리터 정도) 를 모아냉각시켜 두상 모양을 만들어 ‘Self’ 라는 제목으로 미술관에 전시한 사람이다.
사그 마이스터라는 포토 아티스트는 조수로 하여금 자신의 온 몸을 칼로 긁어 글자를 새긴것을 찍어 전시한 사람이다. 예술 창작적 고통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한다.
충격적 퍼포먼스 아트스티인 마리아 아브라모비치는 행위예술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학대하고 치장하게 하는 행위예술을 선 보였다.
이상은 그래도 거장으로 인정 받은 예술가들의 행위들이고 이것은 어느정도 ‘선’을 지킨 예술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 행위의 제한도 윤리적 가이드라인도 없는 수많은 예술 행위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심한 행위가 아니냐라고 물었지만 <예술> 이라는 든든한 방패가 항시 있었다. 그리고는 사람들은 그런가… 했다.
요즘 시사고발프로의 타깃이 되고 있는 모 영화감독이 있다. 세계가 인정한 감독이라고 한다.
어쨋든 만드는 영화가 기존 영화 기법과 많이 다르고, 몰입도와 어필성과 작품성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장>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영화의 거장이라고해서 그의 인생과 인격이 거장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영화와 인격은 전혀 다른 별개체이기 때문이다.
영화촬영시 행해지는 방법과 스타일은 감독 고유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체에 딴지를 걸수는 없다. 그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리 괴짜 감독이라 연출기법이 특이하고 다르다고 하여도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범법행위가 정당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배우들이 감독의 장남감은 아니지 않는가. 배우들은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지 감독의 개인적 소유물이거나 욕구표출의 대상자들은 아니다.
연출가들은 떄로는 연출을 통해 자신의 욕구의 대리만족을 얻기를 원한다. 비교할 수준의 경험은 아니지만 나도 예전에 2-3편의 연극과 뮤지컬을 연출해 본 적이 있다.
정신을 안 차리면 때로는 내 자신이 한도 끝도 없이 요구하는 때도 있었다. 내가 요구하는 이상한 연출을 출연자들이 이해를 못했지만 그들은 그것이 연출가의 ‘특이성’ 이라고 여기고 거의 100% 순응하고 만다. 이것은 엄밀히 얘기해서 예술의 갑질이다. 어디까지의 요구가 예술이고 어디까지부터가 개인적 욕망.망상.장난.시험인지 나 말고는 출연자들은 알 길이 없다.
위에서 얘기한 감독은 분명 선을 넘어선 요구를 많이 했을것이라고 추측이 간다. 그것은 때로는 보다 나은것을 향한 Push 라고 연출자들은 자아체면에 빠지기도 한다.
글로는 차마 쓸 수 없는 연출 행위를 많이 요구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렇다 치고 예술가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 사람 자체의 고유 속성이 그런지, 출연 배우와 스텝들을 성적 타깃으로 본 정황들이 많이 보인다. 그것이 사실 이라면 우리는 또 한번 혼동에 빠지고 만다.
교회에서는 엄청 은혜롭게 설교를 하나 집안에서의 행동은 경악스런 목사와, 교회 설교는 잼뱅이나 집안에선 정말 좋은 남편이고 아빠인 목사.. 이 둘중에 당신은 누구를 택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이겠는가?
교회를 운영하는 장로들은 아마도 전자의 목사를 선택할것이다. 은혜 받는 사람이 많고 개인일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니까 라는 관점에서 일단 개인 상황은 뒤로 미루어 두자고 할것이다.
그런데 교회 운영과는 관계없는 그러나 오랜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은 아마도 후자의 목사를 택할 확률이 많을 것이다. (우스개소리다) 그놈이 그놈인데 무능해도 속과 겉이 다르지 않은 목사가 낫지 않겠냐는 생각일것이다.
영화감독이 연출할때와 일상생활이 100% 동일할 수는 없다. 그건 우리 모두가 다 인정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 떄문이다.
그러나 인격의 스탠다드가 반듯한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어느 곳에서 어느 상황이라도 자신의 인격이 반영되는 행동을 할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모든일에 비지니스는 비지니스고 개인일은 개인일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의 인격은 비지니스에서도 묻어 나기 마련이다.
비지니스에서 개 같은 스타일이 항시 보인다면 그의 은밀한 사생활에서도 분명 그런 기질은 보여질 것이다. 비지니스이니까.. 연출이니까 그런 언행을 한거지.. 라는 말은 ..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어느 분야이건 어떤 일을 하건 그 행위의 결과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내가 아무리 가리고 자제하고 은폐하려해도, 결국 드러나는게 인생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은 겉 모습은 안보시고 마음의 중심을 강조하시는것 같다.
그 감독님도 예술이니 연출이니 오해니 라는 말대신에 이번 기회에 정말 자신의 속 마음을 한번 들여다 보고 궤도수정이 필요하다면 그것 부터 수정하는게 옳바른 방향이 아닐까 생각하여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