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어느 장로님은 담배를
무척 즐기셨던 (?) 분이십니다.
일단 주일날 교회에 가면 몆시간은 못 피우는 관계로 교회출발 일보 직전에 진하게 (?) 한대 태우시고 출발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담배 피우시는 분들은 옷을 털고 향수를 뿌리면 그 냄새가 없어진다고 착각을 하시는데 담배 안피우는 사람들은
1 메타 밖에서도 그 냄새를 맡을수가 있습니다.
주일날 화장실에서 만나면 꼭 "이집사~ 어때 냄새 안나지?" 물으실 정도로 사실은 순진하신 장로님.
성경지식도 박식하시고, 교회일에도 충성봉사 하시고, 기도도 열심히 하시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하신 분이시지만 이 담배만은 도저히~ 끊을수가 없으신 모양 입니다.
그런데 이런 흡연자를 보는 우리들의 신앙적 시각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당연히 저 역시 흡연을 하지 말라는 쪽입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잇슈는, 이런 술.담배를
지나친 신앙적 척도로 여기어 상대방에 대한 그릇된 판단과 비판을 한다는 점입니다. 어떨때 보면 영적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이단사설에 대해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을 열어놓는 사람들이 이 술.담배에 관해서는 입에 침을
튀기며 생명을 거는듯한 비판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됩니다.
우리는 이 술.담배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식으로 향하는 신부의 모습을 그려봅시다.
생애에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만약 예식장을 향하는 신부의 마음에 어젯밤까지
같이 보낸 딴 남자가 들어가 있다면 아무리 아름답고 깨끗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해도 그 신부는 가장 중요한 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신랑을 진실되게 사랑하는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나타난 신부의 웨딩 드레스에 약간의 진흙이 묻어 있다면 우리는 이내 그것에 온 시선이 집중되게됩니다.
그리고는 영락없이 질책을 하게 됩니다.
무슨 신부가 예식장에 저따위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는거야 하면서.
당연히 순결한 마음과 깨끗한 드레스를 모두 다 가지고 나타나는 신부야 말로 perfect 한 신부감 일것 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흠있는 드레스를 안보이는 도덕적인 불륜 이상으로 여기게 된다면 어쨋거나 우리는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신부의 태도와 성의에 문제가 없다는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않는 정작 더 중요한 것 이상으로 여기는 그 편견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담배 얘기로 돌아갑니다.
어떤 초신자는 수십년간 즐기던 담배를 아마도 아직도 끊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서 담배를 완전히 끊은 다음에야 비로서 교회로 나오라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담배 못 끊은 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담배 피는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내가복음 3장 16절에 적혀 있습니까?
우리는 이 술.담배 문제를 이제는 <개인적
차원에서 조속히 고쳐야 할 사항> 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루시퍼의 영적인 형제다, 우리도 하나님이 될수 있다,
구원으로가는 길은 다양하다. 성령은 우리가 마음대로 부릴수(?) 있다 "라는 등의 엄청난 이단사설 과 <같은> 레벨로 이 술.담배 문제를 취급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술.담배 하는 성도들을 혐오 하시는 성도님들, 여러분들은 그러면 어떻게 세상을 전도하시려 하십니까.
창녀와 세리등과도 잘 어울리셨던 예수님도 그러면 정죄의 대상입니까?
제발 술.담배를 구원의 문제와 같은 레벨로 여기지 맙시다.
그런 secondary issue 에 매달리지 마시고 이단사설이나 음욕이나 가식과
같은 횟칠한 자신의 마음부터 정죄해야 할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나쁜 버릇을
못 버리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권면하고 기도할것이나 절대로 그들을 멀리하거나 정죄하지는 말아야 할것 입니다.
뭐.. 같이 따라 하라고 (?)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이승만 박사, 김구, 이상재,
안창호, 조만식 선생, 이준 열사 같은 분들도
존경받았던 기독인들이었으나 큰 죄 (?) 즉 담배를 피우셨던 분들 입니다.
마지막으로, 반가운 소식 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그 장로님 .. 네 드디어 담배를 끊으셧다는 엄청난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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