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Delicate 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가짜가 진짜의 언행을 했을때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라며 원척적으로 그 가능성을 일축하는 사람들도 많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고, 삼벙 (Samvung) 이 삼성 (Samsung) 이 되는것은 아니다 (실제로 초창기 중국에선 삼성휴대폰 짝퉁인 삼벙이 거의 100%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불티나게 팔린적이 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가짜와 진짜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것 같아도 언젠가는 U-Turn 도 할 수 없는 저점이 생긴다며 가짜의 선한 작용에 대한 가능성을 아예 인정 안하는 사람들도 많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면 거짓말은 절대적으로 나쁜것인가?
교회에서도 남을 속이고 거짓말 하는것을 죄악으로 가르친다. 당연히 성경적이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에도 거짓말은 허용될 수 없고, 그런 거짓말은 절대적으로 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가?
예전 일본 강점기 시절, 독립군으로 암약하던 어떤 사람이 일본순사들에게 쫒기어,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가려고, 한 밤중에 자기 집에 잠깐 들렀다가 일본 순사들의 급습을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기지를 발휘한 아내 덕분에 그 독립투사는 장독뒤에 숨게 되었는데, 한 일본 순사가 어린 아이를 붙잡고 다정한 어조로 물었다.
“얘야~ 너 거짓말 하는것은 나쁜짓인거 알지? 니네 아빠 지금 이 집에 있지?”
이 상황에서 이 아이가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되는가?
거짓말은 절대적 악이다… 라고 배운대로… 우리 아빠 저기 장독대 뒤에 있어요… 라고 사실대로 얘기 해야 하는가 … 아니면 … 우리 아빠 여기 없어요… 라고 거짓말을 해야하는가?
어느것이 옳은 것인가?
아마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 망설임없이… 거짓말을 할 것이다. (나만 그런가?)
거짓말을 하는데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어떤이는 White Lie 어쩌고 저쩌고 하며 상황에 따라 허용되는 거짓도 있다… 라는 것을설명하려고 애를 쓴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우리의 일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런 White Lie 투성이다.
아내: 여보~ 이 된장찌개 맛이 어때?
남편: 어~ 기막힌데 (그런데 이게 된장찌게냐 된장국이냐?)
여친: 자기야~ 오늘 나 이뻐?
남친: 당근이지.. 김태희가 울면서 도망가겠다 (그게 화장이냐 분장이냐?)
고객: 이 중고차 진짜 사고도 안났고 새것과 다름 없다고요?
판매원: 제가 보장해 드립니다 (에~ 한번 크게 뒤집어 지는 사고가 났고, 아마도 2달 안에 자동분해 될겁니다만..)
환자: 제 몸속의 암 상태가 심각한건 아니라구요?
의사: 걱정하지 마세요. 심각한 상태는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아무런 손 쓸 방법이 없네요~)
약속시간에 늦은 친구에게 몇번 전화하니… 첫번째도 두번째도 세번째도… 거의 다 왔단다. 그게 30분 전 얘기다. 이것도 엄밀히 따져 거짓말이다.
방 뺀다고 다구치는 집주인에게… 이제 곧 돈이 들어 온다고 무마하지만 돈 들어올 길이 없는 .. 세입자의 말은.. 이것도 엄밀히 따져보자면 거짓말인 셈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이 세상에 거짓말 없이 진행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이 거짓말은 선의건 악의건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습관속에 숨겨져 있다.
어느 교회에 젊은 목사가 있었다.
젊으니까 모든 분야에 열정이 뜨겁고 말씀도 뜨겁게 외친다. 선과 악을 성경대로 곧이 곧대로 선포한다. 이런 목사를 성도들은 좋아한다. 이것 저것 눈치 안보고 무엇보다도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위선이 없는 목사라고 …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주일 예배때 은혜를 듬뿍 받는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아파트에서 교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 젊은 목사 부부가 … 그들도 인간인지라… 사소한 일로 그만 말다툼이 벌어졌다. 고성언쟁이 오가고 아이들이 울고 급기야 이 목사는 … 에이.. 내가 이런 상태로 설교를 하냐.. 하며 마치 드라마 속의 장면처럼 차를 끼이이익~ 유턴 시켜버렸다.
그제서야 사태에 당황한 아내가 울며 불며 … 그래도 목사가 주일예배를 빠지면 어떡하냐… 며 간신히 간신히 얼래고 달래어 해서… 시간에 가까스러 맞추어 교회에 도착했다.
무슨 정신이 있겠는가… 그 상태 그대로 … 허겁지겁 강단에 올라섰다. 이판 사판 심정으로.. 주여~ 삼창을 했을것이다.
그런데 그날 대박이 났다.
설교 도중 여기 저기서 흑흑~하는 울음 소리가 들리더니.. 아멘 소리가 높아지고.. 눈들이 여느때완 달리 반짝반짝이며 설교에 집중한다.
예배 마치고 입구에 서서 성도들과 악수를 하는데, 모두들 다가와서 … 오늘 너무 은혜받았어요 목사님.. 하며 끌어 안고.. 엄지척을 보이며… 힘있게 악수를 하고들… 야단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말하기 좀 멋하지만… 그의 아내는 뒷쪽에 앉아 남편의 설교를 들으며… 속으로 다음과 같이 작은 목소리로 … 한 마디 내 뱉었다고 한다.
“너나… 잘 하세요~”
암튼… 이게 어떻게 된것인가.
그러면 (진짜다 가짜다… 악이다 선이다 라는) 상황에 관계없이 … 독립적인 ‘선’이라는결과가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자세히 살펴보면, 그날 그 젊은 목사가 차 안에서 저질른 (?) 언행은 분명… 하지 말아야할 ‘악’ 에 속한다. 그런데 속이야 어떻건, 강대상 위에선 분명히 ‘선’ 한 성경말씀을 전했다. 그랬더니… 그 결과는 일반적으로 보아.. ‘선’의 결과가 나왔다.
여기서 나의 개똥 철학 (or 신학) 이 나온다. ㅎㅎㅎ
이것이 ‘곱하기’ 의 원리이고, 여기서 Multiplier 는 0 (zero) 이며, (개똥) 신학에선 이 Multiplier 가 ‘선’ 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먼 말이냐.. 하실 분들을 위해… 설명해 보자면.
123 X 0 = 0 에서
앞의 123 은 Multiplicand (피승수) 라고 하고, 0 은 Multiplier (승수) 라고 한다.
그런데 피승수 값에 관계없이… 승수가 0 (제로) 면… 그 결과는 항시 0 (제로) 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0 (제로) 는 위에서 말한대로 ‘선’ 이라고 나는 정의 한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 말은 어떤 피승수든 (어떤 상황 = 싸웠던, 거짓이든, 화가 나든, 우연이든…) 그것이 0 (제로 = ‘선’) 라는 승수를 만나서 곱해지면… 그 결과는 신기하게도언제나 0 (제로 = ‘선’) 이 된다는.. 개똥 철학이다. ㅎㅎㅎ
약간 조크 비슷하게 말한, 이말이 100% 맞는건 아니지만… ㅎㅎㅎ 상당히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이게 어느정도 맞기에 그래도 우리 교회가 은혜 받고 잘 운영이 되는것이다.
정말 티끌만큼도 악이 없는 선한 마음으로 설교를 해야 ‘은혜’ 라고 하는 선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라면, 그 어느 목사가 은혜를 끼칠 수 있겠는가.
인간이기에, 어질러진 마음, 준비되지 않은 마음, 나쁜 마음, 분한 마음… 여러가지 환경의 마음으로 전하는 설교도 … 설교 자체가 선한 것이기에… 선한 열매가 분명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적으론, 히브리서 4: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에 기반하여, 설교자의 ‘제량’ 과는 관계없이 말씀 자체의 ‘능력’을 우리는 강조하기도 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이말씀을 또 오용하여 성의 없이 준비없이 … 그저 말씀만 투욱~던져 놓고 은혜는 각자의 믿음의 ‘몫’이다 라고 하시는 목사님들도 있음이 …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어쨋든.. 사실은 사실이다.
그런데 곱하기 원리만 믿고, 피승수에 대한 노력을 안 한다면, ‘곱하기’ 원리가 ‘더하기’ 원리가 될 수가 있다. ㅎㅎㅎ
곱한다는것은 어떤 숫자가 승수의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그 승수화 됨을 말하는데, 더한다는 말은 자기 숫자는 안 변하고 뒤에 오는 숫자가 그냥 더해진다는 … 혼합된다는 … 말이다.
자기는 안 변하고 뒤에 오는 숫자가 그냥 자기 숫자에 더해 진다는 것인데, 굳이 얘기하자면, 자기 버릇 자기 악행을 고치지 않은채, 선한 거룩한 것들과 혼용하여 공존한다는 말이다.
이경우엔 더하기 원리가 적용되어, 악 + 선 = 선이 되지가 않는다. 짬뽕이 될뿐이다.
위에서 예로 들은 젊은 목사는, 그분이 주일 아침에 잠시 무너진 모습을 보였었지만, 그분의 일반적인 삶 자체가 이미 선한 삶이었기에, 곱하기의 법칙이 적용되어, 선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겠지만…. 만일 내가 매일 악한 언행을 일 삼다가, 어느 날 선한 말을 한다고 해서 곱하기 법칙이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이 경우엔 오희려 더하기 법칙이 적용되어 … 그 결과물은 예측할 수 없는 … 짬뽕 상황이 될것으로 보인다. ㅎㅎㅎ
요즘 잇슈가 되고 있는 명성교회.. 그리고 사랑의 교회.. 그 교회들도 이런 시각으로 볼 수 있다.
편법을 쓰고 거짓말과 불투명한 운영 방법들이 분명히 보이고, 정말 고칠것들이 많은데도, 그런데도 그 안에 은혜가 분명히 있는것은 바로 이 곱하기 법칙때문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적어도… 이 ‘승수’ 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가정하에선… 감사하게도 그 결과는 선의 결과가 충분히 가능하다는게 … 나의 생각이다.
우리 모두의 피승수는 너무나 고칠게 많다.
우리들 자체가 악과 거짓과 위선 투성이 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승수> 를 절대적 진리에 기반을 둔다면, 더럽고추악하고 악한 <피승수>의 모습과 상황과는 관계없이, 선한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우리에겐 정말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매일 거짓말만 하고 위선적으로 생활하다가… 주일 날 교회에서만 .. 하나님 말씀 붙잡고 .. 선한 것을 기대하자고.. 말하는 것은 … 당연히 아니다.
선한 삶이 원칙이 되고 그것을 많이 축적해 놓을 수록, 혹 나중에 내가 넘어지고 흔들릴그때에도 변함없이 ‘선’을 생성할 수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셈이다.
선을 심어 놓아야 잠깐 흔들려도 선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선을 심어 놓는 생활을 하자!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