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회사부서로 새로운 엔지니어가 전근해 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직도 안 잊어 버렸는데 Stewart Clayton 이었습니다.
그의 출현으로 인해 Good news 와 bad news 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굳 뉴스> 는, 이 친구가 저와 같은 사무실 (2인 1실 임)
을 쓰게 되었으며 더우기 이친구는 대학에서 성악과 작곡을 전공한
(나중에 컴퓨터를 다시 공부 했음) 그리고 그 당시 활발하게 합창단과 스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배드 뉴스> 는 , 이 친구가 저의 오피스 메이트가 되었다는 사실과,
이친구는 "호남여 호랭개기 호남여 호랭개기 호남여 호랭개기..." 를 외운다는 사실 입니다.
즉, 이 친구는 독실내지는 광신적인 소위 말하는 <남 호랭교> 교인이라는 사실이죠.
그러니까 조금 정리를 해보자면, 한 사무실을 두 명이 쓰는데...
- 한명은 기독교인 한명은 남 호랭 불교인,
- 한명은 교회에서 지휘하고 한명은 불교사원에서 지휘하고,
- 한명은 크리스챤 음악을 만들고 한명은 불교 음악을 만들고....
이정도면 대충 짐작을 하시겠습니까.
<강적> 을 만난 겁니다.
이친구를 보면.. 어떨땐 꼭 호랑이 같게 보입니다. 눈이 부리부리 하고 머리도 뒤로 벗어 넘긴게 마치 스티븐 시갈 (영화배우 아시죠?)
같습니다.
처음 며칠 간은 .. 별 말을 제가 일부러 안 했읍니다.
속으로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기도를 하고 며칠을 별른 다음 .. 드디어 음악 얘기부터
꺼냈습니다. (그때 자기의 음악적 백그라운드를 얘기 하더군요)
음악에 관한한 상당한 수준임을 알수 있었습니다 .
이렇게 어느정도 마음이 서로 풀리자, 드디어 제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너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아무것도 없다!>
<엥? >
간결하고도 기막힌 대답에 잠시 제가 아찔 한 순간 다시 내공을 모아 저의 반격이 시작 되었는데 글세.. 그날 아침 9시 반 부터 12시 경까지
(일도 안하고) 2시간 반 동안 열띤 공방전을 벌였다는 겁니다. 사실.. 솔직히.. 저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이런 분야의 토론 .. 무척 좋아하고 .. 또 대학생들에게
apologetics 세미나도 꽤 한 편이며 또한 성공률(?) 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길래
나름대로 자신있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와의 대화에서 느낀 것은 마치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그런 느낌
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논리의 기준 과 표준이 무너진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너는 니가 마음대로 못하는게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 태어난 것.>
여기에 대한 그의 대답은 <내가 원해서 내가 정해서 미국에 태어났는지 니가
어떻게 아느냐>
또는 <산에서 발견한 시계를 보면 반드시 그 시계를 만든 주인이 있다고 생각하듯이, 우리 인간도 만든 창조주가 있다고 생각 안 하느냐> 고 물으면 <그 말이나 .. 내가 나무에서 왔다고 하는 말이나 매 한 가지다..> 등등...
영이 꽉 닫혀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이때는 그 어느것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지독한 거부감만 생기게 되는거죠.
더우기 놀라운 것은 이 친구가 예전에 감리교 그리고 침례교등 거의 15년 이상을
교회에 출석 했었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주요 기독 사상 그리고 성경 지식이
웬만한 신학생 이상으로 대단 하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는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결코 없었다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우선 여기서 끝납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하면서
이 친구를 공략 할 것 입니다)
오늘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고 싶은 것.
이 친구를 보면서 우리의 찬양 생활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이쁜 음성으로 그리고 감동적인 율동으로 주님을 찬양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분과의 만남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우린 기타나 키보드나 색소폰등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색소폰도 진한 감동을 줄수 있읍니다.
키보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영적으로 죽은 고목이라면 그 고목에서 생명의 찬양이 나올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분의 수분과 영양을 어린아이가 젖을 빨듯 빨때,
나의 찬양은 생명력을 가지고 그분을 기쁘게 할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회중들에게 은혜로운
그리고 살아있는 감동으로 느껴지게 될 것 입니다.
맞습니다.. Stewart 는 남에게 자신있게 웅변할 만큼 상당한 성경지식과 음악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지식 없는 산골의 할머니가 음악 지식 없는 시골의 어린 아이가
어쩌면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할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Stewart 가 못가진 ..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직접 경험 했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론적인 찬양이 아닌 몸으로 경험한 산 찬양을 들이기 원합니다. 내 몸이 움직여 찬양의 역사가 일어나는게 아니라 찬양이 나의 몸을 움직일 때 진정한 찬양의 역사가 일어날 것 입니다.
새롭게 강적을 만난 저에게 여러분들 많은 기도 부탁 드립니다.
"호남여 호랭개기 .." 가
"할렐루야. 아멘." 으로
변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