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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Facebook 칼럼(36) – 보스톤에서의 추억2024-06-28 16:03
작성자 Level 10

왜 그런지 난 <보스톤을 그리 좋아 하지 않는다. (ㅎㅎ 보스톤에서 이 글 읽을 몇분 계실텐데 그렇다고 저하고 폐친 꾾지는 마세요… ㅎㅎㅎ)

정확히 얘기해서 Boston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라별로 좋은 추억이 없다는 얘기다.

2007년에서 2009년 사이에 보스톤 남서부쪽 Norwood 라는 동네에서 직장 관계로 약 2년간 혼자 기러기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Newton 쪽이나 유학생들이 많은 Cambridge 쪽에서 남쪽으로 꽤 떨어진 동네다

2007년 봄날 그 당시 약 20만 마일을 넘은 은퇴 직전의 Isuzu Trooper 를 끌고 인터스테이트 80번과 90번을 번갈아 타며 덴버에서  3일정도 잡아 여기 저기 구경 (?) 도 하면서  거의 2천 마일 드라이브를 하여전화로 구해 놓은 Norwood의 어느 그로테스크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덴버랑은 전혀 틀렸다낮설고 아파트 자체가 지은지 100년이 넘은 낡은 그러나 엄청나게 큰 커뮤니티 아파트였다.  차에 싣고간 최소 생존 살림(?)을 빈 아파트에 옮겨 놓으며… 이게 먼 짓인가 후회 (?)를 하기도 하며휴대폰에 시그널이 잘 안 잡혀 심히근심하였던 생각이 난다.

 

첫날부터 스트레스가 쌓였다.  바로 위층에서 걸어 다니는 소리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떠드는 소리기침하는 소리음악 소리… 죄다… 100% 들려 왔다.  100년 넘은 아파트니 방음이 되었을리가 없다그래서 난 한국의 중간소음 때문에 생기는 사건들을 잘 이해 한다나도 일 낼 (?) 각오로 이층을 찾아 간 적이 있다내 호적에 빨간 줄이 아직 없는 걸로 보아 그날 나는 극도의 인내를 발휘했던지 아니면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 (?) 했던지 둘중 하나 일 것이다.  아니면 이층에 사는 그 우락부락하고 소도독놈같이 생긴 인도 아저씨 두명의 건장한 체격에 눌려 “안냐세요~ 공손하게 인사하고 내려왔는지도… 모른다ㅎㅎ

암튼이런 생활을 근 2년 했으니 나도 지독한 인내(?)의 사람이겠지만한편으론 가족들 먹이고 살리려고 버티는 (?) 내 자신이 때로는 측은해 지는것을 느끼기도 했다ㅎㅎ

 

일단 인근에 한국 마켓이나 한국음식점은 없었다.

탐색을 한 결과 약 10분 거리에 그마나 Thai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는데 좁은 내부에 탁자가 3개 딸랑 있는 협소한 곳이었지만 이후로 나의 가장 즐겨 찾는 음식점이 되었다.

 

원거리 탐색을 또 해보니 약 40여분 후리웨이로 가면  Natick(?) 이라는 동네의 쇼핑몰 인근에 한인 마켙이 한군데 있었고황송스럽게도 그 인근에 ‘미나도’ 라고 하는 Sushi Buffet 가 있어서그나마 나의 큰 위안(?)이 되었다.

 

일과는 진짜 다람쥐 쳇바퀴 그대로다아침에 아파트에서 약 15분 떨어진 회사에 출근저녁 5시경 퇴근아파트에서 밥해 먹고, PC 이용해 한국 프로그램을 포함한 이것 저것 보다가, Online Game (내가 게임을 좋아해서기 보다 내가 게임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직업상조금 하다가자는거다.

주말엔 아파트 안에 있는 세탁기에서 그간 밀린 세탁하고위에서 말한 한인마켙에 가서 장보고스시 부페나 한국음식 사먹고.. 그리고 가끔 약 40분 떨어진 쇼핑몰에 가서 영화 보고.. 그것이 일과였다.

 

그당시 나는 교회를 두군데를 다녔다.

첫 교회는 제법 크고 잘 알려진 교회였고 매우 보수적인 분위기였는데,  훌륭하신 목사님과 성도들이 경건하게 에배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현대 예배에 관한 세미나를 몇번 했고 찬양팀을 새롭게 기획.담당 하라고 제의를 받던 중개인 사정에 의해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솔찍히 얘기해서 교회 분위기가 내 스타일과는 잘 안 맞는) , 다음으로 가게된  교회는 이와는 전혀 달리 성도숫자가 20명도 채 안되고 매우 casual한 그러나 목사님과 성도들의 열정이 대단한 조그마한 교회였다

목사님께서 나에게 선뜻 설교까지 (번갈아맡기시려 제의 하실 정도로 소탈하시고 선교사 사역을 오래 하셨던 그리고 상대를 믿어 주신 훌륭하신 분이셨다.  그 교회에는 동부에서  유명한 버클리 음대생들이 몇명 찬양팀 사역을 담당하고 있었고나는  그 찬양팀을 맡아 기획.리드했고예배후 청년들 성경공부와 훈련을 담당하게 되었다.

보다 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찬양팀 변혁의 시도의 일환으로 건반 전공의 자매를 드럼을 시켰다.  원래 음악의 기량과 끼는 고수인데 드럼이라는 새 분야 기능을 수행해야 하니일단 나의 말을 잘 들었고 (ㅎㅎ 일단 내가 그 자매보다는 드럼을 잘 치니까.. ㅎㅎ동시에 음악성 자체는 원래부터 최상이었으니… 그 결과는 놀라웠다다 의도된 기획이었다.

 

우리는 예배가 끝나면 아래층에 내려가서 (정말 개인집 부엌정도 크기의친교실에서 준비해간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교제를 나누었다.

내가 외로운 객지에서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받은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보스톤의 겨울은 장난이 아니다.  후리웨이는 일단 타면 덴버와는 달리 좌우에 뭐가 있는지 나무숲에 가려 보이지가 않는다.  길은 빙판이고 눈과 얼음은 겨울철 내내 녹지 않고 있다한번 길을 놓쳐 다시 후리웨이를 타려면 보는대로 그리 싑게 길이 나오질 않는다.  보통 교차로에 길에 4개가 정상인데 보스톤은 6 8개 교차로도 있다.

실지로 나는 한 가정에서의 모임을 3번 갔었는데 갈때마다 길을 해맸다.

어쨋든 낯선 객지에서 나는 작은 교회를 섬기며 작게나마 사역을 다시 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엔 employee 들의 편리를 위해 어떤 택시회사와 서비스 용역을 맺고 있었는데나는 가끔 외국 출장 (한국/러시아이나 덴버집에 다녀올때면 이 택시를 이용하곤 했다.

미리 이메일로 연락해 놓으면 이 친구가 공항까지 나와서 픽업을 해 준다.

이 친구는 레바논에서 온 친구였는데…거짓말 안한다… 차 트렁크에 (내가 보기엔기관단총 같은 무기를 항시 넣어두고 다닌다체격은 진짜 멀리서 보면 격투기 선수 Fedor 같다.  운전을 시작하면 나는 눈을 감는다.  한국 총알택시는 저리 가라다속으로 기도만 할뿐이다.

그러다가 친해지고 말이 트이고 나는 그가 크리스챤이라는걸 알았다그런데 좀 과격하다예수에 대해 좀 네거티브하게 말하는자에겐 (자기 말로는몇번 총을 겨누며 그런말 다시 한번 더 하면 방아쇠 당기겠다고 까지 했다는 것이다ㅎㅎ

어린애 같이 차근차근 달래면 온순해 지는게 꼭 우리나라 돌쇠 스타일이다.  이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이런 보스톤에서의 생활은 약 2년간 지속되었다.

생활환경은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과 추억들은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초창기에 말도 안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보장된 직업도 없이 미국땅에 무작정 이민온 우리의 선배들을 생각해 보면내가 가졌던 보스톤에서의 약간의 inconvenient 한 경험들은 내가 배가 불러 하는 소리임이 틀림없다ㅎㅎ

그런데 말입니다 (ㅎㅎ) 요즘은 갑자기 보스톤이 그리워 진다는 말입니다.

자주 가던 그 조그마한 태국식당한국 마켙스시 부페조그마한 헬스장분위기 좋았던 영화관회사 옆 맥도날드한동 전체에 나만 빼곤 전부 인도인 이었던 그 아파트보스톤 마라톤 시발점에 위치한 그 교회와내가 평안한 마음을 가질수 있게 해준 또 다른 교회택시 운전사 레바논 람보 아저씨등등…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보스톤이여 기다려라… 언젠간 다시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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