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같은 Mission Impossible
(?) 의 요원이자 동지라고 할 수 있는 마목사님과 덴버에서 K.G.O.D.
(Korean Gospel of Denver) 라는 기독교 시험방송을 수 개월간 진행했던 적이 있다.
2인다역이었다.
방송 플랫폼과 케리어
조사 작업으로부터 방송기획.각본.진행, 포스트 프로덕션 그리고 나중에는 상업광고 마케팅및 제작까지 둘이서 다 해결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것들을 다 감당해 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미디어계의 마이더스
손으로 불리우는 개미 목사님께서 동분서주 땀을 뻘뻘 흘리고 인프라 작업을 하실동안 배짱이 나는 방송프로 기획하고 각본쓰고 진행만 하면 되었다. ㅎㅎㅎ
그 다음은 마이더스
손으로 개미 목사님께서 포스트 프로덕션을 깔끔하게 작업하셔서 드디어 첫 방송을 내 보냈던 기억이 선하다.
그 내용을 아직도
기억한다.
조금 후 그 내용을
얘기하겠지만, 첫 방송이 나간 후 신기해 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 문의를 받았다.
일단 그 당시.. 덴버지역에 한두가지
신문 (일간및 주간) 을 제외하고는 한국인이 한국어
방송을 시도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을 못했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그것도
기독교방송이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리쪽 (기독교…) 에선 크리스천 선교및 문화 사역에 대한 큰 의미가 있는 첫 걸음이었고 일반
교포사회에선 기대반 코웃음반의 시도로 받아 들여졌던 사건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정착을 하기도 전에 폐업 (?) 을 해야만 했지만 역사적 (?) 인 면에선 무척 중요한 기록과 의미를 남겼던 족적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보편화된 시대와는 달리 덴버사회와 교계의 활동을 오직 신문의 (그것도 95%가 고국에서 온 기사들이고 딸랑 몇가지만 이곳 덴버 소식이었다) 단신을 통해 지나가듯
보아야했던 그 시절…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한국어 프로그램을… 차 안에서 듣던 그 희열은 …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시기에 KGOD 주체 주관 협찬을 빌미 (?) 삼아 <콜로라도주 복음성가대회>도 열었고 <한여름밤의 Q> 라는 버라이어티 쑈 프로그램도 제작하여, 그 당시 일주일에 한번 2시간 방영되었던 <한국 TV> 에도 1부 2부로 올려졌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앞서 (?) 나갔냐면 … 우리는 요원 한명을 한인밀집지역 마켙에 불쑥 나타나게 하여 휴대폰 (VoIP) 을 통해 실시간 교민들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기획까지 하였던 기억도 난다.
또한 KGOD 로고송을 만들며 마목사님과 이런 저런 궁리하던 기억.. 그 당시 첫 광고주인 <미도파 마켙> 광고를 위해 CM 송과 네레이션을 제작하던 그날 밤의 광경들… 오로라 남쪽 모 미국교회 한 오피스를
빌려… 방송프로를 제작하기도 하였는데… 짧은 파트 참여를 위해 모였던 동지들이 밖에서 대본들고 기다리던 그때의 모습….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다음
이제 거의 30년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이 덴버에
한인 방송국이 없음은.. 우얀일인고?
또 개미와 배짱이
미션 임파서블 요원들이 출동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ㅎㅎㅎ
자.. 서론은 이제 그만하자.
아까도 얘기한 그
첫 방송때 입체낭독 프로그램중 나온 <옛날 이야기> 코너의 내용이다.
<절영지회> 라는 고사를 들어 보았는가?
아주 옛날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때 (I
think) 장왕이라는 사람이 … 전쟁을 치른 다음 수고한 신하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성대한 음식과 맛있는
술과 흥겨운 춤으로 잔치가 무르익어가던 즈음, 갑자기 광풍이 불어 연회장의 촛불이 모두 꺼져 버렸다.
마침 구름이 잔뜩끼어
달빛마저 희미했던 연회장은 서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때 갑자기 왕의 애첩이 비명을 내질렀다.
누군가가 어둠을
틈타 애첩을 희롱했던 것이렸다!
Boys are boys!
그런데 약삭빠른
애첩은 그 자의 갓끈을 잡아 끊어버렸고 왕에게 이를 고하며 자신을 희롱한 자를 가려내 달라고 하였다.
잠시 생각하던 장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자신들의 갓끈을 지금 당장 끊어버릴 것을 명하였다.
잠시후 촛불이 켜졌지만
결국 애첩을 희롱한 자를 가려낼 수가 없게 되었다.
3년 뒤 초나라가 진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진나라는 당시 중원의
패자이기에 싸움은 쉽지 않았고 적에게 쫒기어 도망가던 장왕이 진나라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할 즈음, 갑자기 한 장수가
나타나 온 몸을 내 던져 피 범벅이 되면서까지 장왕을 구해 내었고, 그 결과로 초나라는 전쟁을 겨우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장수의 놀라운 무예와
용기에 감동한 장왕은 그 장수를 불러 특별히 잘 대우해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나와 나라를 구해주었는가를 물었고 그 장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은 이미 3년 전에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당시 연회에서 전하의 애첩을 희롱한 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그때 대왕의 자비로 겨우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유명한 절영지회의
고사이다.
리더의 <관용>과 빌빠른 <조치> 가 조직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날 장왕이 촛불을 밝혀서 진범을 잡아내 처형했더라면
아까운 장수 한명이 없어졌을 것이다.
일순간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교훈이다.
반면에 타인의 일순간의 실수를 관용으로 용서해
준다면 그 관용의 결과가 되돌아와 큰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신문기사들을 보면 옛날 초등학교시절에 있었던 (멋 모르고 저지른) 가수나 운동선수나 프로듀서의 악행들을 끄집어 내 고발하고 응징하려는 시도들이 (Me Too 라고 한다) 꽤 있음을 본다.
지은 죄를… 저지른 횡포를 … 두둔하려는것은 전혀 아니다.
너도 나도 초등학교때 어른같이 성숙한 분별력을
가졌던 사람들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나는 40대에도 이런 저런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다.
지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그런 과거의 악행들을 … 상대방이 지금에서야 성공하고 이름이 알려진 이 마당에 굳이 밝히고 끄집어 내고 정죄하여 끄집어 내려는 Me
Too 를 곱게만 볼 수 있겠는가?
개과천선하여 지금은 성숙된 성인으로 열심히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도 과거에 철 모르던 시절 실수로 저지른 그 악행의 올무에 다시 묶여… 족쇠를 기어히 매어야만 그것이 정의인가… 를 묻고 싶다.
관용이 필요하다.
내가 용서하면 나도 용서 받는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복수의 끈을 끊어내야 한다.
관용이 그 끈을 끊어낼 수 있다.
정치계나 교계도… 통 큰 관용이 필요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은 옛날 율법시대의 유물이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끊어 놓으셨다.
그런데도.. 눈에는 눈 을 찾는다면 … 그것은 복음의 은혜의 제자들이 아니다.
관용의 어머니가 사랑이다.
관용을 베푸는 것이 사랑의 첫 걸음이다.
관용을 베풀자.
오래전 KGOD 의 첫 방송이 덴버지역에 퍼지며
첫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을때 관용의 메시지가 우연히 방송되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역시 <관용> 이 미덕인것 같다.
관용 만세…. 만만세!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