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진면목은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의 모습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고 한다).
내가 나만의 은밀한 시간과 공간에 있을 때 나의
진짜 모습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여럿이 어울릴땐 묻혀갈 수도 있고 하나님이 혼동하셔서 (?) 미쳐 못 보실 수도 있다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ㅎㅎㅎ)
그러나 나 혼자 은밀히 있을 땐 하나님이 주시하고
계신다.
이처럼 간단한 테스트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또 그가 말한 것 중에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혼자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사회가 필요없는 사람은 짐승이거나 신이 틀림없다” 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짐승도 신도
아니기에 분명히 여러사람과 어울리는 사회생활을 필요로 한다.
이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지능이 발달하여… 얼마든지 언제든지 자신을 감추고 미화하고 머리를 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획책할 수 있다.
그래서 나혼자만의
공간에서 하던 행동들은 대중 앞에서는 거의 종적을 감추고 만다.
그리고는 제법 논리와
원칙에 입각하는듯 하면서 상대방을 교란한다.
상대방은 내가 내뱉고
내가 하는 행동에 의해서만 나에 대한 정보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얼마나 불공평하고
위험한 사실이란 말인가.
이것은 정치나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나 … 혹은 종교계까지 예외는 없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직원을 채용할 때 Reference 를 내라고 한다.
자기에 대해 얘기를 (잘) 해 줄 전 직장 동료나 상사를 대부분 Reference 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는 그들이
잘 얘기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간혹 그들이
뒤통수를 때린다.
아니… 나와 그렇게 친하던
그 친구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reference 를 주다니…
그의 뜻밖의 행동에
놀라겠지만, 당신도 그의 가짜 모습에 속은 것 일 수도 있다.
그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동물인데… 충분히 자신을 감추고 사회적 모습만을 보였을 수도 있다.
서로 속이고 서로
속는 세상이 바로 이 사회이다.
짜가가 판치는 세상이다.
교회는 … 조금 … 아니 많이… 달라야 한다.
실지로 많은 교회안에서
이런 이중적인 실태가 나오는 것은 일반 사회에 비하면 훨씬 덜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믿음도 가짜 믿음이
있고.. 겉으로 위장한 믿음이 있는데 하물며 교인들의 모습이 100%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너무 순진하든지 너무 무식하든지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하나님 만이 알고
계신다.
인간이 사는… 인간이
교제하는 곳이라면 그것이 정치판이든 연예계판이든 교회안이든… 인간의 습성은 동일하다.
그렇게 믿었던 교인에게
배반당했다고 침통해 하며 <시험>에 들었다고 하는 교인들도 있고, 나 빼고 딴 사람과 어울린다고 <시험>에 빠졌다는 교인들도 있다.
내가 타주에서 직장땜에
기러기 생활 할 때 알게 된 권사님집에 저녁 초대를 받고 갔는데, 나이가 들어 결혼시기가 된 자기 딸에게 너는 무조건
믿음이 좋은 남자랑 결혼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믿음이 좋으면 다른
것도 다 좋은가?
천만에 말씀이다.
그러기 전에 그가
가진 믿음이 진믿음이라고 누가 보장해 줄 수 있는가?
그가 혼자있는 시간과
공간에 들어가 그를 관찰이라도 하고 내린 결론이란 말인가?
우리 모두는 집사, 권사, 장로 그리고 목사를 막론하고… 우리의 사회적 속성이 여전히 건재하게 우리 안에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만 그것을 제어하고
날마다의 성화과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나의 진짜 모습과 나의 사회적 모습이 동일하게 변하여 결국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게 우리의 목표요 과정일
뿐이다.
우서운 얘기 하나
하자.
예전에 타주로 직장땜에
간적이 있다.
어찌어찌하여 같은
교단의 장로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친하게 된 그 교회의
지휘자 (현대음악을 전공한 박사였다) 가 나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를 가지고 담임목사님에게 (좋은 면으로) 얘기를 했다.
저 장로님 이런
저런 백그라운드가 있고 이런저런 사역도 하시고 이런저런 평판도 있고… 등등.
마침 그 교회에
경배와 찬양팀을 새롭게 조직 운영하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그 팀을 영적인 그리고 음악적인 리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나에게 맡기시려는 … 목사님의 의도가 있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Smart하셨다. ㅎㅎ
나에게는 약간 .. 기분이
나쁜 제의가 들어왔다.
두번… 즉, 한번은 교회 지도자급이 모인 모임에서 현대예배에 관해 세미나를 하고, 이것이 OK 가 되면 또 한번 전교인을 상대로 모임을 가져돌라는 것이었다.
그 두 과정을 거치는
동안… 또 한번 나는 기분이 써억 좋지 않은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신학을 하셨다는
장로님 한 분과 아까 말한 지휘자 박사가 노트를 펼치고 나의 세미나 과정을 영적인 그리고 전문음악적인 면에서 평가 리포트를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계신 것을 목격했다.
솔찍히 개인적인 (사회적인) 생각으론… 내가 뭐 사역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이건 좀 너무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뜩… 나의 뇌리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건 바로 이 교회를
위한 신중한 절차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필요하고 좋은 과정이다… 라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목사님께서는 내가
콜로라도에서 섬기던 교회의 원로목사님과 선후배 관계가 있으셨는데 (원로목사님이 교단 총회장까지 역임하셨다)… 그분에게 연락을 하셨던 모양이다.
대체 이장로라는
사람… 진짜 모습이 궁금했던 것이다. ㅎㅎㅎ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믿음이 좋아서 장로까지
된 사람… 그 분야 사역을 십수년째 해 오던 사람 … 영적인 훈련까지 거친 사람을 믿지 못하고 .. 마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느듯… 어쩌면 상대방에겐 약간 섭섭할 수도 있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가?
나의 답은 그렇다!... 이다.
내가 장로라고 그
분야 사역했다고 … 그 (나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 모든 것을 정당화 해 주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나의 본 모습이
있을 것 아닌가.
그것을 알아 보려는
노력일 뿐이다.
어떤이는 그 목사님이
깐깐하다고 소문났다고 했다.
실지로 그런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이모저모로
나에 대한 검증과정을 거친 것에 대해 나는 이해하고 찬성하고 그리고 환영한다.
만일 이 목사님처럼… 인간적으론 섭섭하고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어떤 검증단계를 거치게 한다면, 100%
Error Free 는 안 될지라도… 보는 모습과 진짜 모습의
차이에서 나오는 훗날의 갈등은 많이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서로 믿는것… 그리고 그냥 믿어버리는
것.
좋은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이
공식절차에도 적용이 된다면… 모든 나라의 요직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로 들끓게 될 것이고, 교회 요직도 그 사람의
됨됨이와 달란트 보다는 나의 길에 도움이 될 사람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사람을 믿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고 공식적인 관계에선 <원칙>의 준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원칙 중 선두가
바로 인간의 본 모습에 대한 검증이다.
겉모습과 속모습만
같다면 .. 그 사람의 결점은 고치고 보완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다르다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것
안 보고 그 사람의 (겉) 믿음만 보고 결혼하라느니 하는 말은 하지말자. ㅎㅎㅎ
우선이 그 사람의
속성이다.. 겉과 속이 같은지 다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교회에 오는 일반
성도들은 Lost
Sheep 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굳이 그사람의 검증은 필요치
않다… 나쁜사람 좋은 사람 이상한 사람… 이 모든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 교회이니까.
그러나 리더들과
사역자들은 다르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절벽으로 인도하면
뒤따라가는 성도들도 절벽으로 갈 터인데 그냥 <믿고> 사역을 맡길 순 없다.
정치계에도 <청문회> 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청문회까지
할 필요는 당연히 없겠지만.. 그냥 겉모습만 보고 … 즉흥적으로.. 마침 필요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은혜로 그냥 맡겨봅시다 라며… 그냥 중요한 사역을 덥썩 맡기지는… 말자는 얘기다.
그 사람의 진모습이
어느정도 검증된다면… 믿음은 얼마든지 쌓을 수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라는 말은 믿음은 충분히 배워서 얻어질 수 있음을 말하고있다.
그런데 나의 됨됨이는… 배워서 되기가 힘들다.
대부분 타고나기
때문이다.
나의 태어난 모습.. 나의 가진 달란트를
알고.. 거기에 맞게 그 테두리 안에서 나를 헌신하는 태도가 옳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교회안에서 개인의
욕심과 야망 (?) 을 품고 어떤 사역이나 요직을 맡으려 한다면 그것이 온전하게 하나님께 보여질지는 의문이다.
나의 모습은 감춘채
거짓 능력으로 거짓 믿음으로 나의 욕심을 위해 사회적 모습을 만들어 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그 무슨
선한 것의 열매를 바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일반성도들은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 이런 저런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앞에서 그들을 리드해야
할 사역자들의 자질은 처음부터 매의 눈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리더의 자리가 아니다.
나의 됨됨이가 준비된
마음이 될 때 사역을 맡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Risk Management 이다.
구약시대엔 하나님이
직접 리더들을 고르셨기에 문제가 전혀 없었겠지만 지금은 우리 리더들이 다음 리더들을 선택해야 하기에, 적어도 겉모습 그리고
사회적 모습이 아닌 진모습이 검증된 그들을 고를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까 말
한 그 교회에서의 사역.... 결국 하지 못했다.
내가 자진해서 물러난
것이다.
내 자신을 살펴보니… 능력과 자격도 안되고
ㅎㅎㅎ 다른면으로 보니 그 교회의 색깔이 내가 바라던 색깔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잘 한 것이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