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매미소리와 비행기 소리를 좋아했다.
우리집에는 장독대 바로 밑으로 미니 지하실이 있었는데, 말이 지하실이지 그냥 시멘트로 발라서 구색만 갖추어 놓은 작은 공간이었다.
뜨거운 여름철 오후 어머니가 지하실에서 수박 한 덩어리를 꺼내 적당히 작게 잘라서 설탕과 범벅을 하여 주시곤 했다.
시원하게 그걸 먹고 나면 어느새 졸음이 온다.
예전 한국집이 다 그랬듯이 방과 방 사이에 대청이 있다.
뒷뜰로 통하는 문을 열어 놓으면 그렇게 뜨거운 여름 날씨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 왔고 나는 대청에 대자를 하고 누워서 오수를 즐기곤 했다.
그때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
지금같이 제트기나 로켓추진 비행기가 아니다.
부우우웅~하는 소리가 완연히 들리는 프로펠러 비행기 소리다.
배도 부르고 바람은 선선한 가운데 들리는 그 비행기 소리는 나에게는 달콤한 자장가 그 자체였다.
조금 늦여름이 되면 이제 맴~맴~ 하는 매미 소리가 들린다.
이 매미소리를 듣고도 어찌 달콤한 잠에 빠져들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또 생각나는것 들이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산으로 행하는 밭과 논길로 나가면 온 천지가 우리들의 놀이터가 된다.
매뚜기도 잡고 잠자리도 잡고 올챙이도 잡고 온 세상이 우리들의 무대가 된다.
얼굴이 시커먼 해지고 온 몸이 땀과 구정물에 젖고 고무신속에 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미지끈 거려도 마치 왕자가 왕궁에 들어가듯, 자신있게 집으로 향하던 생각이 난다.
이집 저집에서 … ㅎㅎㅎ 어머니들의 고함소리가 들린것은 물론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어린애들은 그냥 뛰어 놀았다.
그게 정상이다.
골목에선 전쟁놀이가 매일 벌어졌고 공원에선 술래잡기 논길 밭길에선 탐험대가 판을 치고 있었던 시절이다.
허겁지겁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삶아 놓은 감자와 옥수수를 주셨다.
아직까지도 그때 처럼 맛있는 감자와 옥수수는 만나보질 못했다.
모든게… Slow Motion 같았던 그 시절.
그때의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을 비교해 본다면 감히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노는 카톡이나 유튜브같은 문명의 기기들 (?) 은 없었다.
이웃집 동무에게 뭘 물어 보려면 그곳까지 가야만 했다.
그런데 그게 전혀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지금은… 이웃에 있는 친구에게 멀 물어 보려고 실지로 그 친구집을 방문하는 ‘외계인’ 같은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카톡 한번이면 만사가 해결된다.
그때의 아이들은 다들 바보 (?) 같았고 지금의 아이들은 영약하다.
어른이 한마디 하면 그때의 아이들은 예~ 하면서 말을 들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 보라… 몇 마디의 훈계 (?) 를 그들로 부터 들을 것이다.
예전엔 동네 공원과 논과 밭길 그리고 산과 강으로 친구들과 뛰어 다녔고 집에 들어 오면 씻고 먹고 공부하고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PC 방이나 오락실 그리고 집에 돌아 오면 자기방 문을 걸어 잠구고 마치 연구원 같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온 혼을 다 퍼붙고 있다.
내가 어렸을때는 일주일에 한번 할아버지 손톱 발톱을 깍아드렸다.
목욕탕에 가면 할아버지 등도 밀어 드렸다.
모든것에 불평이 없었고 모든 아이들이 그게 Normal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니 세월도가고 세월이 가니 새로운 세대가 오고 그 세대의 가치관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내 말은 그 새로운 변화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옛적이 그립다는… 남이 들으면 꼰대같은 생각을 내가 하고 있다는 얘기다. ㅎㅎㅎ
비행기소리를 얘기한다고 해서 그 누가 그때의 나의 느낌을 이해하겠는가?
매미소리를 얘기하면 과연 몇사람이나 나와 Sync 가 되겠는가?
그래도 나에겐 소중하고 귀한 추억이다.
남들은 비행기 소리 매미소리 들으면 ignore 할 수도 있는 소리들이지만, 나에게는 마치 최면술의 암시같이… 어김없이 그때 그시절 내가 느꼈던 바로 그 ‘감정’ 이 거짓말같이 재현되는 소리들이다.
구약 창세기 18장 1절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The LORD
appeared to Abraham near the great trees of Mamre while he was sitting at the
entrance to his tent in the heat of the day.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여기서 멋진 표현은 “… In the Heat of the Day…” 다.
이 구절은 늙은 나이에 자식을 보지 못한 아브라함에게 주께서 나타나시어 아들의 약속을 주시는 장면이 된다.
아마도 그 장면을 유츄해 보면 … 아브라함은 뜨거운 여름철… 오전중에 잠시 일을 보고 난 다음 상수리나무 옆에 텐트를 치고 한숨 돌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던것 같다.
그때 여호와께서 2명의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셨다.
나는 이 구절을 읽을때 마다, 예전의 내가 생각 나곤 한다.
대청에 누워서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비행기 소리와 매미 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휴식에 빠진 나를…
생각해 본다.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 성경 어느 구절에 이런 말이 나오냐고 딴지 걸지 말라.
나는 하나님이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해야겠다) 이렇게 선선한 바람도 불고 매미 소리도 느끼며 여유자적한 때에 나를 방문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스트레스 받으며 회사업무에 초긴장할때가 아닌, 내가 비지니스 빅딜을 두고 사람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때가 아닌, 내가 시끌벅적 모임이나 파티를 할 때 가 아닌… 나 만의 시간에… 거기에다가 자연의 소리를 느낄수 있는 … 바로 그 타이밍에 .. 방문하지 않으실까… 생각해 본다. ㅎㅎㅎ
내가 모든 세상의 것들을 내려 놓고… 나와 자연과 벗하고 있는 그 시간… 내가 무언가 초기화 (?) 된 생각에 빠지고 있을 그 순간이… 어쩌면… 내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히 있게 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는 생각이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무언가 바쁜 상황이 아닌 이왕이면 이렇게 마음을 내려 놓은 상황을 더 선호할 것 같다는 얘기다.
우리는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긴장의 순간순간에도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나가서 성도들과 힘껏 기도하기도 하지만,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여유를 가지고 기도할 수도 있어야 한다.
여기 저기 내가 있는 현장에서의 기도도 당연하고 마땅하지만, 때로는 일부로 산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골방으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나만의 휴양지를 찾아가는 그 본능적인 행동이… In the Heat of the Day… 라는 아브라함에게 벌어졌던 바로 그 장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말의 골자는…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고 하는 Typical 한 (말뿐인) 태도도 좋지만 (그러나 결국 바쁘다고 대화를 못하고 마는).. 내가 그 순간을 만들어 가는 모습도 더불어 좋지 않을까 하는 … 생각이다.
In the heat of the day!
그렇다… 4계절중에도 가장 덥고 뜨겁고 혹독한 때가 있듯이, 우리의 인생사에도 그런 고비가 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에게 찾아올 수가 있다.
그때에 아예 수박 한덩어리 먹고 통풍 잘 되는 대청에 대자로 누워 매미소리 듣고 비행기 소리 들으며 <여유>를 가지듯 우리도 한번 일상에서의 건설적인 일탈을 가져봄이 어떨까 싶다.
혹시 아는가.
더운 날 텐트 옆 그늘에서 마음을 비운 아브라함에게 임했던 그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똑 같이 임하게 될지…
요즘 갑자기 날씨가 더워진 탓에 … 문뜩 엣 생각이 나서 한마디 해 보았다.
In the heat of the day!
멋진 말이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