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칼럼

Page Title Facebook 커뮤니티에 연재된 스티브의 페이스북 칼럼입니다. 생활속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목스티브의 Facebook 칼럼 2 (01) – 마음의 줄과 현실의 펜스2026-04-08 19:56
작성자 Level 10
어린 시절 대전에 살 때였다.
보문산 쪽에 서커스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를 졸라 돈을 타내어 친구 몇 명과 함께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천막을 쳐 놓고 중앙을 무대로 만들고, 그 주위에 의자를 빙 둘러 놓은 전형적인 서커스장이었다. 그런데 나는 입구에서 좌석 쪽으로 가다가 한쪽에 묶여 있는 큰 코끼리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린 나의 머릿속에 큰 의문이 생겼다.
그 코끼리는 집채만 한 덩치였는데, 딸랑 줄넘기 줄 정도 굵기의 끈으로 옆에 있는 말뚝에 살짝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뒤집을 수 있다는 힘을 가진 코끼리가
왜 저걸 끊고 도망가지 않을까?
그 의문이 어린 내 머릿속을 한동안 어지럽게 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새끼 코끼리의 발을 어릴 때부터 굵은 쇠사슬로 말뚝에 묶어 놓으면, 새끼 코끼리는 여러 번 도망치려고 애쓰다가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 코끼리는 결국 이렇게 믿게 된다고 한다.
“나는 이 줄을 절대 끊을 수 없어.”
그렇게 믿게 되면, 나중에 성체가 되어 말뚝을 뽑을 힘이 충분히 생겨도
심지어 쇠사슬을 가느다란 노끈으로 바꾸어 놓아도
코끼리는 도망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코끼리를 묶고 있는 것은
물리적인 줄이 아니라
어쩌면 “마음의 줄” 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현대 심리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인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 이 설명한
“학습된 무력감 (Learned Helplessness)” 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화다.
그러다가 나도 나이가 들어 군대를 가게 되었다.
당시 나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빨리 제대해야 할 상황이 있었기에, 징집 연령까지 기다려야 하는 육군 대신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훈련병 시절 말기에, 권총 차고 사복 입고 뽀다구(?) 나는 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Recruiter 의 말에 홀딱 넘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배치된 부대가 바로 2325전대였다.
당시에는 2325전대라는 이름보다
실미도 사건과 관련된 공군 방첩대라고 하면 더 많이 알려진 특수부대였다.
부대는 A지구, B지구, C지구로 나뉘어 있었다.
A지구에는 실제로 북한에 특수 공작을 위해 넘어가는 아주 수상한(?) 분들이 있었고,
B지구는 실미도 등에서 공작원과 관리 대상자들을 훈련시키는 곳,
그리고 내가 배치된 C지구는 기간병들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지 마라.
ㅎㅎㅎ
그러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건너뛰겠다.
신병 기본훈련 3개월을 마치고 2325전대에 배치된 나는
다시 6개월간의 특수 “지옥훈련” 을 받아야 했다.
몇 가지 훈련을 제외하면 북파 공작원들과 거의 동일한 훈련이었다.
도망백에 묶인 채 수영장에 던져져 실제로 기절해 보는 체험(?)
산속에 떨구어져 일주일 동안 알아서 먹을 것을 찾아 부대로 복귀하는 훈련
야간·주간 공중 낙하훈련 등등…
훈련을 받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내가 왜 이 부대에 왔을까…”
후회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관이 짧은 휴식 시간에 우리에게 한마디 했다.
지금도 기억난다. 최 상사였다.
“느그들이 지금은 이 훈련이 죽도록 싫겠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앵?
그게 끝?
뭔가 거창한 설명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끝이었다.
상투적인 말 같았다.
그런데 6개월 훈련이 끝날 무렵,
그 최 상사가 다시 말했다.
“느그들이 극한의 생사 갈림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 중 절반은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한다.
왜 그런 줄 아나?
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 전에 미리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아…
그래서 이 훈련을 시키는 거구나.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내 한계가 어디인지
몸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구나.
그래서 실제로 극한 상황이 와도
“여기가 끝이 아니다”
라는 걸 알고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구나.
진리다.
마라톤 선수들이 끝없이 훈련하며
“조금 더… 조금 더…” 하며 자신을 밀어붙이는 이유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실전에서 몸은 이미 포기하고 싶어도
정신이 계속 앞으로 밀어붙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훈련의 힘이다.
나 역시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순간마다
그 시절의 극한 훈련을 떠올려 본 적이 있다.
“내가 그때도 버텼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새 힘이 올라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 이야기했던 학습된 무력감과 정반대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학습된 낙관주의 (Learned Optimism) 이다.
과거에 자신의 노력으로 한계를 극복한 경험이 쌓이면
다음번 어려움이 와도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된다.
이와 비슷한 개념이 또 있다.
바로 승자 효과 (Winner Effect) 라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승리해 본 경험은
뇌의 호르몬 체계를 변화시켜
다음 도전에서도 더 큰 자신감과 인내심을 갖게 만든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런 심리다.
“이 정도는 예전에 해봤어.”
훈련이라는 것은
단순히 몸을 단련하고 기술을 배우는 과정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정신적 무기를
하나씩 만들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골프 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스윙할 때
108가지 생각을 하며 치면
그 스윙은 이미 망한 것이다.
스윙할 때는
딱 한두 가지만 생각해야 한다.
대신 연습할 때는 별짓을 다 해 본다.
그래서 결국
스윙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기억된 본능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파이크(Pike) 라는 물고기 실험이 있다.
수조를 유리 칸막이로 나누고
한쪽에는 파이크를 넣고
다른 쪽에는 작은 물고기를 넣었다.
파이크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지만
번번이 유리벽에 부딪혀 실패한다.
그러다가 결국 포기한다.
그 다음에 연구자들이
유리 칸막이를 제거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작은 물고기들이 파이크 코앞을 헤엄쳐 다녀도
파이크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저건 잡을 수 없는 먹이다.”
이것이 바로
파이크 신드롬(Pike Syndrome) 이다.
자…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브룸필드에 있는 큰 공원에
오랜만에 산책을 갔다.
약 3마일 정도 되는 코스였다.
걷다 보니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이 보였다.
그날따라 왠지 야생마처럼 가로질러 가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펜스였다.
돌아서 가면 40분
넘어가면 15분.
가만히 서서 펜스를 보니
생각보다 높다.
그래서 돌아가려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쳤다.
“잠깐… 내가 왕년에 이 정도는 눈 감고도 넘었는데?”
그 순간
내 안에 있던 학습된 낙관주의가
갑자기 폭발했다.
그래서
“으라쌰!”
하며 힘차게
도약을 했다.
미안하다.
내가 지금 도약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내 상상 속에서는 분명 도약이었는데
남들이 보면 아마
“폴짝”
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결과는?
다리가 펜스에 걸려
나는 아주 우아하게
동그랗게 굴러 떨어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매뚜기도 한철이듯이
학습된 낙관주의도
유효기간이 있다.
ㅎㅎㅎ
그래서 결론.
낙관주의도 좋고
긍정적인 생각도 좋지만
우리는 가끔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내 나이도 알고
내 몸 상태도 알고
내 현실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펜스 앞에서 괜히 ‘도약’했다가
‘폴짝’으로 끝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그래도 뭐…
그날 한 가지는 확실히 배웠다.
인생은 여전히
나에게
좋은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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