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 해안가 근처의 어느 대학 기숙사에 어느 날 갑자기 소방차 두세 대가 들이닥쳤다. 소방대원들은 소화기와 장비를 들고 일사불란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6층 12호 앞에 도착했다. 캡틴으로 보이는 요원이 손 신호를 보내자 두 명의 요원이 양쪽에 위치했고, 아래층 기숙사 Office에서 따라온 RA(Residence Assistant) 가 마스터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찰칵. 문이 열리는 순간 방 안에서 기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소방대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헬멧 마스크를 내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한 요원이 외쳤다. “I found it!” 그가 가리킨 곳은 반쯤 열린 클로짓이었다. 잠시 후 담요에 덮여 있는 이상한 물체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김치통이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그 방에는 한국에서 유학 온 박 모 학생이 살고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방문한 어머니가 “우리 아들 김치 먹고 힘내라”는 마음으로 몰래(?) 가져온 김치 두 통을 건네주고 가셨다. 박군은 한 통은 몰래몰래 먹고 있었고 나머지 한 통은 클로짓 깊숙한 곳에 담요로 숨겨 두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김치가 발효되기 시작했고 통 안에서 압력이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금요일에 박군이 LA 한인타운 친척집에 가서 방을 비운 사이 토요일 오후… 그 김치통이 펑! 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그 방 구조를 조금 설명하면 이렇다. 6012호는 들어가면 A, B, C, D 네 개의 작은 방이 있는 구조였다. 주말이면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유학생들도 친구 집이나 친척 집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날도 마침 C호 방의 미국 학생 두 명이 친구들을 불러 음악을 틀어 놓고 맥주를 마시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묘하게 시큼하면서 강렬하면서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 맥주의 힘을 빌린 그들의 상상력은 이미 4차원 세계로 날아가고 있었다. “야… 이거 혹시…” “저 새끼 똥 싸고 도망간 거 아냐?” “아니면…” “시체… 아니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드디어 기숙사 Office로 전화를 했다. 자. 이제부터는 그날 기숙사 Office에서 RA로 당직을 서고 있던 바로 내가 직접 설명해 보겠다. ㅎㅎㅎ 오후 3시 조금 넘어. “이제 두 시간만 버티면 교대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친구 집에 가기 위해 차를 몰고 샌타모니카 프리웨이를 달리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6012호였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들려온 말. “야! 죽은 시체가 있나 봐!” “아니면 누가 똥 싸고 도망갔어!” 왜 그 녀석들이 나를 마치 동네 친구처럼 부르냐고? 그럴 만도 했다. 나는 6014호에 살고 있었고 그 녀석들과 같은 과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ㅎㅎㅎ 각설하고. 그 녀석들이 경찰을 부르라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나는 결국 911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정말로 5분도 안 되어 소방차 두 대가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나는 소방대원들을 따라 올라가 그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냄새의 정체를. 1979년의 해프닝이다. 그 시절 미국 사람들은 김치 냄새를 맡으면 거의 100% 코를 막았다. 된장 냄새는 더했다. 우리는 고추장을 얻어 오면 냄새 들킬까 봐 클로짓 깊숙이 숨겨 놓곤 했다. 그런데 그보다 100배 강력한 김치가 발효되어 터져버렸으니 그 위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상황을 설명하고 소방대원들을 설득하고 박군은 월요일에 기숙사 Office에서 “다시는 이런 위험(?) 물질을 반입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서약(?)을 하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2026년 초 발표된 “2025–2030 미국 식생활 지침 (Dietary Guidelines for Americans)” 여기서 김치가 장 건강에 좋은 대표적인 발효식품으로 처음으로 공식 문서에 포함되었다. 쉽게 말하면 미국 정부가 김치를 건강식품으로 인정한 셈이다. 생각해 보면 참 놀라운 변화다. 예전에는 김치를 숨겨 먹었는데 지금은 미국 그로서리 마켓 어디를 가도 김치를 판다. 치즈 옆에 김치가 있고 요거트 옆에 김치가 있다. 깍두기도 있고 김치볶음밥도 있고 김치주먹밥도 있다. 불닭라면은 매운 음식의 제왕이 되었고 냉동 불고기 냉동 비빔밥 떡볶이 김밥 만두… 이제는 너무 흔하다. 미국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가 한국의 “김”이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이걸 격세지감이라고 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미안한 표정으로 김치를 숨겨 먹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미국 정부가 김치를 건강식품으로 장려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1970년대 말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하던 길에 어느 시골 식당에서 “동양인을 처음 본다”며 공짜 음식을 주면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미국 할아버지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미국 사람들이 어색한 발음으로 한마디 한다. “안녕하세요?” 그때 김치 사건의 주인공. 우리보다 몇 살 많아서 우리가 “꼰대 형”이라고 불렀던 그 박 선생님. 지금도 한국에서 김치 잘 드시며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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