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겨울은 아름답다. 눈 덮인 로키산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너무 오래 간다. 그래서 어느 날 아내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눈 대신 야자수 좀 보러 가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른 세부부팀과 함께 2025년 겨울의 어느날 Fort Lauderdale에서 출발하는 14박 15일 Caribbean Cruise에 올랐다. (이것 저것 자세히 쓰려면 책 한권을 내야 하기에, 여기서는 간단명료하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써 보려한다.) 짐은 딱 한 번만 풀면 된다. 그 다음부터는 호텔이 움직인다. 밤에 배가 움직이고 아침에 커튼을 열면 “오늘은 어느 나라지?” … 이게 크루즈 여행의 묘미다. 작은 배를 타면 배멀미를 하는 나도, 마치 한 도시의 타운을 옮겨 놓은 듯한 거대한 배 위에선 아무 이상이 없었다. 크루즈 배는 사실상 떠다니는 리조트다. 저녁에는 Broadway 스타일의 쇼가 열리고 어느 라운지에서는 재즈가 흐르고 카지노에서는 칩 소리가 딸깍딸깍 들린다. 여자들이 모여서 Jazzercise나 요가를 하거나 맛사지를 받기도 하고 15층 선덱에선 선탠을 즐기거나 수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일행에게 가장 인기 있던 프로그램은 따로 있었다. 카드 놀이. ㅎㅎㅎ.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같이 간 부부 팀들이 카페나 라이브러리의 한 테이블에 모여 “자, 오늘은 누가 털리나 보자.” 이렇게 시작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승부욕이 생기면 카리브해 바람보다 더 뜨거워진다. 배 갑판에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있다. 대략 3바퀴 반을 돌면 1마일. 그래서 아침 저녁이면 많은 사람들이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다. 바다는 끝이 없고 바람은 부드럽고 갈매기 대신 가끔 날치가 튄다. 걷다 보면 “이게 운동인지 명상인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살쪄서 돌아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먹을 것이 너무 많다. 아침, 점심, 저녁뿐 아니라 하루 종일 먹을 것이 있다. 아침에는 뷔페 레스토랑에서 오믈렛, 베이컨, 팬케이크, 샐러드, 스프, 신선한 과일을 먹는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커피 한잔 하러 갈까?” 하면서 카페에 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점심이 된다. 저녁이 이미 끝난 밤 10시 이후에도 여럿이 모여 얘기하다가 배가 궁금해지면 근처 야외 카페에서 직접 만들어 주는 피자나 아이스크림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우리가 타고 간 Princess Cruise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러 개의 메인 레스토랑이다. 저녁에는 정식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먹는다. 메뉴에는 보통 스테이크, 연어,파스타, 랍스터, 프라임 립 같은 음식이 나온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한 가지 메뉴만 주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스테이크도 먹어보고 연어도 먹어볼까?” 하면 두 개 다 가져다 준다. 이쯤 되면 다이어트는 이미 포기한 상태다. 배 안에는 예약을 해야 하는 스페셜티 레스토랑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 Crown Grill (스테이크 하우스) • Sabatini’s (이탈리안 레스토랑) 특히 Crown Grill의 스테이크는 육지의 유명 레스토랑 못지않다. 그리고 Sabatini’s에서는 이탈리아식 파스타와 해산물이 정말 훌륭하게 나온다. 크루즈 여행 중 한 번쯤은 이런 곳에서 조금 느긋하게 식사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뷔페 레스토랑이다. 여기에는 세계 각국 음식을 비롯해 없는 것이 없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디저트 코너는 거의 예술 작품 전시회 수준이다. 케이크, 타르트, 무스… 한 접시만 담겠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두 접시가 된다. 그런데 크루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는 사실 이런 것이었다. 뷔페에서 음식 몇 가지를 가져와 객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발코니 의자에 앉는다. 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검푸른 카리브해. 바람이 살짝 불고 배는 조용히 바다를 가른다. 이때 먹는 간단한 식사가 어떤 고급 레스토랑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다. 아침에 배가 항구에 도착하면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배에서 내려 항구를 나가면 수십 명의 관광 가이드들이 줄지어 서 있다. “Taxi! Taxi!...Bus! Bus!” “Island tour!” “Best price!” 가격도 다양하다. “1인당 60달러!” 옆에서는 “50달러!” 또 다른 사람은 “Okay okay… forty!” 순식간에 가격 협상 시장이 된다. 관광객은 가격, 목적지, 시간 등을 계산한다. “3시간이면 충분할까?” “저 산 위에까지 가는 거 맞나?” 그러다 보면 어느새 즉석에서 섬 투어 계약이 이루어진다. 이것도 크루즈 여행의 재미다. 우리는 하루는 영화배우 워싱턴 덴젤 닮은 여행가이드를 만났고, 하루는 NBA 농구선수 캐빈 가넷트 닮은 가이드를 만났다. Princess Cruise를 탔을 때, 승객들이 목에 작은 동전 같은 것을 걸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처음에 “카지노 칩인가?” 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Princess Cruise의 스마트 시스템인 ‘Ocean Medallion’이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작은 전자 장치다. 크기는 25센트 동전 정도인데, 이 작은 물건이 배 안에서 꽤 많은 일을 한다. 보통 호텔에서는 키 카드를 문에 대야 한다. 그런데 메달리언을 가지고 객실 근처로 가면 문이 자동으로 ‘찰칵’ 하고 열린다. 처음 경험하면 약간 놀란다. “어? 내가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몇 번은 일부러 왔다 갔다 하며 확인해 보게 된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편리해질 줄은 몰랐다. 이 시스템의 또 다른 재미있는 기능은 음식 주문이다. 휴대폰 앱이나 배 안 스크린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서버가 이렇게 묻는다. “Where are you sitting?” 그런데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다. 메달리언이 승객 위치를 알려준다. 그래서 갑판 의자에 누워 바다를 보고 있으면 잠시 후 직원이 와서 말한다. “Here is your pizza.” 처음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주문한 걸 어떻게 찾았지?” 사실은 작은 메달리언이 GPS처럼 승객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크루즈 배는 생각보다 크다. 처음 며칠은 “엘리베이터가 어디지?” “내 방이 어느 방향이었지?” 하면서 약간 헤매게 된다. 이때도 메달리언 앱이 도움이 된다. 배 안 지도에서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알려준다. 마치 작은 도시 안에서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 느낌이다. 같이 여행 온 가족이나 친구들도 메달리언 앱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다. “남편 어디 갔지?” 앱을 보면 “Deck 15 – Ice cream shop 근처” 라고 나온다. 그럼 대충 상황이 짐작된다. 크루즈 여행은 원래도 편한 여행이다. 하지만 메달리언 같은 기술 덕분에 객실 출입, 음식 주문, 위치 확인, 서비스 요청이 훨씬 간단해졌다. 그래서 요즘 Princess Cruise를 타면 이 작은 장치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작은 동전 하나가 배 안에서 꽤 많은 일을 하는구나.” 그리고 결국 깨닫는다. 크루즈 여행은 점점 더 ‘스마트 리조트’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다음은 우리가 다녀온 카리비언의 섬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1. St. Maarten (신트마르턴) 이 섬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국경이 있는 섬이다. 섬의 절반은 네덜란드 절반은 프랑스 하지만 국경에 가보면 놀랍게도 검문소도 없다. 그냥 “Welcome to the French Side” 라는 표지판 하나뿐이다. 이 섬의 가장 유명한 장소는 Maho Beach 이다. 비행기가 사람들 머리 바로 위로 착륙하는 곳이다. 정말로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다. 처음 보면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미 수십 년 동안 관광 명소가 된 곳이다. 또 하나 추천할 곳은 Orient Bay. 프랑스 쪽 해변인데 카리브해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다. 2. St. Kitts (세인트 키츠) 이 섬은 의외로 기차 여행이 유명하다. St. Kitts Scenic Railway. 옛날 사탕수수 운반 철도를 관광열차로 만든 것이다. 열차를 타면 바다, 사탕수수 농장, 화산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섬에서 재미있는 곳 하나는 Brimstone Hill Fortress 유네스코 세계유산인데 영국이 만든 거대한 요새다. 현지에서는 “Caribbean의 Gibraltar” 라고 부른다. 3. Martinique (마르티니크) 이곳은 사실상 카리브해 속의 프랑스 이다. 슈퍼마켓에 가면 프랑스 치즈, 바게트, 와인이 가득하다. 수도는 Fort-de-France가장 유명한 곳은 Mount Pelée 이다. 1902년 화산 폭발로 도시 Saint-Pierre가 사라진 곳이다. 그때 3만 명이 사망했고 생존자는 단 한 명이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섬 전체가 약간 화산과 역사 여행지 느낌이 난다. 4. Barbados (바베이도스) 이 섬은 럼(Rum)의 나라다. 사실 바베이도스는 세계 최초로 럼을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다. Harrison’s Cave라는 지하 동굴은 전동 트램을 타고 들어간다. 안에는 지하 폭포, 석회 동굴, 수정 같은 물이 있다. 우리는 이곳을 방문했을 때 한사람당 (레귤러 요금의) 2배 이상을 요구하는 바가지 요금 때문에 과감히 동굴투어를 포기하였다 (사실은 요금 보다도 은근히 동양인들을 깔보는듯한 태도에 우리 모두가 코리아정신으로 단결하여 보이코트를 한 셈이다 ㅎㅎㅎ.) 그리고 이 섬에서 빠질 수 없는 건 Mount Gay Rum Distillery 인데 1703년부터 운영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럼 증류소다. 5. Grenada (그레나다) 이 섬은 별명이 있다. “Spice Island”. 육두구, 계피, 정향 등 향신료 생산지다. 그래서 공항에 내리면 향신료 냄새가 난다는 말도 있다. Grand Anse Beach은 카리브해 최고의 해변 중 하나다. 그리고 또 유명한 곳 Annandale Falls 는 열대 정글 속 폭포다. 6. Trinidad (트리니다드) 이 섬은 다른 카리브해 섬들과 조금 다르다. 휴양지라기보다 문화와 음악의 섬이다. 특히 Carnival 이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카니발 중 하나다. Maracas Beach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 Bake & Shark 즉 상어튀김 샌드위치다. 현지에서는 거의 국민 음식이다. 7. Bonaire (보네르) 다이버들에게는 성지 같은 섬이다. 이 섬의 특징은 바다 보호 정책이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호초가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Bonaire Coral Reef 는 스노클링만 해도 앵무새 물고기, 엔젤 피쉬, 산호를 바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유명한 것은 핑크 솔트 호수인데 유명한 소금 생산지다. 여러 섬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이곳에서의 경험은 스노클링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바다에 얼굴을 넣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린다. 형형색색 물고기와 산호초가 눈앞에서 움직인다. 잠깐 고개를 들어 숨을 쉬고 다시 바다를 보면 “아… 이게 카리브해야.” 이런 생각이 든다. 8. Turks & Caicos (터크스 앤 케이커스) 여행 마지막에 등장한 “카리브해의 결정판” 같은 섬이다. Grace Bay Beach는 여러 여행 잡지에서 세계 최고의 해변으로 선정된 곳이다. 바다 색이 정말로 비현실적인 터키색이다. 14일 동안 우리는 8개의 섬을 보고 수많은 해변을 걷고 카리브해 바다를 바라보며 갑판을 돌고 또 돌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카드 놀이를 하며 웃었다. 돌아와 보니 이 여행의 기억은 섬 이름보다도 바다 색, 바람, 웃음, 그리고 음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하나 확실히 깨달은 사실 한가지. 겨울에는 눈 대신 야자수를 보는 것도 꽤 괜찮다는 것!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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