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미국에서 대학 생활 할때 신기한 사실을 경험한적이 있다.
세계사 시간이었는데 인류의 특이한 발명품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이것 저것 발표하는데 한 일본 친구가 ‘Sand
Watch’ 라고 말했다. 물론 나는 단박에 그가 ‘모래시계’를 말하려는것 인지를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교수를 비롯한 미국 혹은 유럽쪽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둥 하는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동양권과 놀랍게도 아랍계통의 한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는걸로 보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잠시후 스마트한, 어느 미국 친구가 “Hour
Glass” 라고 말하자, 모두들 아하~ 하며 이해를 하게 되었다.
솔찍히 그때 나도 굳이 번역하라면 Sand
Watch 라고 했을것이다. Hour
Glass 라는 단어는 그때 처음 들은 단어였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단어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 왜 같은 동양권들은 Sand
Watch 라고 하니까 대번 그 뜻을 이해하는데 왜 미국.유럽쪽은 Hour
Glass 라고 해야 이해를 했는냐는 것이다.
결국 문화 차이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때의 그 신기한 경험은 나의 뇌리에 기억되어 있다.
영어로 노랗다를 표현하자면 기껏해야 Yellow 나 Yellowish 정도다.
그런데 한국말에는 노랗다, 누렇다, 누루끼리하다, 노리꼬롬하다, 누리툭툭하다.. 아마 더 만들 수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한국말로는 단 하나뿐인 ‘사랑’ 이 그리스어 (Greek) 로는 아가페, 에로스, 필리아, 스톨게 이렇게 4가지로 명확히 구분된다.
심심해서 가만히 분석을 해 보니, 이 또한 민족성이 고스란히 답겨 있는듯 하다.
서구문명의 중요한 발원인 그리스어는 행동 (action) 에 대한 세부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표현이 다양하다. 행동에 중요한 의미를 둔다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어는 무엇을 묘사 (describe) 하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표현들이 발달되어 있는듯하다. 사물을 묘사하는 민족성이 강한 모양이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했냐 보다는 어떻게 했냐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미국인들은 차를 샀다, 결혼을 했다, 돈을 벌었다… 하면 거기서 결론이 난듯하다.
액션이 세분화 되어 있어서 더 이상 궁금할게 없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반드시… 어떻게 결혼을 했고, 어떻게 차를 샀고,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알아야 한다… 너무 궁금하다.
묘사를 해서 충분한 설명을 더 해 줘야 만족한다. 글세 아마도 이 불굴의 (?) 호기심 때문에 우리 민족이 지금 세계의 집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박이 노랗다 라는 말을 The
pumpkin is yellow 라고 하면 끝나야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몇단계 더 나아간 묘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 호박 누렇구만… 그놈의 호박 누리끼리하네 그랴~ 난 저런 노리꼬롬한 호박은 싫탕게~ 등등.
그래서 한국 “시”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이 맞다.
대체 다음의 시 귀절을 어떻게 영어로 번역할것인가?
“가시리 가시리있고 나를 버리고 가시리잇고”
아니 그냥 “Are
you going to leave me?” 하면 끝날걸 가지고 이렇게 벌려 놓으니 이걸 어떻게 번역을 해서 노벨문학상에 도전을 할것인가?
암튼 그래서 이 형용사가 발달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허구장천 행동 (action) 은 별로 없고 그저 입만 벌리면 묘사~ 형용~ 묘사~ 형용~ 으로 하루를 끝낸다… 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ㅎㅎㅎ
미국인들은 수없이 I
Love You… ‘사랑’ 한다는 액션을 되풀이 한다. 뭐 이렇게 저렇게 어쩌고 저쩌고 사랑한다… 라는말은 별로 안한다. 그냥 I
Love you! 다.
그리고 액션으로 쪽쪽~ 해 주면 끝이다. 상대편에서도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우리 특이한 한민족은 액션은 줄이고 깊은~ 묘사를 많이 한다.
“나가 당신을 시방 견우가 직녀 생각하듯 허벌라게 머리가 팟뿌리될때까즉 거시기 현당게~”
물론 ‘사랑’ 이란 말은 거시기로 대체하여 표현을 안한다. 그러나 그 묘사는 엄청 길고 애절하다.
이게 우리 한민족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 나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