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 엘라 골짜기: 물맷돌과 숨겨진 힘
먼저 들려온 것은, 철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칼과 칼이 맞부딪히며 내는 날카로운 울림, 방패를 치는 둔탁한 소리, 군인들의 고함과 욕설이 공기를 찢었다.
그리고 뒤이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낮게, 그러나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나와 싸울 자가 없느냐!”
굵고, 가래 섞인 포효 같은 목소리였다.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와도 비슷했다.
“또 시작이네…”
철수가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발밑은 단단한 흙과 잔돌이 섞인 평야. 멀리 양쪽 언덕에는 각각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한쪽은 허름한 갑옷과 낡은 방패를 든 자들이고, 반대쪽은 번쩍이는 갑옷과 날카로운 창을 든 사들이었다.
그 사이, 소규모 전투가 아닌 이상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는 골짜기.
정동일도 고개를 들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구나.”
그가 낮게 말했다.
“엘라 골짜기.”
엘라 골짜기. 사무엘상 17장.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서로 대치하고, 날마다 거인이 나와 “대표자 싸움”을 요구하던 그 골짜기.
“저기 봐.”
동일이 손가락으로 골짜기 가운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비현실적으로 큰 사람이 서 있었다.
거대한 투구, 온 몸을 덮은 비늘갑옷, 창 자루만 해도 남자의 팔뚝 굵기만 한 무기. 최홍만이도 그 앞에선 어린애 같이 보일 자~ 그는 거의 한 그루 나무처럼 보였다.
골리앗.
그의 목소리가 또 울려 퍼졌다.
“너희 중에 싸울 자를 보내라!
내가 그를 이기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고, 네가 나를 이기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다!”
그 말에 이스라엘 진영 언덕 위에서 군인들의 숨소리가 동시에 무거워졌다. 어디선가 욕설이 튀어나오고, 어디선가 ‘또 저 소리야’ 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때 철수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바람이 아닌데도, 진영 뒤쪽의 천막 그림자가 “한 번” 길게 늘어졌다. 횃불 때문도 아니었다. 어둠이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람들 사이를 스쳤다.
그리고 들렸다. 아주 낮게. 말이 아닌데도, 말처럼 느껴지는 속삭임.
‘봐라. 아무도 못 나간다. 저 거인이 너희 마음을 이미 이겼다.’
병사들의 눈이 점점 더 죽어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패배”라는 생각을 진영 전체에 풀어놓고 있는 것처럼.
동일이 철수 쪽으로 시선을 흘겼다.
“철수야… 느껴지지?”
철수는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말로 확인하는 순간, 더 선명해질까 봐.
철수는 주머니에서 SIMON를 꺼냈다. 지도가 떴다.
이번에는 골짜기를 중심으로 양쪽에 진영이 표시된 화면. 한 가운데, 붉은 점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표시되어 있었다.
TARGET:
ELAH / 1 SAMUEL 17.
“확인.”
철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다윗과 골리앗. 우리가… 여길 피할 수는 없겠네.”
동일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우리가 ‘거리를 두고 보기’만은 안 할 거지?”
철수는 SIMON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것을 천천히 껐다.
“…그럴 것 같다.”
이스라엘 진영으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정신이 없었다.
병사들은 피곤해 보였고, 어떤 이는 갑옷을 벗고 주저앉아 땀을 훔치고 있었다.
식량을 나누는 이들, 망가진 방패를 대충 수선하는 이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철수처럼 구석에 앉아 돌을 차는 청년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피곤은 원래 전쟁 때문이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의 피곤은 전쟁보다 먼저 마음에서 시작된 피곤 같았다.
“야.”
누군가가 두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너희 누구냐? 보급병도 아니고, 병사도 아닌 것 같은데?”
동일이 미리 준비한 듯한 대답을 했다.
“우린… 사울 왕에게 물품을 전하러 왔다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그넵니다.”
“물품은?”
병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그 전에…”
철수가 웃으며 말을 돌렸다.
“지금 저 거인, 얼마나 오래 떠들고 있는지부터 설명 좀 해주시죠?”
병사는 욕설을 한 번 내뱉고는 손가락으로 골짜기를 가리켰다.
“며칠째냐, 대체… 아침저녁으로 나와서 저 난리를 피운다. 사람들 사기 다 떨어트리고.”
그는 헛웃음을 쳤다.
“우리 진영에 거기에 나설 만한 자가… 있어야 말이지.”
동일은 시선을 진영 중앙 쪽으로 옮겼다. 거기에는 다른 병사들과는 다른 갑옷을 입고, 조금 더 화려한 천으로 장막을 두른 곳이 있었다.
“사울 왕은…?”
“왕도 겁나기는 마찬가지겠지.”
병사가 대강 툭 내뱉었다.
“그래도 왕이라 앞에서는 다들 ‘담대하십니다’ 이러지만…
밤에 불 끈 뒤에는 다 똑같아.”
그 말이 끝나자, 철수는 확실히 느꼈다. 사울이 겁난 건 “골리앗”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공포는 이미 진영 깊숙이 스며든, 반복되는 속삭임 때문에 ‘습관’이 되어버린 공포였다.
‘왕이여, 넌 못 이긴다. 너는 실패할 것이다. 너는 선택받지 못했다.’
철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 안에서도, 저런 목소리가 들린 적이 있었다. 부모를 잃고 혼자 남았다고 믿던 그 시절처럼.
그때, 진영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들레헴에서 온 자가 누구냐? 여기서 뭐하는 거냐?”
그 말에 여러 사람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철수와 동일도 그 방향을 보았다.
양치기 냄새가 남아 있는 듯한 옷, 허리에 허름한 가죽 끈, 그리고 등에 메고 있는 작은 주머니. 소년 하나가 장정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형들한테 음식 좀 갖다 주러 왔습니다.”
소년이 말했다.
“아버지가 심부름을—”
“여기가 어디라고 어슬렁거리냐, 다윗!”
누군가 소리쳤다.
“여긴 전쟁터야! 양치기 꼬맹이들이 구경할 데가 아니라고!”
동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윗.
그는 본능적으로 철수의 팔을 쳤다.
“철수야, 저기 봐. 저 소년이… 다윗이야.”
철수도 이미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소년의 눈빛에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담대함과 호기심이 동시에 떠 있었다. 마치, 이미 자기 안에 ‘확신’이 있는 사람처럼.
그리고 철수는 또 하나를 느꼈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의 마음에 달라붙던 검은 기운이, 그 소년에게는 붙지 못하고 그 주변만 맴돌다 물러나는 듯했다. 마치 어둠이 빛에 가까이 가면 스스로 밀려나듯.
정동일이 천천히 그 무리 쪽으로 걸어갔다. 철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따라갔다.
“잠깐만요.”
동일이 다윗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다윗이 눈을 돌려 처음 보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동일은 한 박자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멀리서 온 나그네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계시다는 것도 압니다.”
다윗의 눈이 순간 빛났다.
“당신도… 여호와를 믿는군요.”
동일은 묘하게 울컥했다.
“그렇다고… 이제야 인정하고 있는 중입니다.”
옆에서 철수가 슬쩍 끼어들었다.
“저 거인… 저 친구를 상대할 생각인가요?”
다윗은 잠깐도 망설이지 않았다.
“예. 누군가는 나서야 하니까요.”
“물맷돌은 쏠 줄 알아요?”
철수가 물었다.
다윗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저는 양 칠 때, 짐승들 쫓으면서 평생 그거만 했습니다.”
동일이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랑 잠깐, 시냇가로 갈 수 있겠습니까?”
“왜죠?”
“당신이 쓸 돌을… 조금 같이 골라보려고요.”
골짜기 옆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은 맑았고, 햇빛 아래 자갈들이 반짝였다. 다윗은 익숙한 몸짓으로 시냇가로 내려갔다. 그는 허리를 굽혀 돌들을 집어들었다.
“물맷돌은 모양이 중요합니다.”
다윗이 설명했다.
“너무 각지면 날아가는 도중 방향이 흔들리고,
너무 둥글면 충격이 분산됩니다. 손에 딱 들어오는 무게랑, 표면의 느낌이 좋아야 해요.”
철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완전히… 전문가네.
그때 철수는 가방 안의 캡슐을 떠올렸다. 극소형 에너지 저장 캡슐. 비상 전원용이지만, 충격 시 순간 방출 특성이 있어 자칫하면 폭발에 가까운 효과를 낼 수도 있는 물질.
이걸… 여기서 꺼내는 게 맞을까?
철수는 망설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한 개입은 과정을 정리하거나 도와주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건 결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개입이었다.
그 순간, 철수의 발밑 자갈 하나가 “툭” 움직였다. 분명, 자갈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그런데 마치 누군가가 철수의 발끝 아래로 아주 미세하게 밀어 넣은 것처럼. 철수가 중심을 잃고 휘청했다.
“어?”
가방이 활짝 열렸다.
툭—
무언가가 튀어나와 돌무더기 위로 굴러갔다.
동일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야, 조심—”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작은 반투명 캡슐 하나가 시냇가 돌무더기 중 하나와 강하게 부딪혔다. 찰나의 순간, 캡슐은 깨졌다. 폭발은 없었다. 그러나 캡슐 안의 고밀도 에너지가 돌 표면 일부와 화학적·물리적으로 융합되었다.
겉보기에는 아무 변화도 없어 보였다. 다만 그 돌 하나만 아주 잠깐, 미세한 진동을 품었다 사라졌다. 철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순간, 시냇물 위로 검은 그림자가 잠깐 지나간 듯했다. 철수는 확신했다. 이건 단순한 미끄러짐이 아니었다.
‘실수’를 가장한 ‘유도’.
그 검은 존재는 늘 이렇게 한다. 칼로 찌르지 않고, 넘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넘어짐을 책감으로 키운다. 다윗은 아무것도 모른 채 돌을 고르다가 그 돌을 집어 들었다.
“이거 좋네요.”
철수의 심장이 철렁했다.
“잠깐.”
그가 소리치려다 입을 다물었다. 동일이 철수를 쳐다봤다.
“뭐야, 방금 그거… 네가 떨어뜨린 거, 그거지?”
철수는 입술을 떨었다.
“…약간… 위험한 실험용 캡슐이었어.”
“폭탄 같은 거냐?”
“정확히 말하면… 에너지 저장체. 충격 받을 때 순간 방출하는…”
동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방금 그 돌…”
철수는 다윗의 손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이미 돌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내가 했던 실수를… 되돌려야 하나? 아니면… 이것마저도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이라고 믿어야 하나? 그때, 철수의 귓가에 또 다른 속삭임이 스쳤다.
‘봐라. 네가 망쳤다.
이제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네가 역사를 더럽힌 것이다.’
철수는 숨이 막혔다. 죄책감이 목을 조르듯 올라왔다. 동일은 철수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고 즉시 알아챘다.
“철수야.”
“….”
“네가 한 건 실수야.”
“알아.”
“근데…”
동일이 낮게, 그러나 단단하게 말했다.
“저 목소리… 너를 죽이려는 목소리야. 회개로 바꾸려는 목소리가 아니라, 정죄로 끝내려는 목소리.”
철수는 순간 멈칫했다. 동일이 계속 말했다.
“하나님이 쓰시는 무대 위에는, 우리가 저지른 실수마저도
때로는 하나님의 그림 속에 들어가기도 하더라고.”
철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할 일은…”
동일이 다윗을 가리켰다.
“끝까지 지켜보는 거야.
하나님이 저 소년과, 너의 실수를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를.”
철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리고 철수는 속으로, 아주 작게 말했다.
‘주님… 저 검은 속삭임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맞다면… 당신이 막아 주세요.
아니면… 당신이 책임져 주세요.’
사울의 장막 앞은 소란스러웠다. 다윗은 사울 왕 앞에 서 있었다. 왕의 갑옷을 입어보라는 말에 잠시 걸쳤다가 곧 어색하게 웃으며 벗었다.
“저는… 검과 갑옷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양을 칠 때 썼던 막대기와 물맷돌이면 충분합니다.”
사울의 얼굴에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과 어딘가 모를 기대가 함께 떠 있었다. 그때, 사울의 장막 그림자 아래에서 철수는 또 한 번 그 어둠을 느꼈다. 검은 존재는 이번에는 “사울”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내라. 보내서 죽게 하라. 그러면 너희는 영영 무너진다.’
사울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다윗을 바라보는 순간, 그 흔들림이 잠시 멈추는 것도 보였다. 다윗이 말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나를 건지셨은즉, 이 블레셋 사람에게서도 건지시리이다.”
그 한마디가 장막의 공기를 바꿨다. 어둠은 물러나지는 못했지만, 한 발 뒤로 밀렸다.
엘라 골짜기 가운데, 골리앗이 다시 앞으로 나왔다.
“오늘도! 싸울 자가 없느냐?!”
그 말에 한쪽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다윗이었다.
골리앗은 처음에 그 모습을 보고 조롱하듯 웃었다.
“나를 개로 여기느냐? 막대기를 들고 나오다니!”
블레셋 진영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때. 철수는 골리앗의 목 뒤쪽으로 검은 기운이 잠깐 “손”처럼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골리앗의 웃음이 더 커졌다. 더 무모해졌다. 더 가까이, 더 정면으로 다가왔다.
마치… 자기 이마를 ‘표적’으로 내주기라도 하듯. 검은 존재의 속삭임이 골리앗의 심장에 박혔다.
‘네가 이긴다.
정면으로, 크게, 확실하게.
저 꼬마를 밟아라.
두려움조차 주지 마라.’
다윗이 입을 열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그 선언이 공기를 찢었다.
동일은 순간 다윗의 옆모습에서 십자가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죄인을 위해 나가는 어린 양…
골리앗이 분노하며 앞으로 나섰다.
“오늘 내가 너의 살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에게 주겠다!”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다윗은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냈다.
철수는 숨을 삼켰다. 바로 그 돌이다. 에너지 캡슐과 미세 융합된 돌.
동일은 철수의 손목을 잡았다.
“철수야… 지금은.”
철수는 떨리는 숨을 삼켰다. 다윗은 그 돌을 물매 주머니에 넣고, 숙련된 손짓으로 줄을 잡았다. 몸이 낮게 웅크려지고, 어깨와 팔과 허리와 다리가 동시에 긴장했다. 물매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휘익, 휘익, 휘익—
동일은 숨을 멈추고, 철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철수의 귓가에 마지막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 돌이 네 죄다.
그 돌이 역사를 더럽힌다.
그러니 두려워해라.’
철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속으로 한 문장을 밀어 올렸다.
‘두려움은 네 것이고, 역사는 하나님의 것이다.’
순간, 다윗의 손에서 물매가 풀렸다. 돌이 날아갔다. 돌은 공기를 가르며 골리앗의 이마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충격 직전, 돌 안에 잠들어 있던 고밀도 에너지가 반응했다.
틱—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돌 내부에서 한 번의 ‘스위치’가 켜졌다.
“꽝!!!”
실제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효과는 작은 폭발처럼 나타났다.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닿는 찰나, 충격이 한 점에 집중되었다. 골리앗의 이마뼈는 마치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안쪽으로 함몰되었다.
거대한 몸이 중심을 잃었다. 골리앗의 눈이 한 번 위로 말려 올라가더니.
쿵!!!
대지가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는 앞으로 쓰러졌다.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숨 멎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몇 초 뒤, 누군가가 속삭였다.
“…넘어졌다.”
“거인이… 넘어졌다…”
그 말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넘어졌다!”
“골리앗이 쓰러졌다!”
블레셋 진영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윗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장 골리앗에게 달려갔다. 거인의 칼을 뽑아 목을 내리쳤다.
피가 튀었다. 사람들이 동시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철수는, 골리앗이 쓰러지는 그 순간 검은 기운이 찢기듯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았다. 마치 그가 기대한 결말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는 골리앗의 승리를 기대했을까? 아니면 다윗의 승리조차 정죄로 몰아 철수의 마음을 무너뜨리려 했을까? 둘 다였을 것이다. 그의 방식은 언제나 하나가 아니었다. 항상 여러 겹의 그물이었다.
한참이 지나 전투 소리가 잦아든 뒤에야, 철수와 동일은 조심스럽게 골짜기 아래로 내려왔다.
다윗은 아직 골리앗의 시체 곁에 서 있었다. 옷자락에는 피가 튀었고, 손에는 물맷돌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지만, 눈빛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동일이 먼저 그에게 다가갔다.
“다윗.”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아, 시냇가에서 같이 돌 골라주시던 분들…”
“축하합니다.”
동일이 말했다.
“정말… 믿음대로 이루어졌네요.”
다윗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한 건… 돌 하나 던진 것뿐입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나머지는… 다 여호와께서 하셨죠.”
철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정말… 나는 어디까지 개입한 걸까? 내가 떨어뜨린 캡슐 때문에 이 돌이 더 강력해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다윗은 말한다.
“나머지는 여호와께서.”
철수는 그 말이 자기 죄책감을 덮으려는 위로가 아니라, 자기 책임을 정확히 제자리로 돌려놓는 선언처럼 들렸다. 동일이 철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이지?”
그가 속삭였다.
“뭐가?”
“네 실수도, 네 기술도… 결국 이 안에 녹아들어 있는 거.”
철수는 조용히 웃었다. 씁쓸하면서도, 동시에 감사한 웃음이었다.
“하나님이란 분은… 정말 간섭이 심하시네.”
“좋은 의미로.”
동일이 덧붙였다.
다윗이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잠시 침묵.
동일이 입술을 열었다.
“우린… 당신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보러 온 나그네사람들이죠.”
다윗은 잠시 그 말을 곱씹었다.
“그러면…”
그가 말했다.
“오늘 본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절대요.”
철수가 대답했다.
“네가 던진 돌하고, 그 돌 안에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상한 힘까지… 모두.”
다윗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오늘 밤… 저는 아마 잠 못 잘 것 같아요.”
그가 웃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하면.”
철수와 동일은 그 웃음을 가슴에 새겼다.
밤이 되자 엘라 골짜기 위로 별들이 떴다.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노랫소리와 불빛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불빛과 노랫소리들이 점점 희미하게 들리며 철수의 주머니에 있는 SIMON가 붉은빛으로 변했다. 커다란 지표가 떴다.
LOCATION:
ISRAEL — DROUGHT PERIOD
TARGET: ELIJAH
동일과 철수가 숨을 삼켰다.
그때, 철수는 느꼈다. 골짜기 바깥,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서 있었다. 보이지는 않는데 차가운 확신으로 느껴졌다.
검은 추적자.
그는 이번엔 웃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다음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마치 속삭이듯 하지만 이번에는 철수의 귀가 아니라 철수의 마음 깊은 곳을 겨냥하며.
‘다음은… 굶주림이다.
다음은… 의심이다.
다음은… 너희가 서로를 원망하게 되는 자리다.’
동일이 철수의 팔을 잡았다.
“철수야, 우리…”
철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정체불명의 책이 마침내 페이지를 넘기며 빛을 낸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음 시대의 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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