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발언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다. 이것들만 잘 지킨다면 너도 나도 꽤 성공적인 정치 생활을 할 수 있을것이다.
첫째, 자기에게 불이익으로 돌아 올 수 있는 발언은 그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총대를 먼저 매지 말고 일단 추이를 관망한다. 예를 들어 본다면, 동성애에 관한 발언일 것이다. 개인마다 제각기 견해가 분명히 있을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발언이라도그 발언이 (e.g., 반 동성애) 자기의 정치 생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것 같다면 거의 대부분 정치인들은 침묵하거나, 다음에 열거하는 두번째 세번째 특징대로 행동 할 것이다.
이것이 정치인들의 특징이다. 정치인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을 초월한 사람들이다. 모든 관점은 ‘정치적’인 관점일 뿐이다.
둘째는, 원칙론적인 발언만 하는것이다. 일단 원칙론적인 발언을 내 뱉고 난 다음, 돌아가는 상황과 반응을 살피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일이 진행이 되면 … 내말이 바로 그 말이다.. 나는 이미 원칙적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라고 말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보면 거의 모두가 원칙론적인 합의들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공통 목적이다.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민족끼리 통일해야 한다. 모든게, 초딩들도 말 할 수 있는 원칙론적 립 서비스다.
NBA 팀 코치가, 우리는 Offence 적중률을 좀 더높혀야 하고 Defense 를 더 강화 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면.. 그게 코치가 할 말인가? 볼 보이도 그말은 하겠다. 구체적인 action plan 이 확실하게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Plan 을 과감히 실행시켜야하는게 코치에게 거금의 연봉을 주는 이유이다.
셋째는, 매우 애매모호한 단어를 골라서 표현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전략이다. 이 전략은 여차하면 자기에게 유리한 부언 설명의 여지를 남겨두는 전략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게 OK 라는건가 아니면 NO 라는 건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지 말고 니 관점에서의 해석만 명쾌하게 얘기하면 된다.
하여간 이건 정치인들의 일상이고 그들에 관한 얘기다.
그런데 교회 내 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여러 분야 특히 행정적인 면에서 이런 practice 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오늘 나는 간단히 <기도> 얘기만 하고 싶다.
까 놓고 얘기해서 기도를 하는데 왜 원칙적인 기도만 하는가? 왜 간구할 내용들을 주저주저 하는가? 왜 애매모호하게 한말 또 하고 미사여구로 기도 하는가?
가장 많이 사용 (?) 하는 기도 방법은, “내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비겁하게 요용되는 귀절에 근거한 기도이다.
예수님처럼 인류의 역사를 가름할 죽음이냐 생존이냐.. 라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님 뜻..” 이라는 말 제발 아끼고 조심해서 사용하자.
지금 아들이 교통하고 나서 생사갈림의 수술을 하고 있는데… “주님 뜻대로”… OMG.. 그냥 솔찍하게 “우리 아들 살려 주세요” 이렇게 외쳐라..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거다.
결혼하는데 “주님 뜻대로…” 두루뭉실 기도하지 말고 “갑순이랑 알콩달콩 잘 살게 해주세요” 라고 마음에 원하는 기도제목 그대로 까발려서 간구해라. 그게 먼 그리 어려운 말이냐.
실직되어 수개월간 실업자 생활하다가 이제는 집도 날린 판국인데 “주님 뜻대로…” 라는 정말 애매모호한 기도 하지 말고 “직장 빨리 주세요…” 라고 정말 필요한 말을 솔찍하게 해라.. 직장 돌라고 하는게 먼 챙피한 얘기냐… 그것을 주님 뜻대로..하고 몇시간씩무릅꿇고 열 올리며 중얼 중얼 대고 있으니 하나님도 짜증이 나실것이다. 그만 중언부언하고 뭘 원하는지 말해라 임마.. 라고 역정 내실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있으면 그애가 뭘 원하는지 나는 안다. 아주 잘 안다. 그런데 이놈이 “아빠, 닌텐도 사줘!” 라고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빠 마음대로 해 주세요” 라고만 지껄인다면 … 이게 정상적인 대화냐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드릴 기도가 당연히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정말 간구하며 드리는 기도도 물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사의 일상은 하나님과의 casual 한 대화가 그 기본 골격이 된다.
이말은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와 대화를 정립하지 못한 상테에서, 공적으로 교회 나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은, 그저 형식적이고 원칙적인 “임무” 수행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제발 개인적으로 집에서나 차안에서나 직장에서나 spontaneous 하게 드리는 기도만큼은 제발 솔찍해지고 제발 clear 하게 하자.
제발 “주님 뜻대로..” 라는 말을 요용하지 말자는 얘기다. 주님 뜻대로 라는 말은 궁국적으로 ‘하나님의 선’이 나의 기도응답의 ‘원칙’ 이 된다는 기본 신념이다. 그것은 정확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내가 갈망하는 기도제목들은 내가 정확하게 그 내용을 말해야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정해진 범위 내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구하고 갈망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그게 자녀된 권세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가 로보트에 불과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든걸 다 아시고 그의 뜻대로 군말말고 그저 따라만 가면 되는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아담과 이브에게 보여주신 “선악과” 자체부터 잇슈가 될 수 있다.
하나님 뜻대로만, 인생사가 자유의지나 자유갈망 추구없이, 살아야 되는것이라면, 소요리문답 제 1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 에 대한 답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과 영혼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라는 그 자체가 강요된 형식적인 일방적인 요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통해 “자발적”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또 그분을 즐거워 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두루뭉실하게 원칙적으로 “하나님 뜻대로…” 라고 하며 자신을 형식의 울타리에 가두어 둔다면 그것은 불쌍한 신앙생활이다. 바리새인들도 원칙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경건했고 경건하게 살기를 평생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를 왜 예수님께서 책망하셨는가. 그들은 타인에게 보이려는 행동으로 (예를 들면, 거리에서 크게 소리치며… 마치 골방에서 몇시간씩 기도하다가 나온것 처럼 보이려고 머리칼과 옷차림도 허트리고), 전통적 그리고 원칙적인 기도 형식으로만 중언부언.. 울법대로 하옵소서.. 어쩌고.. 하며 기도 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눈에 보이는 그들의 기도는 정말 자신의 갈망과 소망과 간구를 솔찍하게 표현 하지 않은 무책임한 그리고 형식적인 기도였을것이다.
우리는 솔찍한 기도를 했으면 한다.
정치인들 처럼, 할 간구 감추고, 원칙론적인 기도만 하고, 애매모호하게 하나님이 알아서 해석하시겠지… 하는 그런 태도의 기도는 과감히 버리고, 정말 내가 필요한것 내가 원하는것 내가 간구하는것을… 그냥 기도하자. 얼마나 솔찍하냐. 내가 원하는걸 기도하는게 뭐가 나쁜것이냐.
그게 기도다. 기도 하다보면 내 개인적 간구도 결국 주님의 뜻안에서 간구하게 되는 성숙이 온다. 그건 솔찍한 기도 다음의 순서다. 처음부터 “주님 뜻대로..” 월권행위 하지말자.
아이면 아이답게, 하나님의 자녀면 자녀답게, 원하는거 간구하자. 직장 좋은데 옮기고 싶으면 그렇게 간구해라. 가게에서 돈 도 벌고 싶으면 그렇게 기도해라. 건강해 지고 싶으면 그렇게 기도하면 된다. 뭘 가리고 돌리고 애매모호하게 “하나님 뜻대로..” 운운하는가.
하나님 뜻대로를 운운할 시기와 때는 따로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의 갈망을 나의 간구를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구하는게 진실된 기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