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들은 <믿음>에 대한 의문점들을
많이 갖게 됩니다.
솔직히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다>
라는 우리가 잘 인용하는 이 귀절은초신자들에겐 이론적인 말로 밖에
이해가 되질 않는게 사실 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 을 이해 하려고 여러가지 예를 들기 까지 합니다.
어떤 집사님은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수도 있다고 큰소리 치지만, <그럼 한번
산을 옮겨보세요> 라는
초신자의 말에 슬그머니 퇴장을 해버립니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믿음> 으로
맡겨 버려라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오리라~ 라고 은혜롭게 기도하신 장로님이
집에 돌아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장사가 잘 안되는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고민하는 모습도 우리는 봅니다.
옛날에 시골의 어느 교회에서 하두 비가 안오니까 비가 오게 전교인 기도회를 산중턱에서 하자고 광고를 했습니다.
<믿음> 을 갖고 기도하면 비가 온다는 말을 듣고 손자녀석이 우산을 들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묻습니다. <이녀석아 햇빚이 쨍쨍한데 웬 우산을 가지고 가냐>
손자가 대답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비가 온다고 해서...>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씀 하시길 <원 녀석! 그래도 그렇지..>
이 <그래도 그렇지> 라는 말의
뉘앙스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쨋든 이 <믿음> 을 잘못 이해하시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 하나가 아까부터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옆에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라고 있었습니다.
근처 구두방 할아버지께서 그 광경을 보고 계시다가 못참고 아이에게 다가 갔습니다.
<이 녀석아 너 거기서서 뭐 하는거냐 비도 오는데>
아이가 웃으며 대답합니다.
<네.. 버스를 기다려요>
할아버지가 꾸짖듯 말씀하십니다.
<인석아.. 아무대서나 기다린다고 버스가 서냐? 지정된 버스 정류소에서 기다려 야지>
그러나 아이는 계속 웃으며 발걸음을 욺기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할수 없다는듯 혀를 끌끌차며 돌아가십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이라는 것도 원칙이 있습니다. 아무것이나 아무때나 내 마음내키는대로 원하는 결과를 보는게 <믿음>
이 아닙니다.
믿음이 효과(?) 를 발휘할 때와 조건과 그리고 원칙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능치못할 일이 없다고 외치며, 벼랑에서 아래로 뛰어 내려봤자 새처럼 날아가기는 커녕 누구에게나 100% 적용되는 중력의 법칙으로..
정확하게 밑으로 떨어져 버릴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믿음> 의
원칙을 잘 이해 해야 합니다.
자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할아버지가 발걸음을 돌려서 다시 구두방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끼익~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놀랍게도 웬 버스가 아이의 앞에 정확하게 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할아버지가 의아해 하는순간 그아이가 열린 버스문을 통해 들어가면서 가벼운 미소와 함께 한말...
그 말에 할아버지는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는 얘기 입니다.
<할아버지.. 사실은 이 버스 운전사가 제 아빠 거든요..>
그렇습니다.
원칙이 있는 <믿음> 도 때로는 개인에게
원칙을 건너띄고 기적을 가져다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까 벼랑밑으로 뛰어내린 사람은 <우연>인지 아닌지
떨어지면서 마침 지나가던 큰 독수리에 걸려서 잠시 멈짓하다가
다시 떨어지면서 벼랑에 버티고 있던 큰 소나무가지에 이리 저리 걸리고 하더니만
거의 밑 부근에서 마침 솜 이불 을 잔뜩 싣고 지나가던 큰 트럭 화물위에 아주~ 가볍게
떨어졌다는 얘기 입니다.
이토록 <믿음> 이라는것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 있는가 하면 개인적으로 가능한 특별한 길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믿음하며 맹목적인 추구도 우리는 조심 해야겠지만
실지로 기적같은 믿음을 체험한 분들의 개인적 체험을 의아해 하지도 말아야 할것입니다.
여러분 제발 낭떠러지에서
자신의 <믿음> 을 시험해 보지는 말아
주십시오 ^^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