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회다니는 분들에게서 <시험> 받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목사님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은 … 다행히 (?)
… 없다. ㅎㅎㅎ
그러나 장로 권사 집사들이 이런 말 하는 것은 수 없이 들어 왔다.
그래 <시험> 에 들었으니 어떡하라는
거냐…
라고 속으로 생각은 하지만, 일단은 그들의 말을 끝까지 한번 들어 본다.
그 말 듣는 재미도 솔솔하니까.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시험에 들었다는 것은 결국 자기가 자기 자신을 시험에 들게 ‘허용’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같은 시험이라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그냥 넘기는 반면, 어떤 사람은 기여히 (?) 그 시험속에 자신을 집어 넣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시험을 ‘받는’ 것 하고 시험에 ‘드는’ 것 하고는 천지 차이다.
예수님 자신도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나 시험에 “드신” 것은 아니다.
어쨋든 인간이 시험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교회 안이건 교회 밖이건.. 매일 매일의
생활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기에 시험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시험받는게 무슨 큰 영광스런 일인가.
왠 광고는 그리도 크게 하는지.
“김집사 요즘 기분이 왜 그래” 라고 물어서 시험 받았다고 말 하는 것과, 스스로 한 밤중에 전화를 걸어 와서 다짜고짜 “이봐 이집사.. 나 요즘 시험 받았어~” 하는 것 하고는 큰
차이가 있다.
아니.. 나 같으면 시험 받으면 … 창피해서 라도 내 선에서 그것을 먼저 처리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혹시
나에게 원인은 없는지도 성찰해 보고.
그런데 이건 말 그대로 온 동네에 광고를 하고 돌아 다니는거다.
내가 지금 시험을 받아 기분이 나쁘니 나에게 사과할 사람은 알아서 사과를 하고, 위로해 줄 사람은 빨리 위로를 하고, 에이~ 그러지 마세요~ 라고 내 소매를
붙잡고 마치 VIP 손님이 매점에 들어와 그냥 나가려 할 때 간곡히 붙잡듯… 내가 이 교회에서 안 나가게 붙잡아 달라는... 어떻게 보면 정말 치사유치찬란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초신자 입장이라면 이해가 간다.
세상 돌아가는 규칙대로 살다가 교회안에서의 낯선 갈등은 초신자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30년 40년 신앙생활 했다는 직분자들이
시험에 들었다며… 하루 아침에 초신자들 보다 더한 믿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치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 (Coming-Out) 같이, 또는 무슨 위대한 독립투사의 정체를 밝히는양 “나 시험에 들었어” 라고 아주 당당하게 담화문 발표하듯 … 말 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해 돌라는 말이냐.
얼마전 세계의 교계 특히 경배와 찬양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호주의 그 유명한 힐송쳐치의 CCM 밴드 리더인 마티 샘슨은.. 자신이 시험에 빠졌다고 … 미디어를 통해 마치 대통령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듯 고백해… 교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의 말 중에는
“나는 진심으로 믿음을
잃었고…”
(genuinely losing faith),
“기독교는 나에게 또 다른 종교…” (Christianity is another
religion),
“성경은 모순 덩어리인데, 아무도 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full of contradictions),
등등의 말을 한 것으로 보아,
그가 중생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어찌어찌하여
시험을 받았다기 보다는,
아예 그는 처음부터 진정한 의미에서의 크리스천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Perform (그렇다 나는 일부러 worship 대신 perform 이라는 단어를 쓴다) 하는 예배인도를 보면, 그는 용모가 멋지고 기타연주와 그의 보컬은 매력적이다.
Jesus! Jesus! 외치며 손을 들고 예수님을 찬양하듯 눈을 감고 Perform 을 한다.
많은 성도들은 그가 진실되게 예수를 찬양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저렇게 눈을 감고 감격과 은혜를 느끼며 영이 충만한
찬양을 부르는 그는 얼마나 신실하고 깊은 믿음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일까… 성도들이 존경하며 부러워하며.. 그의 찬양속에서 그를 영적인 모델로 삼았을 수도 있다.
그의 진실 어린 제스쳐와 그의 입으로부터 선포되는
고백적인 가사에 은혜를 받고
그의 음악과 함께 깊은 영의 감동 속으로 빠지는데…
실지로 그 자신은 worship 이 아니라 perform 을 하며,
<예배>가 아닌 <공연>을 하고 있었다면,
우리들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까… 라고 나는 되
묻고 싶다.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Fake 찬양인도자들과 사이비 스피커들이 이미 이렇게 해 온지 오래 되었다.
Where were you?
베니힌, 케네스 코플런드, 케네스 헤이건, 모리스 세룰로, 라드니
하워드 브라운, 프레드릭 프라이스… 그리고
정말 아까운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주옥같은 곡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를 비롯한 수많은 영성이 충만한 곡들을 작곡한 존 윔버 등등등…
한국은?
정명석 (10), 이재록 (16), 김기동 (3) … ㅎㅎㅎ 골호안 숫자가 뭐냐구요?
교회와 성도들에게 황령하고 강간하고 사기하다가,
교회비리에 관대한 (?) 세상 재판소에서까지 … 결국 판결받은
형량이다.
정말 창피하다.
마틴 샘슨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만일 그가 미디어를 통해... “나는 신앙을 잃었다” 라고 말하는 저의가,
Publicity (자신의
인지도를 높히려는 일종의 세속적인 의도) 나
자신을 너무 높게 여기는 Narcissism (나르시시즘) 이 아니라면,
그는 그 이전에… 먼저
무릅을 꿇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대면을 먼저 선행했어야 할 것이다.
안 믿기면 coming out… 자기 뜻에 안 맞으면 “시험 받았다” 그리고 “고백한다..”… 이런 태도가 과연 진정한 크리스천인의 태도가 되겠는가 말이다.
더군다나 리더급에 있다는 사람이 말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슬픈 사실이 있다.
심슨의 예에서 명확히 보듯이, 겉으로 보이는
은혜와 진정성은… 얼마든지 Fake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안 믿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아도, 나의 음악성
나의 전문성 나의 말빨 (?) 로 얼마든지…기회만 주어진다면 … 교회 안에서 “Perform” 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위험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시험받았다는 그 사실 보다도 더 위험하고 더 괘씸한 우리들의 Vulnerability (취약점) 가 된다.
그래서
각종 악기를 천재같이 다루고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졌고
겸손하고 따뜻한 용모를 가졌고
경배와 찬양을 철철 넘치는 카리스마로 인도를 한다고
해도,
그가 영성과 은혜속에 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저 그의 재능적인 Performance 에
놀아 난 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이것은 마치, 속 마음이
어떻건, 멋지게 생긴 남자의 그 용모에 빠져, 벼락
시집을 가 버린 처녀와 다를 바 없다.
이경우 미안 하지만 궁국적인 책임은 … 그 처녀에게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비리 그리고 사역자들의 실망스런
진면목…
그것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실은 그런 재능과 겉모습을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있다는데에 …
그 누구가 반대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겠는가.
카리스마가 충만하고,
키도 크고,
몸집도 건장하고,
목소리도 중후하고,
강단을 치며 호령하는 모세같은 목회자가,
우리 교회 담임목사가 되어야,
대형교회 레벨에 맞는 목사이지,
키는 작고,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고,
노래도 못하고,
말빨도 없고,
돋보기 안경 쓴 볼품 없는 목사는,
우리교회 수준에 안 맞어..
라고 하는게 솔찍히 우리들이지 않는가.
선호 (Preference) 의 자유는 자칫하면 그 본질 (Requirement) 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들의 따가운 시선에 대한 샘슨의
소식을 update 하며 맺는다.
다행히… 샘슨은 come
back (이번엔 coming out 이 아니라) 의 여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만약 진리가
참이라면, 그것에 대한 나의 이해가 어떻든지 진리로 남을 것이다. 내가 만약 진리를 찾는다면, 내게 훨씬 더 분명히 보여질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또 한 마디 더 하기를 “난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배우고 있다” 라고 덧붙였다.
“배우고 있다” 라는 말은 “솔찍한” 말이며 “좋은” 의도의 말이다.
이미 자신을 낮추고 자신이 모르는 그 “진리”를 더
공부하고 배워보겠다… 라는 말이다.
두고 볼 일이지만 부디 그가 다 내려놓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부터 정립해 보기를 바란다.
끝으로 우리가 배운 Lesson 하나는… What you see is not everything 이다.
특히 교회리더를 채용이나 임명할 때, 관계자들은
그 사람의 재능이라 능력을 보기 이전에, 깊은 신앙의 내면을 관찰하고 믿음의 진실성에 민감해 져야
할 것이다.
Why? Because we’re talking about spiritual projects!
수 없이 보아 왔지만, 이 세상에는
재능을 가진 Performer 들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그 Performance 를 믿음의 증표라고 여기기 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
아예 철저하게 검증과 검증을 거쳐…
(예를 들면) 경배와 찬양 인도자 같은 리더들을 임명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Perform 하는 곳이 아니라
Worship 하는 곳이기에,
Performer 가 아닌
Worshipper 가 있어야 되는게
당연하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