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감하게 거리에서 전도하는 타입은 못됩니다. 믿지않는 자들에게 먼저 하나님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남들이 침을 튀기며 종교에 관해 설전을 벌일 때도 십사리 끼어들지 않는 타입입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가 되어 이런 주제로 debate 이 시작되면 내 기억으론 뒤로 내 뺀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일단 내가 직접 개입이되고 흑백 설전이 시작되면 나는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 승량이 (?) 같은 기질이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잘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ㅎㅎㅎ)
예전 회사에서 남침례교 목사 아들이었고 그 자신 목사였던 남묘호랭개교에 빠진 한 동료와 수일간debate 한 적도 있고, 마하리쉬 마헤시 요기에 심취해 위험한 관상기도에 빠진 어느 청년을 건너 낸 (?) 적도 있습니다.
우리 집에 찾아 온 여호와의 증인을 집으로 들게 하여 점심까지 먹이며 스스로 “선약이 있어서” 둘러되며 황급히 가게 한 적도 있고, 몰몬교의 신혼 부부와 어느날 신앙 얘기를 하면서 “그건 몰랐네요” 라는 말을 그들로 부터 들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해 준 적도 있습니다.
환청과 환상을 보고 태국 주술사에게 치료까지 받았다는 요상한 멕시칸 친구와 위험한 접전을 벌인적도 있고 (사실은 겁이 났음), 사람안에 모든 신이 있고 자연이 모든 신이라는 pantheism 신봉 작곡가와 설전을 벌인적도 있고, 과학적인 진화론은 왜 안믿고 허구인 하나님은 왜 믿냐는 자신만만한 벤쳐 기입인을 설득시킨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심플하고 매우 명학합니다.
이 모든 영적인 know
how, 영적인 comprehension, 영적인 결론은, 영적인
그 누군가의 개입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개미떼들이 줄지어 가는 앞에 조그마한 물 두덩이 있습니다. 그들에겐 바다 같을 것입니다. 앞선 개미떼들이 어쩔줄 모르고 활로를 찾지만 인간인 내가 내려 보기엔 돌아가려고 해도 (개미들에겐) 엄청 시간과 수색작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내가 그냥 조그마한 나무가지 하나를 그 물두덩에 놓아 주었더니 개미들이 그것을 타고 줄줄이 그 넓은 바다를 건너 버렸습니다. 개미는 과연 내가 그런 기적을 만든 장본인이란걸 알까요? 개미 입장에선 자기네들 논리로 이해가 절대 불가한 기적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개미들에겐 기적이지만 인간인 나에게는 별 일 아닌 과학이니 미신이니 종교니 따질 필요가 없는 엄연한 ‘사실’ 일 뿐입니다.
그런데 명심할것은, 개미나 사자나, 코끼리나 인간이나.. 모두 다 똑같은 피조물입니다. 즉 만들어진 창조물이라는 말이니다. 같이 창조된 피조물 사이에도 이런 어머어마한 이해의 간격이 있는데, 하물며 모든 만물과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더 엄청난 이해와 논리의 ‘간격’이 있지는안겠는지.. 솔찍히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성경은 욥기 38장에서 그냥 간단히 우리에게 말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속된말로 번역을 (?) 해보자면 암것도 모르면서 나 대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인간을 창조하신 분에 의해 그 한계가 이미 그어져 있습니다. 그 이상은 모두가 상상이고 망상이고 인간의 지어낸 허구일 뿐입니다.
요즘 AI 가 스스로 배우고 생각한다.. 라고 말합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이것은 축척된 지식의응용과 적용일뿐 절대로 AI 는 창조적 능력은 없습니다.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것이 새로운 창조 액션일것 같지만, 사실은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의 응용적 시도일뿐입니다.
AI 가 가진 리소스 그 한도내에서 어마어마한 계산력과 무한의 논리 확장 능력을 바탕으로 천문학적으로 (쉽게 말해 노가다식 계산으로) 계산해 내고 그 결과를 로직과 앨고리즘에 맞추어 필터링을하고 통하는지 적용을 해 볼 뿐입니다. 결과가 틀리면 또 이런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하면 됩니다. 그가 가진, 그에게 주어진 리소스 그 이상의 영역은 미안하게도 AI 씨는 아무리 애써도 왜 애쓰는지도 모른채 … 그냥 모를 뿐입니다. 그래도 결론을 생성하라고 버튼을 push 하면 AI 의 공상과 망상이 나올 뿐입니다.
AI 가 반드시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듯이, 우리 인간사도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컴퓨터에 필요한 논리와 정교한 앨고리즘을 정하고 효율적인 프로그래밍을 통해 완벽 작동의 모듈을 만들듯이, 우리들의 인생사와 또한 깔려있는 이 모든 우주의 운영도 그 누군가가 그 원리와 운영체제를 만들어 놓은것이라는걸 우리는 종교니 하나님이니 그 유무를 제쳐 놓고라도 솔찍하게 인정해야 할것입니다. 세상에 free lunch 가 없다고 말하듯이, 세상에 저절로 작동되는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도 알고 나도 압니다. 그냥 솔찍하게 인정합시다.
사람들은 이 다음 단계 때문에 어떤 존재의 ‘개입’을 인정 안하는것입니다. 인정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 과연 그 무엇이 그런 ‘개입’을 했느냐 라는 …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에 당면하기 때문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서, 하나님이 이 모든 미스테리의 주인공이다 라고 말하면, 그걸 어떻게 증명하느냐 라며 강하게 반박을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증명을 해야 믿을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은 아닙니다.
It’s fair.
여러가지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비 논리적일것 같으면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간단한방법은 ‘성경말씀에 쓰여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100% ‘웃기고 있네… ‘ 라고 코웃음칩니다. 너희들이 쓰고 너희들이 믿는다는 그 성경이 어떻게 증거가 되느냐 라고 가소롭게 쳐다보는데 이것도맞는 말입니다. 어떻게 성경을 믿을 수 있는가. 성경은 절대로 영적인 ‘개입’이 없이는 절대 절대 이해 불가는 물론 하늘이 두쪽나도 믿을 수가 없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Divine Intervention 이 필요한건데 이 ‘개입’이 시도 때도 없이 아무때나 아무에게나 임하면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짖궂은 (?) 하나님은 그리 쉽게 허락을 안 하십니다. 나도 뭐라고 할 입장이 못 됩니다. ㅎㅎㅎ
자… 이런 영적인 한계에 봉착한 사람들에게 ‘그냥 믿어라’, ‘믿다 보면 안다’, ‘기도 해 봐라’ 라고 소리쳐 보는것은, 솔찍히 딴 방법을 몰라서 그렇게 소리쳐 보는 거지, 정말 좋은 방법이나 시도는 결코아닙니다.
제한된 지면에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최소의, 최후의 통로인, 좁은 ‘합리적’ 접근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말은 한방에 훅 가버릴 영적인 ‘개입’이 불가능하다면 그래도 우리 모든 인간이 가진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공통 합리적 논리로 접근해 볼 방법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전에 초신자/비신자 청년들에게 <당신은 알고 믿습니까> 라는 세미나를 몇번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에 했던 간단히 예를 들어 보기로 합니다.
나: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읍니다.
청년: 성경을 어떻게 믿어요?
나: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모든것을 믿죠?
청년: 저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나 내가 직접 보고 안 것은 믿습니다.
나: 모든 것을요?
청년: 예. 그게 현대를 사는 지식인들이 가져야 할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음. 그러면 이순신 장군이 실지 인물이라는것도 믿겠군요?
청년: 당연 하죠.
나: 어떻게 그걸 증명하죠?
청년: 그거야… 역사책에 쓰여 있으니까요.
나: 그 역사책을 어떻게 믿죠?
청년: 아니 역사책을 못 믿으면 어떡해요. 공정하게 기록한건데요.
나: 그러면 아브라함 링컨, 케네디, 이승만 대통령 등도 형제가 보지는 않았어도 그걸 기록한 역사책에 믿기 떄문에 의심없이 믿는다는 얘기군요?
청년: 맞습니다. 그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나: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과학적’ 증명은 아닙니다. 과학적 증명이란 100원짜리 한국 주화가 크냐 25전짜리 미국 quarter가 크냐 를 알려면 실제로 두 주화를 비교해 보면 안다거나, 아이보리 비누가 따뜻한 물에 뜨냐 갈아 앉냐 를 알려면 실지로 따뜻한 물에 집어 넣어보면 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과학적’ 증명법입니다.
청년: 그 그렇군요.
나: 이 세상은 이런 과학적 증명법보다 몇배 더 많게 다른 방법으로 믿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금전 얘기한 이순신장군 같은 케이스입니다.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우리는 역사책에 의해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습니다. 조금전 거리에 파킹해 논 차가 거기 있을것이라는 그 믿음도 과학적 믿음은 아닙니다. 그냥 믿는것이죠. 내가 내 아버지 아들이라는거 별로 의심합니까? 내가 태어난거 내가 본것도 아닙니다. 동사무소가면 호적에 그렇게 나와 있고 또 그렇게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의심치 않고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제대로 된 증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긴 대화가 될 수 도 있기에 여기서 그칩니다. 그런데 그 발견된 책 숫자나 어느정도 사건시기에서 가깝게 발견되었냐등 신빙성을 결정하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성경은 일반 역사책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신빙성이 뛰어 납니다.
그 성경에 하나님에 대한 신빙성 100%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저자는 하나님입니다. 일반 저자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성경을 썼다는 것을 믿어라는것은 무척 어려운 요구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 성경속에 온 우주의 기원과 운영의 기록들이 즐비합니다. 세계사에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기록들이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파헤쳐 조사하고 검증하면 할 수록 성경에 기록된 고대사나 사건들 인물들 그리고 민족들, 문화들, 건축물들이 기막히게 증명이 됩니다. 별건 아니죠 원래부터 사실의 기록이기 떄문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일부러 붙잡아 놓고 이런 얘기를 할 수 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이 사실들을 가만히 앉아 벙어리가 되어 버릴 수는 더 더욱 없습니다.
인간이 어디서 와서 왜 이곳에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해야만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등등 인간이 serious 하게 알아야 할 정보들이 성경에 다 있습니다.
아나야. 아닐거야. 죽으면 아무것도 없어. 그냥 잠자는 것 같을 거야. 이것은 AI 가 리소스 한계 때문에 우리들에게 들려 주는 허구와 같습니다.
우리보다 계산력이 수백 수천억 빠르고 뛰어난 AI 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모든게 아닌것입니까? 또 그것을 믿는 우리들이라면 얼마나 어리석은 도박이 되겠습니까.
미안하지만, 죽고 나면 한 수 물리는것은 불불불불가 합니다.
죽은 다음, 생생히 알 수 있는 그 사실이 정말 정말 자신에게 도래한다면… 그 때는 아무런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무조건 믿으라면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번 쯤은 진지하게 내 마음속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burn-in 되어 있는 나 라는 존재의 Firmware 에 각인된 그 ‘소리’에 귀를 귀울 필요가 반드시 있다는 얘기 입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기회가 와도 ‘못’ 믿는게 아닌 ‘안’ 믿는 …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정말 정말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얘기를 하면서 끝내겠습니다 (지어낸 얘기입니다 물론).
미국 중부지역에 홍수가 엄청 크게 와서 온 마을이 지붕까지 물이 올라 왔습니다. 사람들이 죽어 가고 가축들이 떠 내려가고, 이제 급기야 산위에서 산사태를 동반한 엄청난 양의 물이 쏱아져 내려 온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붕위에서 발을 동동 구루며 구명 보트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갑돌씨도 지붕에 있습니다.
조금있자 보트 한척이 나타났습니다. ‘빨리들 타세요’ 사람들이 보트를 타는데 갑돌씨는 “나는 하나님이 반드시 직접 나를 구해 주실 손길을 펼치실것이니 걱정마시고 먼저들 가시요’ 하며 사양했습니다.
조금 있자 보트 한척이 또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사람이 또 탔는데 갑돌씨는 또 사양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기적을 보여 돌라며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조금 후에 3번째 보트가 나타났습니다. ‘마지막 보트입니다 타세요!’ 했지만 ‘걱정마세요’ 하며 갑돌씨는 버텼습니다. 잠시후 산사태를 동반한 거대한 물쌀에 갑돌씨는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다음 하나님 앞에 선 갑돌씨.
갑돌: 하나님요~ 와 그렇게 쎄가 빠지게 기도하고 기다렸는데, 저를 구해 주지 않았능교?
하나님: 먼 소리여?
갑돌: 왜 구원의 손길을 저에게 펼치지 않았냐는 말 아임니까 마!
하나님: 이놈의 시키가.. 얌마~ 내가 세번이나 보트 보내줬으면 나도 할 만큼 한거 아니냐?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기회는, 여러분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증명되는, 그런 기회는 결코 안 올 수 도 있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말 할때 한번쯤 귀를 기울려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