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회사에서 국내 출장을 자주 다닐때 출장간 타주의
낯선 교회에서 예배를 보면서 가끔 느낀 점이 있습니다. 어느 제법 큰 (장로) 교회에서 주일 예배에 드리는데 찬양시간이었습니다. 찬양팀이 거의 15명정도 되었고 찬양인도자가 멋지게 기타를 치며 열정적으로 인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은헤가 안 되었습니다. 제 탓도 물론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리고 객관적인 이유는 그날 찬양곡이 약 7-8곡 정도 되었었는데, 딱 한곡만 제외하고는(저에게는) 모두가 “새” 곡 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크린에 띄어진 악보를 보며 ‘배우며’ 찬양을 하다 보니까, 가사에 집중이 안되었고 그러다 보니까 (주관적으로) 은혜가 안 되더라는 얘기입니다.
새 노래를 좀 배우시죠~ 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 저 자신 역시 찬양.워쉽 리더로서 일반 성도.대원들 보다 꽤 많은 “새” 노래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시절이었기에 제 ‘무지’ 때문 만은 아니었음을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주위를 살짝 둘러 보니 모든 곡에 이미 다 익숙해서 같이
찬양하는 성도들은 별로 많지 않았고, 선율을 듣고 즉석에서 따라 부르는 (혹은 부르려는) 성도들이 대부분인듯 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제법 큰 교회나 현대교회를 추구하는 교회일수록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이것을 (‘새 노래’) 경쟁하듯 매주 바꾸어 부르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트렌드나 경쟁에서 쳐지는듯, 사명감(?)을 가지고 힘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찬양인도자는 물론이고 목회자들까지, 새 노래를 부르는것이 어떤 선구자 (Pioneer) 적인 임무인듯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선두자 (Forerunner) 역할을 하는 교회 리스트에서 쳐지는 것인듯, 아는듯 모르는듯, 너도 나도 매주일 새 노래로 찬양하기에 급급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의 김상중씨 어조로), 이런 트렌드에 동조하는 찬양리더들의 공통된 주장이 있습니다. 바로 시편 96편 1-2장에 나오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라는 귀절입니다.
과연 이게 매주 새노래로 노래하라는 귀절입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새노래란 새롭게 발간된 노래나 아직 불러보지 않은 새 노래… 란 뜻이 절대 절대 절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노래란, 예레미야애가 3:22~23에 나오는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에서 말하는 아침마다 “새로우니”에 들어 있는 그런 뜻… 같은 환경, 같은 조건, 같은 육체이지만
무언가에 의해 새롭게 샘솟아 새롭게 변화된다는 … 그런 뜻과 같은 맥락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외부적인 새로운 노래로 인해 내부적인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적인 우리의
마음의 변화에 의해 외부적인 노래가 ‘새롭게’ 변화된듯
불리어지고 느껴진다 라고 말하는게 옳바른 해석일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부적인 변화는
결과적으론 ‘영적’인 변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일 새노래가 정말로 이전에 불러보지 않은 새롭게 작곡된
노래를 말한다고 하면, 우리 교회는 매주 새로운
노래를 배워서 불러야 된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교회가 새 노래 시판장과 발표장이 된다는 논리도 나올
수 있는데, 아시다시피 절대적으로 틀린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매주 새로운 곡을 고집하는 이유는 역시
인간적인 이유가 크다고 봅니다.
딴 교회보다 더 일찍 새 찬양을 해야 먼가 발빠른 교회인것
같고, 특히 찬양인도자들은 내가 무언가 진취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걸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담임목사의 입장에서도 시대 트렌드에 뒤치지지 않는 선도주자적 교회임을 은근히 지향하는, 복합적인 이유에서 생긴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십수년전에 부르던 그 찬양들을 계속 부르자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저 역시 새 찬양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과 트렌드를 보기를 원합니다. 다만 너무 과하게 새 찬양만
고집하는 비 성경적인 원칙이 원칙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일 뿐입니다.
얼마전에 모 크리스챤 신문에서, 주일예배시 은혜가 안되는 10가지 (?) 이유라는 제목에서 미국의 저명한 어떤 목사님이 (죄송하지만 세부사항을 기억 못합니다만) 지적한 사항중에 이 ‘새 노래’가 놀랍게도 상위권에 있음을 읽었습니다. 새노래가 예배에 방해가 된다는 말은 성도들이 새노래에 집중을 하지도 못할뿐더러, 바로
그 새노래를 오히려 ‘배워야’ 하는 그
이유로 인해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매우 타당한 지적입니다.
만일 정말 새로운 스타일과 새로운 분위기를 원한다면, 먼저 예전에 하던 찬양곡을 새롭게 ‘편곡’해서
불러 보기를 권합니다. 편곡의 목적중에 하나가 바로 그 이유입니다. 템포도 변화 시키고, 스타일도 변화시키고, 분위기도 편곡을 통해 변화 시켜 보십시오. 그러나 선율과 가사는 이미 성도들이 다
익숙해져 있으므로, 스트레스 없는 친근감을 유지하면서도 기분은 ‘새롭게’ 느껴질 수 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1-2곡 정도는 전혀 새로운 곡을 선택할 수 도 있습니다.
모든 찬양곡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동참하여 은혜받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수단’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매주 새로운 곡을 애써 (?) 고르며 콘티 짜기에 고군분투하시는 찬양리더들이여.. 우리가 왜 매주 새로운 곡만을 반드시 불러야 하는지 명쾌한 성경적인 답이 없다면,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남들 보다 더 빨리, 라는 그런 생각을 한번쯤 바꾸어 볼 의향은 없으신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새노래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새롭게 변화된 (rejuvenated) 노래이지 결코 새롭게 작곡된 노래가 아님을
한번쯤 상기해 보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