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 칼럼

Page Title Facebook 커뮤니티에 연재된 스티브의 교회 음악 칼럼입니다. 교회 음악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목음악 칼럼 (28) - 무림의 초절정 단계: 음악2024-07-01 10:09
작성자 Level 10

저는 어릴적에 무협소설을 무척 좋아 했습니다.
그러나 이소룡 영화에 등장하는 쿵후나 태권도 하는 사람들 같이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아무리 대단하다고 여기며 보려고 해도 가식의 수준을 넘어 어린애 장난 같이 보이는
그런 주먹 아무렇게나 휘두르고 맞고 하는그런 따분한 Martial Art 가 아니라... 아예 몇단계 차원을 뛰어넘어
현실적 감각과는 전혀 거리가 먼 .. 진짜 진짜.. 허무맹랑한 (?)  공상속의 그런 무림 도사들의 얘기 말입니다.
내공이 등장하고 장풍이 뿌려지고 신비로운 약초의 위력과 절정의 고수들이 등장하는 그런 무협소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의 자유로운 공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나는 한가지 저를 매료시킨 장면은 어느 절정고수 두사람의 대결 장면입니다.
우리 생각에 무시무시한 검이나 파과력을 가진 장풍이 등장할것 같은데 의외로
한 사람은 비파를 들고 한사람은 수금을 들고 대결을 하는 것입니다.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을 하려나?)
비파를 든 사람이 음악을 연주하다가 현의 한줄을 상대방을 향해 강하게 튕기니까
가공 할만한 위력의 에너지가 상대방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 수금에 갖다댄 상대방의 입술에서 역시 강하게 나오는 
한 마디의 선율과 부딪쳐 ... 잔잔하게 소진되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수들은 주먹이나 발길질 그리고  창과 검을 사용합니다. 조금 높아지면 기와 장력을 사용합니다.
조금 더 높아지니까 전혀 관계가 없을것 같은 <음악> 이 사용되더군요.
아마.. 소설을 쓴 사람도 이 음악의 위력을 어쩌면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음악의 위력에 관해 잠시 얘기해 보는것입니다.
우리가 흥겨우면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거나하게 취하면 어김없이 노래가 나옵니다.
중대한 결전에 임하는 군사 앞으로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 합니다.  결혼식과 장례식에 음악이 없다는것은
상상을 할수가 없습니다, 음악은 선인 악인 모두가 즐기고 사용합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와중에도
클라식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즐겼다는 얘기도 있고, 희대의 살인자들 중에는 전문가 이상의 음악적 지식이
있었던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사와 행동으로 어필할수 없는 분위기가 짧은 배경음악 하나로 간단히
잡히기도 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경쾌한 음악으로 순식간에 바뀌기도 합니다.  미국의 대형할인 매장인
월마트를 통한 테스트에서는 음악의 유무와 음악의 종류에 따라 그날의 매상이 현저하게 차이가 보임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최면술이 스트레스 질환 치료에 쓰일때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음악치료 (Musical Theraphy)
가 떠오르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주로 클라식 음악으로 치료를 하지만, 요즘은 뉴.에이지 음악은 물론 한국의 토속 음악으로도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Two Koreans 의 리더였던 김도향씨는 태교음악으로 이미 한국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음악은 무궁무진하게 그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돈이라도 정직한 돈과 더러운 돈이 있듯이, 이 음악의 power 에도 위험성이 내재해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거룩한 음악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극한 쾌락을 추구하는 음악, 더 나아가서는 악령과의
접선을 추구하는 사탄의 음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유명한 록.뮤직의 신화적인 존재인 레드 제플린(Red Zepplin) Stairway to Heaven 중에는
"들어라.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사탄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
나의 사랑하는 사탄, 다른 어떤 이도 길을 만들지 않았다."   라는 노골적인 사탄 숭배의 고백이 나옵니다.
마이클 잭슨의 Beat It 을 거꾸로 들어보면 (backmasking 이라 하죠)  "나는 내 안에 있는 존재가 사탄이라고 믿는다" 라는
소리가 녹음되어 있음을 압니다.
이런 가사의 위험성보다 더 강렬한 위험성은 바로 우리가 부르는 찬양의 <비트> 에서도 볼수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심플한 그러나 반복되는 타악기의 리듬을 통해 거의 100% 최면에 빠져드는 ritual 을 정기적으로 경험합니다.
또한, 간단하지만 같은 선율을 수십번 반복하면 우리도 모르게 음악의 최면에 빠질수도 있는데, 이것 때문에 Vineyard Music  
한동안 경계대상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아시는 Martin Nystrom 은 척.스미스 목사님의 각별한 배려로 과거 히피의 
신분을 버리고 기독교의 신실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목마른 사슴 시내물을 찾아 ...> 같은 신령한 곡을 작곡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얼마전 Toronto Blessing (이곳에선 짐승 울음 웃음소리를 내며 영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운동 집회에서 이 곡을 수십번 반복함으로
온 청중이 어떤 메세지나 말씀 선포와는 관계없이 군중최면에 빠져들어 논란이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우라는 찬양을 할때, 스타일과 개성을 살려 때로는 싱코페이션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일반 대중 음악 콘서트에서는 이 싱코페이션의 과도 사용으로 개인적인 쾌감, 전율, 긴장 등이 유발하는 기획이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싱코페이션과 비슷한 것으로 일반적으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우프탁트(Auftakt) 라는 기법이 있는데
이것은 약박이나 중심 리듬 이전의 준비부분의 기교를 말합니다
아우프탁트의 과도한 사용은 상당한 리듬감을 느끼게 하며, 강한 비트를 살리는데 주로 사용 됩니다.
또한 싱코페이션보다 더욱 강한 만트라 (의미 없는 말들을 반복해서 말하는 일종의 주문) 적인 효과를 가집니다
(이것은 남묘호랭교 에서도 사용되는 최면주문적 기교입니다)
그러므로, 무의식이나 체험을 강조하는 뉴 에이지 음악, 혹은 기독교 내의 은사주의 운동에 사용되는 복음송들이 
싱코페이션이나 아우프탁트를 심하게 사용하는 음악들을 수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효과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아뭏든, 음악은 개성과 스타일이 존중 되어야 하고 장르와 다양성에 우리는 open mind 를 가져야 하겠지만
바로 위에 제가 잠깐 예로 들은 이유들 때문에, 교회내에서의 찬양및 경배 인도자들은 반드시 검증이나 어느정도의 전문교육 없이는
직분을 쉽게 감당 해서는 안될 것이며, 아무리 인원이 모지란다고 ...기타를 조금 칠줄 알고  어느정도 노래실력이 있다는 이유로
함부러 이렇게 critical 한 직분인 찬양인도자의 책임을 맡겨서는 안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런 음악적 배경의 이해는 물론 영적인 능력까지 겸비함이 필수 조건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정글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그 정글의 실체를 전혀 이해못함은 물론 그 해결 지식도 전무하다면, 과연 여러분들은
그 관광 가이드에게 자신의 여행을 쉽게 맡기실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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