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대로 해!”
수 없이 들어 본 말입니다. 시험 칠 때도 운동 할 때도 공연 할 때도 회사 프레센테이션 할 때도 선배들과 조언자들이 나에게 들려 준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이것이 진리라는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하던대로 안하고 갑자기 즉흥적으로 돌발적으로 행동하여 손해보고 “아~ 그냥 하던대로 할껄’ 했던 적들도 꽤 있는걸로 기억됩니다.
교회에서 경배와 찬양으로 예배를 인도해 왔던 저에겐 이런 딜레마가 실제 상황이 되곤합니다.
아이로니컬 하게도 제가 수 없이 했던 <현대 예배> 세미나에서 ‘예배의 흐름을 성령님께 맡기고 정해진 순서와 포멧에 매달리지 말라’ 라고 외치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연습때나 콘티에도 없었던 순서들… 즉흥적으로 앞자리에 앉은 성도들 중 한명에게 대화를 한다든지, 갑자기 파워포인트 담당자에게 내가 생각한 이미지 화일을 Display 하게 한다든지, 찬양을 도중에 갑자기 멈추게 하고 드럼이나 기타나 솔로를 요구한다든지, 곡의 순서를 갑자기 바꾼다든지 Repeat 을 바꾼다든지, 대원들에게 율동을 하라고 요구한다든지, 성도들을 일으켜 세우거나 박수를 다른 비트와 리듬으로 치게 한다든지 하는, 콘티에 없고 연습때 해 보지 않은 즉흥적행동들이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지극히 인도자의 재량에 달렸고 인도자의 연륜과 재치에 따라 훨씬 다양하고 역동적인분위기를 생성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런 즉흥적 행동이 “성령이 이끄는 대로…” 의 범주에 속하느냐 하는 얘기입니다.
인도자의 마음과 의도를 그 누구가 알겠습니까만, 같이 경배하고 찬양하는 대원들이나 성도들은 인도자의 리드에 그저 따라 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인도자는 성령의 인도함에 따랐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증명(?) 할 객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이게 속된 말로 개인적인 오버액션 (?) 일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흥이나서 해 보고 싶기 때문에 시도해 보는, 성령의 인도와는 관계없는 행동일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법 규모가 크고 전문 체계가 잡힌 (미국의) 경배와 찬양팀들은 철저하게 콘티 그대로 나갑니다. 콘티에 없거나 연습때 해 보지 않은 순서들은 전혀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경배와 찬양의 리드가 있고 예배 감독 (Director) 이 있습니다. 대원들은 전부다 In-Ear 모니터링 리시버를 끼고 있습니다. 세션중 조금이라도 콘티에 없는 행동이나 즉흥적인 (variation) 연주가 나오면 감독이 즉시 지적을 합니다.
그래서 찬양 리더도 절대로 독자적인 즉흥적인 행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일반 엔터테인먼트를 예를 들어 봅니다. 아주 예전엔 토크쏘에 게스트가 나오면 MC 가 재량껏 이끌며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게스트는 거기에 맞추어 대답을 합니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질 염려가 있기 떄문에 MC 역량이 중요합니다. 여기엔 콘티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게스트가 4-5명 될 수 도 있는데 즉흥으로 나갔다간 어떤 게스트만 스폿을받고 나중에는 정말 삼천포로 빠질 염려가 농후하기 때문에, 이젠 예능프로에도 반드시 작가가 있어서 그 작가가 게스트들과 사전에 Pre-interview 를 한 다음 흥미로운 에피소드나 토픽들을 바탕으로 디테일한 스크립트을 만들어 대본대로 대화를 진행하게 합니다.
물론 진행하다가 애드립이 나올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일반 엔터테인먼트계에서 말하는 ‘애드립’이, 우리들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중에 ‘성령님이 인도하는 대로’ 라는 자격으로 즉흥적 흐름으로 둔갑을 하게되면 곤란해 진다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의 예배인 제사방식을 보면 정말 시시콜콜한 디테일까지 진행목록 (콘티)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디테일한 희생제물 리스트들, 제사물의 우편 뒷다리를 위아래로 흔들라, 제물을 불사르고 그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라를 비롯하여,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가는 절차, 정확한 포멧과 순서들 등등 정말 데테일하고 정확한 그리고 엄밀히 따라야할 콘티/스크립트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과정 과정과 포멧 자체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보고 싶어 하시는) 그 무엇이 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현대 예배는 많은 포멧과 형식이 없어지거나 간소화되거나 변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과연 하나님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진, 보다 나은 worship 을 위한것에 목적이 있는지, 아니면 예배 드리는 우리들을 위한 그 무엇 (편리함, 만족감, 과시감등등) 때문에 있는지 한번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해 하지 말아야 할것은, 당연히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배의 포멧과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 구약의 liturgy 중심 vs 현대의 기능 중심). 그리고 예배의 목적에 따라 예배 형식이 달라 질 수 도 있습니다 (예,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 vs 구도자/비.초신자를 위한 예배)
마찬가지로 경배와 찬양 세션중 워쉽리더는 영감에 의해 멘트를 바꾼다든지 곡의 흐름을 변경한다든지 하는 어느정도의 flexibility 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충실히 연습한 예배과정을 성실히 따르며 지켜나가는것도 예배드리는 우리들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리더 한개인의 개인적 즉흥행동이 전체흐름을 ‘성령의 개입’이라는 이름하에 수시로 변경하게 된다면 더 이상 이 예배는 Corporate Worship 이 아닐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Personal
worship 은 개인적으로 혹은 개인 집회나 콘서트등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가 있을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것은 공예배 워쉽 세션에 관한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에피소드 한가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십수년전 덴버에 처음 만든 헵시바 찬양팀을 이끌고 역시 처음 창립하는 CBMC 덴버지국 오프닝 디너파티에 초청받아 간적이 있습니다. 헵시바 단원들을 모집하고 훈련하고 정기 집회를 가진 약 1년후 였기 때문에 세션진행에 대해선 잇슈가 없었습니다.
“하던대로 하자” 라고 기획하고 곡도 뽑고 연습도 하고 드디어 메리앗트 호텔 볼롬에 약 3-400명이 모인 (거의가 크리스챤들) 가운데 찬양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찬양 세션은 게스트들이 만찬을 하는 동안 약 30분 순서를 맡은것이었습니다.
찬양곡들은 이번 창립하는 CBMC 에게 크리스챤의 초심을 잃지말라는 의도로 거의 다 조용하고 영성있는 곡들을 뽑았읍니다. 그런데 찬양을 진행하다 보니까, 손님들이 주위가 산만한것 같고 Boring 하신것 같아, 갑자기 제가 곡 레파토리를 빠르고 신나는 곡들로 바꾸었습니다 (빠른 곡들을 포함한 레파토리들이 항시 준비되어 있었읍니다).
그러자 청중들이 focus 하였고 박수도 치는등 분위기가 바뀌어 졌습니다.
그날 공연은 성공적 (?) 으로 끝난걸로 결론지어 졌습니다. 대원들도 즉흥적인 저의 에드립 (혹은 성령의 인도함으로 바꾼 흐름 ㅎㅎㅎ) 에 찬사와 만족감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먼가가 잘못 된것을 느꼈습니다.
그 공연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공연이 아니었고 청중들을 즐겁게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곡을 바꾼것은, 보다 나은 경배를 위함이 아니었고, 보다 나은 청중들의 즐거움(?) 을 위한 즉흥 애드립이었습니다.
제 Focus 는 청중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찬양은 미안하게도 없었습니다.
생각하여보니 식사하며 박수치며 환호하는 청중들의 그 모습은, 회갑날 밴드 불러놓고 먹고 마시고 박수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의 중앙엔 우리 헵시바 찬양팀이 있었고, 그 찬양팀의 중심엔 제가 있었고, 저 마음의 중심엔 지극히 인간적인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론 다음 두가지를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식사하는 모임에는 절대 찬양공연 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focus 된 사람의 즐거움을 위한 세션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해진 콘티는 100% 그대로 지킨다. 콘티를 넘어서면 나의 이기적인 목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