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보스톤 직장을 관두고 콜로라도로 돌아 왔던 적이 있다.
보스톤에서 콜로라도는 거의 2천마일쯤 되는데 한번도 안 쉬고 달려도 30시간이 넘는 거리다.
보통 2박 3일 정도 잡으면 적당하다. 그런데 그때가 3월달 쯤인지라 거의 모든 하이웨이가 아직도 눈이 쌓여있거나 눈이 오거나 할 겨울철이였다.
Route 은 두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북쪽 I-80 번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버팔로를 지나 NBA 스타 르브란 제임스가 있던 (지금은 LA 레이커스로 옮겼지만) 클리블런드를 지나고 유학 첫 정착지였던 시카고를 지나 네브라스카 주를 거쳐 덴버로 가는 방법과, 약간 남쪽인 I-70 를 타고 진짜 볼것 없는 피츠버그를 거치고 오하이오주를 건너 세인트 루이스와 깡촌 캔사스 주를 거쳐 덴버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다.
거리는 북쪽 route 이 조금 가깝고 덜 지루하지만, 중간지점 부터 (특히 캔사스) 그냥 깔아놓은 평지 그 자체인 남쪽 route 을, 겨울철 안전을 위해 택했다.
그 당시 내가 몰던 차는 거의 2십 7만 마일을 넘은 Isuzu Trooper 였는데 괴물 차 였다. 거의 15년 넘은 old model 이라 옵션도 별로 없었고, 왼쪽 창은 열리지가 않았고, 와이퍼도 반만 작동이 되고, 히터도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모습을 한 차였다.
그런데도 내가 그 차를 사랑(?)한 이유는 단 한가지다. Durability 와 Reliability 다. 보통 차들은 대게 2십만 마일정도 되면 거의 퇴물이 되거나 장거리 운전은 피하게 되는게 일반적인데, 나의 애마는 충직하게 고장없이 달려주었다. 그래서 눈발이 휘날리는캔사스 광야를 야밤에 달리면서도 큰 공포는 없었다.
그때만 해도 젊었던지 일단 계속 달려서 덴버로 들어가자… 라는 목표아래 CD 를 들으며 쉬지 않고 달렸다. 밤이 되어 폭설이 내리고 도로가 거의 얼음판 수준인지라 Freeway 엔 달리는 차가 거의 없었다. 가다보니 왼쪽 오른쪽 ditch 로 차들이 굴러떨러진 모습이 보였다. 어떤 (Hill) 구간에선 정말 black ice 떄문인지 차들이 발발 기며 미끌어 지는 장면도 보였다. 다년간 다져진 겨울철 안전운전 고수(?) 이기도 하지만 나의 애마 Trooper 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켄사스를 지난 지점부턴 앞이 거의 안보이는 폭설이 내린 관계로 거북이 운전을 하다가 결국 가까스로 찾은 모텔에서 1박을 한 기억이 있다.
So, what’s the moral of
this story?
폭설이 내리고 도로가 빙판인 상황에서 수십만불 넘는 페라리나 렘버기니 찾는 사람을 우리는 Idiot 이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에선 옵션도 없고 슬릭하지도 않고 가속력도 없고 빵빵 사운드가 터지지 않아도 그저 충직한 돌쇠처럼 묵묵히 미끌어 지지 않고 따박따박 제 길을 무사히 안전하게 가주는 차를 우리는 고마워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Hay
day 가 있고 Rainy
day 가 있다. 때가 있고 분수가 있다.
내가 예전에 가진거 예전에 누리던거… 계속해서 다 가질순 없다.
Time to get 이 있고 Time to let go 가 있다. 그것을 아는것이 지혜다. 지혜를 가지면 인생이 쉬워진다.
아는 분 중에 (70이 넘으셨음) 나이 드는 것이 서러워 (?) 머리를 까맣게 물 들이고 피부과에 가서 얼굴에 있는 점을 죄다 뺀 분이 꽤들 계신다. 나쁘다는게 전혀 아니다. 그럴때가 있고 이제는 인정하고 놓을때가 있다.
와이프가 몇번 나보고 얼굴에 있는 점 빼라고 한적이 있다. 물론 웃으면서 넘겼다. 그 선의는 알지만 나는 나이에 맞는 자연스런 순응이 좋다. 지금의 나의 머리는 silver 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얼마나 좋은가 그간 고생하고 수고 (?) 한 면류관인 silver 를 왜 알라들 같이 시커멓게 물들이려고 하는지 난 이해가 안간다. (죄송합니다) 고맙게도 나는 아직도 머리 숱이 빽빽하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폭설과 빙판에서 나를 무사히 운전해준 보잘것 없지만 든든한 Trooper 를 내가 사랑했듯이, 지금 현재의 상황과 분수와 나이에 맞게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나는 사랑한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ㅎㅎㅎ
그런데 나도 말만 하는 퇴물인가보다.
그렇게 사랑한다는 Trooper 를 헌 신발처럼 내 팽게치고 새 차 4-Runner 를 샀으니 말이다.
미안하다. 너도 너의 분수를 알아야지… 라고 위선적인 말을 해 본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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