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싫어하는 얘기가 남자들 군대 얘기고, 그 다음이 남자들 축구 얘기고,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하던 얘기라는 조크가 있다.
오늘은 큰 맘먹고 군대 얘기를 한번 해 볼까 하는데, 순식간의 무지와 욕심이 낳은 결과 그러나 나름대로의 추억을 가지게 한 나의 군대 얘기가 되겠다.
한국서 고등학교 졸업후 곧바로 미국 유학을 가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군복무>라는 거대한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물론 편법 (?)을 써서 미국에 올 수 는 있었지만, 왠지 남자로써 군대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육군징집 받을 나이는 아직 아니었고, 해병대는 쬐끔 걸리고 … 그래서 지원한게 공군이다.
대전 유성 인근 항공병학교라는 데서 3개월간의 신병 훈련을 받았다. 그게 74년도로 기억한다. (나는 공군 251기 그리고 아직도 기억하는 군번은 3305025 다)
훈련이 그때만 해도 세고 험했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같은 동료들과 옆에서 같이 바닦을 기고 땀을 흘리니 별로 힘들지 않게 3개월이 흘렀다. 이 기간동안의 에피소드는 생략한다. ㅎㅎㅎ
문제는 그 다음 부터다.
훈련 종료가 얼마 안 남은 어느날 모두들 무슨 특기로 어디에 배치될까 하며 조마조마하던 시기다.
훈련을 받다가 휴식시간동안 쉬고 있는데, 집합을 하라고 해서 모여보니, 사복을 입은 사람들 몇명이 앞으로 나와있고, 그중 한명이 크게 얘기했다.
“야~ 너희들중에 군대 3년동안 머리 기르고 바깥출입 마음대로 하고 헌병 알기를 진짜 헌 병처럼 아는 곳에 가고 싶은 사람있으면 손들어 봐!”
Guess What?
그놈의 머리 기르고 바깥출입.. 이라는 말에 순간 헤까닥하여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어 버렸다. 나같은 멍청이들 10명과 함께 나는 앞에 섰다.
선글라스를 멋지게 쓴 사복 (장교) 군인이 .. 그 10명 중 키 작은애들과 체격이 별로 안 좋은 애들 3명을 돌려 보내고, 장남이나 외동아들 있으면 말하라고 해서 2명 더 들여 보내고, 나머지 5명의 이름을 적어 가지고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엄습해 오는 불안감… 아 이거 혹시 잘못 선택한것 아닌가?
거의 1주일간 머릿속에는 이런 불안감이 가득차 있었고 마침내 우리는 신병 훈련을 마쳤다.
남들은 훈련 끝나고 자대 배치되기 전에 다들 3박 4일의 휴가를 떠난다는데, 우리 다섯명은 그날 부로 서울 대방동옆 오류동에서 직접 내려온 군 트럭에 도망백을 싣고 즉각 배치를 받은것이다.
5명은 눈망울을 굴리면서 .. 야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거냐? 오류동에 뭐가 있냐? 좀 특별하긴 특별한 부대인가보다 직접 트럭을 보내는것을 보니.. 등등 불안 반 호기심 반 표정을 지으며 얘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새벽에 도착했는데, 부대인근 같은데서 우리를 내리게 했다. 그리고는 이빨로 도방백을 물고 (거짓말이 아니다)걸어 가란다. 한 20분 쯤 땀을 흘리며 갔더니 왠 병원 건물같은 곳이 나오는데 정문으로 보이는 곳에 (군복을 입은) 헌병들이 보였다.
실실 웃으면서 안됐다는 표정으로 툭툭치는 그들을 지나, 안내하는 장교와 함께 부대 안으로 들어 갔는데 그곳이 바로 악명 (?) 높은 공군 2325전대라는 곳이었다.
2325전대는 육균의 HID와 해군의 UDU 등과 함께 대북첩보 작전을 하는 공군 방첩대였는데, 공군 제 20 특무전대라고도 불리었고, 북한 지역의 가장 깊은 내부침투 (낙하산 투하및 지상 스파이 루트를 통해) 의 임무가 있다.. 는 자초지종을.. 제기랄… 그 부대에 도착하여 걸어가면서야… 그 안내 장교가 말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 이제 나의 인생은 여기서 끝이다~ 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얘기 해 보자면,
1968년도에 김신조등 31명이 1.21 사태를 일으킨 직후 김형욱 중정부장이 이를 보복하기 위해 각 군별로 보복 특수 부대를 만들었는데, 공군부대의 명칭이 바로 2325 전대 였던 것이고 위장명으로는684부대라고도 했다고 한다 (684의 68은 부대창립 해, 4는 창립 달이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이 2325전대는 A 지구,
B 지구, C 지구가 있었는데, C 지구는 진짜 북한으로 넘어가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요원들이고, B 지구는 나중에 실미도에서 이런 요원들을 양성 훈련 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던 (주로) 교관들, 그리고 A 지구는.. 다행히… 우리와 같은 기간병들 (헌병, 연락병, 정보수집병 등등) 이었다.
참고로 나중에 1971년도에 실미도의 684 부대원들이 교관과 감시병 18여명을 죽이고 시내버스를 탈취하여 총격전을 벌이다가 결국 대방동 앞길에서 자폭하였는데, 정보에 의하면 그들의 복수 타깃이, 1차적으론 청와대, 2차는 오류동 2325전대 였다고 한다. 섬찟~
A 지구 배치라고 안심하기는 일렀다. 왜냐하면 비록 임무는 달랐지만, 그 후 30 주 간의 혹독한 기본 훈련은 A, B, C 지구 구별없이 동일하게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후에도 C 지구는 매일 훈련과 훈련의 연속이 그들의 일상 이었지만.
그때 받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훈련 내용 중 몇가지만 소개한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는 거의 ‘신’ 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ㅎㅎㅎ
일단 완전무장으로 산악훈련 받고, 각종 무기 다루고 폭약 설치하고둥둥둥은 제일 쉬운 훈련에 속한다.
산 중간에 여기 저기 구덩이를 파고 진흙더미를 물과 함꼐 집어 넣고 그 속에 우리를 그냥 쳐 넣는다.. 그리고는추운 날씨에 (늦가을로 기억된다) 하룻밤을 지내게 (?) 해 준다.
깊은 수영장 같은 곳 한쪽 부분의 윗쪽에 마치 롤러코스트 같은 기구를 만들어 놓았다. 그 위에 장착된 좌석에 앉아서 시트벨트를 단단히 하고, 위에서 (건물 2증 정도 높이) 물속으로 사정없이… 다이빙 시킨다. 이건 비행기 추락시 비상 훈련 시뮬레이션이다.
딱 한번 도망백에 우리를 한명씩 집어 넣고 물속에 집어 넣어 결국 기절하게 만든다. (한번은 체험을 해야 물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고…)
밤중에 수송기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서 낙하훈련 도합 3번을 했다 (물론 수주간 지상에서 준비 훈련을 마친다음). 스카이 다이빙은 일단 뛰어 내리면 별 두려움이 없어진다… 문제는 웅웅웅웅 하는 수송기에 앉아서 어디론가 향할 때의 그 공포와, 뛰어 내리기 위해 랫치를 점프입구로 움직일떄의 그 공포감… 그건 표현 이상의 두려움이다.
두명씩 짝을 지어 산 어디엔가 밤에 헬기로 떨어 뜨리고 알아서 먼가를 잡아먹든지 하고, 알아서 독도법에 의지하여 3일내에 부대로 귀환하라는 훈련도 시킨다.
군대 들어가기 전에 나는 태권도 공인 1단이었지만, 전혀 모르던 애들도 6개월 훈련만 종료하면 솔찍히 공인 태권도 1단 쯤은 쉽게 제압하는 격투훈련도 받는다.
조금 더러운 얘기지만, 훈련중 일부러 상관이 건물 바닦에 오줌을 누고, 어떤 놈이 눴냐며 다들 핥으라고 해서 핦은 적도 있다… 참고로 약간 콜라같은 거품맛이 나고 그리 역겹진 않았다.. ㅎㅎㅎ
C 지구 요원들은 계급이 없다. 원 스타 투 스타로 불리는데, 원 스타는 북한에 한번 넘어갔다 살아온 자들이다.
4스타 까지 봤다.
훈련 얘기는 그만하고, 6개월 훈련 후 부턴 솔찍히 할만한 직업 (?) 이었다.
나는 정보병이었는데, 나의 임무는 채송가방 (지금의 007가방 비슷한 것인데 어깨에 맨다) 들고 권총 차고 사복입고, 일단 공군본부 (대방동)에 가서 기밀문서 주고 받고 하는게 나의 첫 번째 임무였다.
언제든 원할때는 ‘작전중’ 이라고 (경비 헌병에게) 말하고 밖에 나가서 여의도에 있던 집에도 가고, 대방동 시장에서 좋아하던 칼국수도 먹고.. 땡땡이도 많이 쳤다. ㅎㅎㅎ
상관들은 이런 나를 이용해 (물론 그만큼 편의를 봐준다) … 내가 PX 같은데도 마음대로 출입을 하였기 떄문에… 미제담배 (캔트, 발보로 등등) 를 사오라고 심부름도 시켰는데..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명동에서 군대 간 친구들 (육군 졸병들) 을 만났는데, 길을 가다가 저 앞에 헌병이 나타 나니까 이놈들이벌벌 떨길래.. 내가 신분증 (공무집행증이라고 했다)을 보여 주었더니… 나에게 거수경례를 처억~ 하는것을 이놈들이 보고는.. 나 보기를 하나님 보기같이 한적도 있었다. ㅎㅎㅎ
제대 6개월 남기고 너무나 무료 (?) 하여 전직 신청을 하여 대방동 공군본부 뒷쪽에 있는 항공의학연구원 (공군병원 + 조종사 훈련소) 에서 마지막 6개월을 근무하고 제대했다.
줄여서 항의원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 나는 응급실, 내과, 조종 적성과 등등에서 재미있는 경험도 하였다.
응급실 근무때는 (물론 나는 치료 안하고 그냥 시다만 하는거다) … 어느날 체격이 건장하고 키가 짱딸만한 사람이 손 윗부분이 칼에 베어져서 들어 왔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 유명한 배우 이대엽이었다. 그가 왜 군 병원에왔는지는 나는 모른다.
한번은 어떤 신병이 훈련 끝나고 면회온 어머니가 자기고 온 음식을 너무나 배 터지게 먹고 그만 변비떄문에 배가 남산 만 해가지고 항의원으로 들어 왔다. 지금도 기억난다 공군 의무장교 김소철 중위가 환자를 뒤에서 관장을 하고 어쩌고 하는데 갑자기 “퍼엉~’ 하는 소리와 함꼐 우리 모두는 거시기 폭탄을 맞고, 거짓말 안 보태고 근 2주간 냄새 때문에 고생해야만 했던 기억도 있다.
어느날 나이든 환자가 항의원에 입원했다. 그는 신병 훈련을 받다가 탈영을 했고 5-6년간 숨어 지내다가 자수하여 다시 군복무를 시작했는데, 적응을 못하다가 갑자기 폐결핵에 걸린것이다.
나이도 많아서 내가 잘 대해 줬더니, 퇴원하기 한달 전에 고맙다고, 자기가 줄건 없는데 자기는 전 국가대표로 파나마 무도 (Dance) 대회까지 갔다 온 사람이라며 (사실인지 파악할 방법은 없었다), 나에게 대신 춤을 가르쳐 준다고 해서, ㅎㅎㅎ 매일 일 끝나고 2시간 가량 음악 틀고 군의 장교들과 근 한달간을 같이 배운게 ㅎㅎㅎ 차차차 지르박 룸바 탱고 같은 춤이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예전처럼 하지는 못해도 남이 엉터리로 하는지 제대로 하는지… 정도는 구별해 낼 수 있다.
군대 얘기는 무궁무진하지만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이런 추억과 에피소드 많은 군대를 왜… 양심적 거부 쏼라 쏼라하며 안 가려고 발버둥 되는지 도통 모르겠다. 죽을것 같던 그 3년이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 되고 말았다.
이런 군대 경험이 아니라면 내가 세상 어디에서 그런 어려움과 전우애와 젊은 정열의 발산을 경험 해 볼 수 있었겠는가.
대한민국에 감사한다!
충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