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머니께서 발을 달달~ 흔드는 나를
보시고
“복 나가니까 발 좀 흔들지 마라” 고 하신 말씀대로
그 이후부턴 나는 발을 흔들지 않는다 (to the best of my awareness J )
오늘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물씬 (?) 난다.
돌아 가신지 오래 되셨는데.. 불효자였던
나는 가끔가다 어머니 생각을 한다.
어떨땐 거실 소파에 앉아 TV 를 보다가 문뜩 이층 계단을 쳐다보며 오래전 살아 계셔서 미국을 방문 하셨을때 바로 그 난간을 붙잡고.. 아래층에 있는 나를 미소를 지으시며 바라 보시던 그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이게 무슨 유치한 짓인가?
그때 그 어머니의 미소속에 담긴 그 소중한 의미를
이제서야 느끼고 있는 나는… 항시 어머니가 웃으시며 말씀하신.. 우리 아들 언제나 철이 들까.. 이 말이 아직도 뇌리속에 맴 돌고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특이한 분이셨다.
아마도 그것까지 내가 물려 받은 것 같다.
거의 90이 되셔서
지병인 당뇨와 치매를 앓으시다가 돌아 가셨는데, 80이 넘으실 때까지 가끔마다 기타 (그렇다 기타!) 를 꺼내시어 먼지를 후욱~ 하고 부신 다음, 띵따다~ 띵땅~ 띵띠리리~리 띵땅~ 하시며 <애수의 소야곡>을 연주하시며 열창을 하시곤 했다.
시시하게 (?) 코드만 집고 적당히 스트록 모션만 하시는게 아니다.
스트록 중간 중간에.. 기막히게 에드립
선율과 브릿지 연결까지 멋지게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일제시대에 몇살 위이신 이모님과 함께 미인대회까지
나가셨다고하는데 증명할 서류는 없지만 그냥 나는 믿고 있다. ㅎㅎㅎ
언제는 어디서 구하셨는지 피리를 구해 오셔서 삐리삐리~ 하시더니만 며칠
안 가서 정확한 운지와 음정을 구현 (?) 하셨다.
어머니는 보통사람들은 그냥 넘길 장면과 상황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셨다.
산과 바다에 가면, 이상하리만큼
그 경치에 취해, 비명에 가까운 표현을 지르곤 하셨다.
저기 저 바위… 꼭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같지 않냐.
저 무지개 좀 봐라… 저 산 속에서
솟아나는 것 같다.
저 바닷가에 파도들 좀 봐라… 정말 웅장하다… 등등.
또 기억나는 게 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사업때문에
타지방에 거주하셨고 우리는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한달이 한두번 내려 오시는데… 지금과 달리 전화도
귀하던 때고 … 연락도 없이 그냥 내려 오시는 거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 나면 어머니께서 … “오늘 아버지
오실거다.. 저녁때 집 나가지 마라!”… 이렇게 말씀 하신 날은 거의 100% (내 기억엔) 아버님이 부산에 내려 오셨다.
아버지가 연락했어? 라고 물어 보면… 꿈에 봤다.. 라고 대답하셨다.
또 한가지 아직도 또렸하게 기억나는 일.
어머님께서는 노인네 답지 않게 <영어> 에 관심이 많으셨다.
그 당시 (나와는 나이
차이가 엄청난) 이복형이 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하고 귀국하여 서울쪽에 화학공장을 차리던 시기였는데, 이형이 미국여자랑 결혼하여 아이들이 셋이나 된다.
그 애들이 나랑 나이가 비슷하여 친구 (?) 같이 같이 생활하였는데, 어머니께서 손주들과의 영어회화에 관심이 많으셨다.
한번은 나와 어머니가 방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애들이 밖에서
하도 시끄럽게 구니까.. 어머니께서 조용히 하라고 해야 겠다며 나가신다.
갑자기.. 한국말로 하실까
영어로 하실까 궁금해 졌다. ㅎㅎㅎ
살짝 따라 나갔다.
어머니께서 애들에게 다가 가시더니만 다음과 같이 크게
소리치셨다.
“마우스 스토프!”
영어로 굳이 써 보자면 “Mouth
Stop!” 이다… ㅎㅎㅎ
콩글리쉬이건 잉글리쉬이건… 이거 정말 획기적이지
않은가?
대부분 그 시절 (60년도 아닌가?) 한국 사람들은 아니 한국 어른들은.. 영어의 영자도 모르거니와 .. 감히 영어로 미국애들에게 대화를 하려고 감히 누가 시도를 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그말을 듣고 손주애들이 깔깔~ 거리며 웃는다.
그 다음부턴 애들이 할머니를 보면 ‘마우스 스톱’ 하면서 놀리곤 했다.
그 시대에 그정도 진취성 (?) 이면 대단 하신거다.
그 배짱도 대단하시고.
어머니는 독실한 케톨릭 신자셨다.
어릴때 내가 아직 교회 안 나갔을 때… 방안에서 염주를
굴리며 때로는 머리에 베일 비슷한 것을 쓰시고 장시간 기도하시던 장면이 기억된다.
나중에 한국에서 어머님과 함께 살던 누님으로 부터
전해 들은 말이다.
그날은 평시와 달리 어머니가 목욕을 하시고 저녁무렵
신부님을 초청해 같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까지 하고 헤어지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왠일인지 새 옷을 꺼내 입으시고 잠자리에
드셨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조용히 미소를 짓는 모습으로 돌아 가셨다고 한다.
불효자인 내가 당연히 후회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때에는 왜 그것을 못 느꼈을까 싶지만… 그게 오묘한 인생의
원리인것 같다.
어린 아이들이 이물건 저물건 만지고 망가뜨릴 때 야단치며
그거 손대지 마… 한다고 그 애들이 이해는 고사하고 듣기나 하겠는가?
사춘기 시절 아이들에게 이것 저것 설명하고 훈육(?) 할 때 그
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순응하던 적… 있었던가?
없는 것이 정상이다.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어디서 이상한 놈 (실례~) 데리고 와서 결혼하겠다고 하는 딸년에게 먼 말이 귀에 들어 가겠는가?
나중에 후회할때 그 때 알게 되는 것이다.
바람피는 남편 … 왜 그러냐고… 뭐가 부족해서 그러냐고 .. 백번 얘기해 봐야 … 그말이 이미 최면에
걸려있는 남편 귀에 들어 가겠는가?
나중에 결국 초라하게 돈 뜯끼고 배반당한 다음.. 꺼이! 꺼이~ 울며 조강지처를 버리다니 어쩌고 저쩌고 할 때…바로 그 때 비로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부모 말 안 듣고 지 맘대로 지 분깃 강제로 돌라고
해서 … 타주로 도망가 온 재산 탕진했던 탕자에게… 아버지의 말이 들리던가?
그가 타지에 가서 쫄딱 망하고 돼지죽까지 먹으며 비참하게
살다가… 죽을 각오로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품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 때에 그는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게.. 솔찍히.. 정상이다.
그러니… 딴 사람보고 왜
저렇게 사나… 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On the right
Track 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물론 이론하고 현실은 또 다르겠지만.
인생은 기계적인 그리고 정석의 길을 가는 되는 삶이
아니다.
인생은 변수가 너무나 많은 선택 투성이인 길이다.
나의 정석이 너의 정식이 되는 것은 반드시 아니다.
나의 삶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변수들이 있게 마련이다.
내변수는 남에게 동일하지 않다. 그는
그만의 변수가 있다.
어쨋든, 큰 그림을 봐야한다.
어짜피 가는 과정은 개인별로 그만의 변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그 길의 목적지는 결국 같아야 한다.
돌아 가든 뛰어 가든 기어 가든… 결국 한 목적지만
있을 뿐이다.
넘어지고 실수하고 죄를 범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웃고
울고.. 이 모든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변수들이다.
죽기 전까지 화내다 죽는 사람도 있고, 어린 시절 이미
인생의 정도를 알아 버린 아이들도 있다.
그래도 인생은 간다.
우리 어머니도 가셨다.
나도 갈 것이다.
결국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하다.
이것 마져도… 철 없이 후회하게
된다면 정말 곤란하다.
인생의 후회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철이 늦게 들어도 철이 들면 된다.
그러나 내가 결국 가야할 목적지에 대한 후회는… One Strike Out 이다.
선택 잘 못하면 영원히 바꿀 수가 없다.
지금 당당하게 비웃고 큰 소리로 조소를 보내지만, 그 때가 되면… 도무지 방법이 없다.
내가 어머니 말씀 안 듣고 내 맘대로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한 것들.. 지금에서야 후회하면서… 쯧쯧쯧 거려도 … 그래도 충분히 나의 남은 인생에서 회복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여기
저기에서 들리는 그 메시지를 오만하게 도도하게 조롱하고 비웃고..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을 살다… 결국 나중에 죽고 난 다음 <철>이
들면…?
미안하다.
그러나 그땐 방법이 없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어머님의 추억의 <애수의
소야곡> 기타 소리가
생생히 기억나는
하루였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