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칼럼

Page Title Facebook 커뮤니티에 연재된 스티브의 페이스북 칼럼입니다. 생활속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목스티브의 Facebook 칼럼 2 (12) – Karen 과 Kevin2026-04-29 09:48
작성자 Level 10
유튜브를 보다가 멈추게 된 영상 하나가 있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Typical Karen…"
뭔가를 예고하는 듯한 그 타이틀에 이끌려 잠깐만 훑어보려 했다가, 결국 끝까지 보고 말았다. 미국 슬랭으로 "Karen"은 고집불통에 저돌적인 중년 백인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마치 "그 유형"을 하나의 이름으로 낙인찍어버린 것처럼.
영상은 어느 미국 우체국 앞에서 시작된다. 촬영자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목소리로 판단하건대 30-40대 백인 남성으로 보인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슬쩍 눈을 피하거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찍지 마세요"라고 한마디 던지고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저 Karen이라는 여자만은 달랐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카메라 치워요!"라며 적극적으로 항의를 했다.
촬영자가 여유 있게 받아쳤다. "여기는 연방정부 건물 앞이고 공공장소입니다. 미국 헌법에 의해 촬영의 자유가 보장됩니다. 그냥 가던 길 가세요."
Karen이 소리를 높이고, 앞길을 가로막는 시늉을 하고, 실랑이가 이어지자 동행하던 여자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이 출동했다.
결과는? 경찰도 어쩔 수 없었다.
그 남자는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까. 경찰은 부드럽게 권유했다. "불법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불편해하니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촬영을 멈추면 어떨까요?" 그러나 촬영자는 헌법과 촬영의 자유만을 되풀이할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그 이후에 그 남자가 어떻게 됐는지, 차에 치였는지 벼락을 맞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처음에 색안경을 끼고 봤다.
Karen이라는 이름 앞에 이미 "전형적인 민폐 여성"이라는 선입견이 씌워진 터라, 자연스럽게 그 여자 편이 아닌 촬영자 편에서 영상을 바라봤다. 공공장소에서 합법적으로 촬영하는데 뭐가 문제야? 찍히기 싫으면 피하면 되지.
그런데 영상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야기의 시작이 달랐다.
Karen이 처음부터 저렇게 격앙됐던 게 아니었다. 그 여자가 파킹장에 도착해서 차 문을 열려는 순간, 이 사나이가 카메라를 코앞에 들이댄 것이 발단이었다.
차 안에는 친구인지 동생인지 모를 여자가 있었고, 어린 아이도 한 명 있었다. 당황한 Karen이 "왜 이러세요? 카메라 좀 치워주시겠어요?"라고 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남자, 편의상 Kevin이라 부르자 (여자 Karen이 있으면 남자 Kevin도 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를 계속 들이댔다. 마치 유리 너머로 실험실 동물을 관찰하듯이.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남자의 목적은 처음부터 Karen의 반응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일부러 Provoke, 즉 화나게 만들어 그 장면을 유튜브에 올려 구독자와 수익을 얻는 부류. 이런 콘텐츠가 요즘 비일비재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총을 쏘거나, 뒤에서 갑자기 에어혼을 울려 거의 기절하게 만들거나, 황당한 포즈로 기겁하는 행인의 반응을 찍어 올리는 영상들. 그것이 이미 Viral이 되고 Meme이 되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자, 그러면 Karen이 나쁜 사람이고 Kevin은 옳은 사람인가?
아니다. 둘 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지만, 내가 오늘 주목하고 싶은 것은 Kevin의 논리다.
"내가 불법만 안 저지르면 그만이다."
이 얼마나 속 편한 철학인가.
법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논리. 헌법이 허락했으니 카메라를 갖다 대도 되고, 상대방이 불편해하든 아이가 겁먹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방도 법적으로 항의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것 아닌가 — 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 남자가 똑같이 자기 얼굴 앞에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아마 단 10초도 미소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비슷한 일이 바다 건너 한국에도 있었다.
한 경제지에 가명으로 투고된 글이었는데, 내용인즉슨 이렇다.
중견기업 부장인 필자가 신입사원 한 명을 맞이했다. 그 신입은 매일 오후 6시 정각이 되면, 하던 일을 딱 멈추고 "수고들 하십시오!"라는 인사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부장은 과장을 시켜 슬쩍 훈육을 해보라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오히려 과장이 울상을 지으며 돌아왔다.
"부장님, 말도 마세요. 제가 '신입이니까 주위 눈치도 좀 보고, 오늘 마칠 일은 조금 늦더라도 마치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 친구가 회사 정책이니 근로기준법이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위반사항 없이 할 일 마치고 가는 거라며 오히려 저를 훈육시키더라고요."
이 부장,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 년 후 보직 개편 때, 부장은 이 친구를 다른 부서로 발령 냈다. 그러자 그 신입이 금세 인사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밤늦게까지 남아 자기 일은 물론 동료 일까지 돕던 직원과, 6시 정각에 법적 하자 없이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직원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법적으로는 물론 그렇다. 둘 다 계약 조건을 위반한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이 두 이야기가 나에게는 하나의 그림으로 겹쳐 보인다.
Kevin도, 저 신입사원도, 그들의 논리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 헌법이 허락했고, 계약서가 보장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틀린 말이 아니다. 법적으로는 정확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법 하나로만 움직이는 존재라면, 우리에게 도덕도, 예의도, 공동체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법이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강제로 지키게 하는 마지막 장치일 뿐, 그것이 곧 인간관계의 천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릴 때 우리가 배운 것이 무엇인가.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내가 득을 보더라도 남이 손해를 본다면 한 번쯤 돌아보라. 이것이 유교적 덕목이든, 기독교적 사랑이든, 그냥 상식이든 — 문명이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온 가치들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특히 이른바 "권리 의식"으로 무장한 일부 젊은 세대는, 그 방향을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 놓았다.
법의 테두리 안이라면 못 할 짓이 없고, 규정이 허락하는 한 배려 따위는 사치라는 식이다. 권리는 최대치로 주장하면서, 의무와 배려는 계약서에 명시된 것 외에는 한 발짝도 내딛지 않는다.
그것을 우리는 "스마트하다"거나 "자기 권리를 잘 안다"고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 그것은 스마트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각박한 것이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이기적인 것이다.
헌법과 근로기준법을 줄줄이 외울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의 카메라가 어린아이를 겁먹게 한다는 것은 왜 모를까.
법적 권리를 조목조목 따질 줄 아는 사람이, 자기 옆에서 밤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동료의 고단함은 왜 보이지 않을까.
형평성을 그토록 따지는 사람이, 자기가 6시에 떠날 때 그 빈자리를 누군가가 채운다는 사실은 왜 계산하지 않을까.
답은 하나다. 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 가져가는 데는 도가 텄지만,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에는 눈을 감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정교하게 포장된 이기심이다.
결국 Kevin은 Karen을 "전형적인 Karen"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을 것이다.
댓글에는 아마도 수천 개의 웃음 이모티콘과 함께 Karen을 조롱하는 말들이 달렸겠지. 하지만 진짜 "Typical" 한 것은 Karen이 아니라 Kevin이다.
상대방을 실험 동물처럼 관찰하고 도발하면서, 법의 방패 뒤에 숨어 양심의 가책 한 조각 없이 수익을 챙기는 것 — 그게 오늘날 너무나 "전형적인"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저 신입사원도, 어쩌면 자기 자신이 "형평성"을 외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으면 좋겠다.
내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나는 지금 주변 사람들을 대우하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헌법보다도, 근로기준법보다도,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법칙일지 모른다.
법은 인간의 최솟값을 규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최솟값 위에 쌓인 배려와 신뢰와 양보로 겨우 굴러간다.
그 위에 올라서려는 노력 없이 그냥 바닥에 납작 엎드려 "나는 법 안에 있어요"를 외치는 삶 — 그것이 얼마나 작고 피곤한 삶인지, 언젠가는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다.
차에 치이거나 벼락을 맞기 전에.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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