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칼럼

Page Title Facebook 커뮤니티에 연재된 스티브의 페이스북 칼럼입니다. 생활속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목스티브의 Facebook 칼럼 2 (11) – 동대문이 열렸다!2026-04-29 09:47
작성자 Level 10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산에 있는 <묘심 유치원> 이라는 곳을 다닌 적이 있다.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왜냐하면… 너무 ‘강렬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여름날인데… 전날 날씨가 억수로 더웠다.
나는 그 더위를 핑계 삼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린녀석이 욕심에 눈이 멀어, 수박 한 통을 거의 혼자 다 해치운 전설적인(?) 기록을 세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유치원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만) 바지에다 ‘사고’를 쳐버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계속 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내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얘들이 왜 이러지?”
나는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고…
잠시 후, 남아 있던 아이들이 코를 막으며
노골적으로 선생님께 “제보”를 하는 바람에
나는 유치원 화장실로 긴급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인생 최초의 ‘홀라당 탈의’라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시절.
나는 스스로를 꽤 장난꾸러기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넓고, 나보다 더한 ‘고수’들이 존재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 한 시간 전에 도시락을 몰래 다 까먹고
배도 부르고 졸리기도 해서
양호실에 잠입(?)하여 빈 침대에 누워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그렇게 꿀 같은 오수를 마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교실로 걸어가는데…
그때부터 애들이 나를 보며
킥킥… 낄낄…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는 것이 아닌가.
“이것들이 왜 저러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교실에 앉았다.
그때 친한 친구 녀석이 거울을 하나 건네며
한마디 한다.
“야… 니 낯짝 한번 봐라.”
거울 속의 나.
“으악!!!”
어떤 예술가(?)가…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 친한 친구놈 하나가
내가 양호실에 몰래 자러 간다는 것을 알아채고 몰래 나를 따라가서
기여히 일을 저지른 것이다.
내 얼굴에 빨강, 파랑, 검정 싸인펜으로
아주 정성스럽게 ‘현대 미술 작품’을 완성해 놓았던 것이다.
나는 그날,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얼굴로, 왜냐하면 알콜로 지워도 다 지워지지 않았기에,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세월은 또 흘러…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캘리포니아 토랜스의 한 장로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었다.
드디어 첫 지휘하는 날.
그날 곡은 지금도 기억난다.
“아름답다 저 동산.”
성가대 앞에 서서
비장한 폼을 잡고 Prep Beat을 시작했다.
그런데… 대원들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다.
당황해 보인다.
피아노 전주는 이미 시작되었고
여성 파트를 보며 “이제 들어갑니다” 하는 신호를 주는데…
뭔가… 뭔가 이상하다…
그때 앞에 앉은 솔로이스트가
작게 속삭인다.
“지휘자님… 일으켜 세우셔야죠…”
아차.
성가대원들을 앉혀놓고 지휘를 시작해버린 것이다.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일어나세요!”를 급히 외쳤고
그제서야 성가곡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럭저럭 무사히(?) 곡을 마쳤는데…
여전히 여기저기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린다.
“뭐지… 또 뭐가 있나…”
내심 불안해하고 있는데
성가대장님이신 김 장로님이 다가오셔서
기침을 에헴~ 하시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한마디 하신다.
“지휘자님…
거… 동대문이 아까부터 활짝 열려 있어.”
이상 늘어놓은 나의 화려한(?) 흑역사를 가만히 돌아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몰랐다.”
유치원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심지어 성가대 지휘 첫날에도 그랬다.
나는 너무나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코를 막고, 킥킥 웃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왜 저러지?” 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알고 보니 … 그리고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아, 그게 다 ‘자기 객관화 실패’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얼마전에… 한국에 가서 요즘 “핫”하다는 노인들을
어찌어찌 지인들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어떤 노인의 머리는 형광빛으로 염색되어 있고,
어떤 노인의 옷은 마치 힙합 가수와 록스타를 동시에 꿈꾸는 듯한 조합,
어떤 노인의 걸음걸이는 “나 아직 죽지 않았다”를 온몸으로 외치는 느낌…
그런데 문제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보다는… 안타까워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본인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젊다.”
“나는 젊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저분, 왜 저러시지?”
물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꼭 딱딱하고 재미없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웃어도 되고, 농담도 해도 되고,
가끔은 엉뚱한 행동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여유’가 아니라
‘억지로 젊어 보이려는 몸부림’이 될 때이다.
젊음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흉내 낼 필요도 없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젊은 사람이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품격과 여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젊을 때는
돈으로도, 외모로도, 에너지로도
많은 것을 가릴 수 있다.
20대 젊은 여자들은 돈 많이 안들이고
그저 평범한 흰티셔스 하나 걸쳤는데도
젊음의 멋과 개성이 들어난다.
이런것을 일부러 꾸민다고 해도 노인네들에게는
우서운 얘기가 된다.
나이가 들면 그 모든 것이 하나씩 걷혀 나가면서
결국 남는 것이 있다.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어지고,
어떤 분은… ㅎㅎㅎ… 더 설명하지 않겠다.
세상을 보면 참 멋지게 나이 든 노인들이 있다.
예를 들어 Morgan Freeman 같은 사람을 보면
나이에 걸맞은 목소리와 태도,
그리고 말 한마디에도 깊이가 느껴진다.
또 Anthony Hopkins 같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여유롭고 유머러스해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Clint Eastwood 역시
젊음을 흉내 내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가 이미 ‘멋’이다.
이사람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이다.
자기 나이를 인정하고,
그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을 선택했다는 것.
이제는 나도 안다.
유치원에서의 그 사건도,
고등학교에서의 그 예술 작품도,
성가대 지휘 때의 그 “동대문 사건”도…
전부 다 “나만 몰랐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괜찮은가?”
“혹시 또 나만 모르는 상황 아닌가?”
그리고 가능하면
한 박자 쉬어가려고 한다.
나이가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늙을지는 선택할 수 있다.
억지로 젊어 보이려 애쓰기보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
오지랖으로 세상을 휘젓기보다
필요할 때만 조용히 한마디 해주는 사람.
튀는 옷과 행동으로 주목받기보다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다짐해 본다.
“제발… 과장되게 보이지 말자.”
“괜히 튀지 말자.”
“분수대로, 그러나 멋지게 살자.”
그리고 혹시라도
누군가가 옆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는 조용히 내 자신을 돌아보며 물어볼 것이다.
“혹시… 또 내 동대문이 열린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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