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다.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을 얼마 전부터 포멧을 바꾸어 다시 방영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에피소드는 내용 자체가 그리 슬픈 것도 아닌데 꼭 이 프로만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
어린 학창시절 외톨베기 자기를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었던 은사를 찾거나, 멋 모르고 야생마처럼 종횡무진 설치고 다닐 때 같이 뒹굴던 친구를 찾거나, 어렵던 시절 따뜻한 말로 힘과 위안이 되어준 선배를 찾는 이 프로그램은, 과연 찾는 그 사람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호기심과 인간의 끈끈한 정을 다시금 생각케 해 주는 묘한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다.
참으로 인간의 인연과 정이란 묘한 것이다.
수십년 전의 그 장면을 생각하면, 그때의 느낌과 분위기와 심지어는 향기나 냄새까지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때, 내가 살던 대전의 공설운동장 인근에 서커스가 들어 왔다.
어찌어찌하여 친구들과 (돈을 엄마에게서 탔는지 어쨋는지) 서커스 장을 들어 갔다.
좋은 자리에 앉으려고 친구들과 부리나케 움직이다가, 조그만 천막안에서 묘기 연습을 하는 나 또래의 소녀를 보았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이쁜 여자애는 보질 못했다.. ㅎㅎㅎ (아마도 화장발? But doesn’t matter~)
그 당시 나는 동네와 학교에서 알아주는 장난꾸러기… 인지라…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친구들과 떨어져 그 천막안을 살며시… 기여히… 들여다 보고 말았다.
그런데 놀랄 것 같았던 그 여자애가 나를 보더니만 그만.. 찡긋하며 윙크를해 버렸다.
장로가 맹세를 하면 안 되겠지만… 일단 그 시절로 돌아가서 애기 해 보자면… 마치 숨이 멈추는듯한 느낌… 그런 느낌을 먹었다. ㅎㅎㅎ
서커스고 뭐고… 정신없이 친구한테 (너 아프냐 소리 들으며) 부축받으며 집으로 돌아 왔는데… 거의 한달쯤 까지 그때 그 장면과 느낌이 ‘충만한’ 나날을 보내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와서 그때를 생각 해 보니… 확실히 <유치한> 장면이었지만… 얼마나 순진하고 때 묻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였나…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쯤 전, 덴버에 교회연합 부흥회가 열렸다.
나도 아내와 함께 당연히 참석했다.
내 나이 또래의 목사님인데, 이미 동부 필라델피아에선 대형교회 목회도 하시고 선교기관도 운영하시는 탁월한 기량과 헌신을 하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목소리도 좋았고 너무나 역동적인 언변과 감동적인 내용으로 나는 은혜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집회 프로그램을 보던 아내가 … “이 목사님도 대전 출신이시네”… 한다.
그제서야 주보를 자세히 살펴보니… 중학교 고등학교도 나와 같은 동문이다.
나이를 보니… 같은 나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 하는가??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그분의 이름을 그제서야 자세히 살펴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귀에 밴 이름이다.
오마이갓!
그러고 보니 얼굴이 무척 무척 무척~ 낯 익다!
TV 는 사랑을 싣고 처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대전고등학교 시절.
등치와 키가 컸던 나는, 거의 모든 고딩들이 다 그랬듯이, 이런 저런 운동도 하고 특히 나 같은 경우는 태권도 유단자라고 내 딴에는 (지금 생각하니.. 아~주.. 우습다만 ㅎㅎㅎ) 제법 ‘가오’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방과 후 그날 따라 이상하게 옥상에 올라가고 싶어서 그곳에 올라 갔는데, 웬 등치 큰 녀석이 혼자 웃통을 다 벗고 바벨을 열심히 들고 있었다.
방해 안하려고 다시 나가려는데…
“야.. 너 뭐야~” 한다.
순간 약간 놀라기도 했지만… 내가 누구냐? 태권도 유단자 아니냐… 라며 가오를 잡으며 대답했다.
“너는 뭐냐?”
이쯤되면… 진행은 뻔하다.
그리하여.. 아무도 없는 … 약간은 바람이 불었던… 옥상에서 그와 내가… 불과 1메타를 사이에 두고… 사나이 대 사나이의 대 접전을 위해 …. 폼을 잡고 있었다.
마악~ (진짜다!) 거시기를 뭐시기 할려고 하는 순간…
누가 갑자기 옥상 문을 열며… 다음과 같이 소리 치는 바람에 <세기의 대결> 은 싱겁게 끝나 버리고 말았다.
“야이 시키들아!! 니들 뭐해.. 옥상 어지르지 말고 빨랑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공부나 해 임마!”
그 무서운 … 수위 아저씨 였다. ㅋㅋㅋ
그날 이후 그와 나는 급격히 가까와 졌다.
그날 교회 연합부흥회가 끝난 다음… 내가 그에게 다가 갔다.
“저… 혹시… 에… 너… 호XX 맞지? 나 이갑식이야!”
“뭐여? 니가 깝식이라고? 야 이자식 봐라~”
아직도 나를 갑식이가 아니라.. 깝식이라고 부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목사고 장로고 … 친구라는 관계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놈 저놈 해 가면서 껴안고 .. 부인끼리 인사도 하고… 웃고… ㅎㅎㅎ
요즘도 가끔 안부를 나누고 있는 사이다.
어쩻든… 추억은 미소를 떠오르게 한다.
추억이 모두 다 좋은 것 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좋은 추억이든 슬픈 추억이든 아픈 추억이든… 내가 걸어 갔던 그 장면들이다.
그 장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될 수 있으면 감사하자.
진정한 감사는 <범사> 에 감사하는 것이다.
범사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아프거나 행복하거나… 그 모두가 범사이다.
오늘도 나는 <TV 는 사랑을 싣고> 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 그 서커스 여자애 … 지금은 뭐 하고 있을라나?
나도 한번 찾아 볼까나? ㅎㅎㅎ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