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도 가끔 온라인 게임을 한다.
이 나이에 먼 온라인 게임을 하냐고 … 굳이 물으신다면 … 이제는 게임의 재미와
흥분과 쾌감 때문이 아니라... 옛 추억을 ‘재소환’
(게임용어다) 하기 위함이다. ㅎㅎㅎ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른 명곡 <봄날은 간다> 의 가사 첫소절의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같이 2년간의 추억이 있는…
보스톤 소재 온라인 게임회사인 터바인 (Turbine, 지금은 Warner
Brothers Games가 되었음) 에 근무하기 위해 2007년 어느 봄날…
나는 나의 애마 Trooper 를 타고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ㅠㅠㅠ) 기러기 생활을 하기 위해 덴버를
출발하여 보스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는… 마치 게임에서 로한의 북쪽과 안개산 남쪽 접경에 몬스터들과 악령들이 거주하는 언덕에서 퀘스트 (Quest) 하듯… 모든 것을 자기가 알아서 결정하고 훈련하고 수행해야 하는 환경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주중에는…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에 퇴근하면 밥먹고 자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은 게임뿐이었다.
주말에는 가끔 바람 쐬러 쇼핑센터에 가거나 외식을
하러 나가거나 아파트 주위를 산책하거나 하고 주일날엔 교회 다녀오는 것을 빼곤 … 한 동안은… 그냥 방콕하며 … 역시 게임을 벗 삼아
지내게 되었다.
사실 온라인 게임 Project manager로서 이 게임에 대해
완벽하게 알아야 할 업무상의 의무감과 내가 처한 환경에 의한 불가항력적 이유 (Nothing else to
do) 때문에 나는 그당시 우리 회사가 개발중이던 The Lord of the
Rings 온라인 게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몰입을 하게 되었다.
이 LOTRO (Lord Of The Rings Online) 는 그 당시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지역및 미국내의 온라인 게임 상위권을 유지하였고, 거기에 힘 입어 한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권을 겨냥해 Launching 준비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던 온라인 게임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캐랙터/종족/클라스 등을 선택하고
초보자 튜터리얼과 인스턴스를 거치면 기본 장비와 능력을 가지고 Level 1 으로서 … 타운 근처 필드를 여기저기 다니며 애꿎은 토끼같은 잔챙이 짐승들을 죽이며 (레벨업 하기 위한) 경험치를 쌓게 된다.
경험치가 쌓이면 다음 레벨로 올라가게 되고, 레벨이 올라갈 수록 능력범위가 더 파생되고 파워가
더 세게 되고 막강한 장비와 기술들을 습득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정도 레벨이 중급이상 올라가게 되면, 이제는 타운 근처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여정을 떠나게 된다.
걷거나 뛰어서 다른 지역 (황무지나 산이나 언덕이나 마을) 으로 갈 수도 있고, 특정지역에 있는 Stable (마굿간)에 가서 비용을 지불하고 말을 타고 제법 빨리 갈수도 있지만, 레벨업 되면서 얻은 아이템들을 팔아서 자기 자신의 말을 가질 수도 있고 말 자체도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된다.
말이 생기면 미지의 세계로 자유롭게 여정을 떠날
수 있다. ㅎㅎㅎ
그리고 말을 타고 가면서 주위에 보이는 (가상) 세계를 고성능 그래픽 카드를 통한 CG구현을 통해 마치 영화보듯이 주위 환경과 경치를 보면서 즐길 수 있다.
산도 넘고 개울도 지나고 언덕도 거치고 허허벌판도
지난다.
다리를 건너 조그마한 마을도 지나고 음흉한 폐허도
지나고 높은 성도 지나고 몬스터들이 들끓는 위험한 계곡도 지난다.
가다보면 까마귀 떼가 덤비기도 하고 멧돼지 떼가
덤비기도하고 몬스터들이 덤비기도 한다.
기겁하며 말을 채칙질하여 (그런다고 계속 빨라지는 건 아니지만) 요리 조리 피하기도하고 나중엔 만만하면 큰 맘먹고 말에서 내려 따라온 몬스터들과 싸워 그들을 죽이고 능력치와 아이템들을 득템할 수
도 있다.
차를 운전하고 가다보면 개스가 떨어지고 하룻밤
머물며 개스도 넣고 가듯이, 황량한 벌판을
계속 달려 가다가 타운이 나오면 그곳에 들어가서… 그곳의 사람들과 (NPC) 대화를 하기도 하고 available 한 Quest 를 받아… 그곳에서의 퀘스트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멀리 떨어진 사우론으로 Teleport 할 수 있는 포탈이 나오면 말을 타고 오랫동안 달리지 않아도 그 포탈을 통해 사우론으로 직접 Instantly갈 수도 있다.
이제 레벨이 중급을 넘어서면 .. 솔로 활동은 조금 재미가 없어진다.
이제는 관심거리가 비슷한 유져들 끼리 모여서 원정대를
조직하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나중엔 Boss
Monster를) 죽이고 레벨업과 재물 특템을 하기 위해 위험한 산속으로
계곡으로 돌진하기도 한다.
게임 내용은 이정도로 생략하고…
온라인 게임.. 특히 MMORPG 는 우리가 사는 인생과 같이… 넓고 깊은 세계관이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여러 영역과 여러 종족 (Class) 이 존재한다.
또한 여러가지 롤 (Role) 과 여러가지 목적이 존재한다.
가디언, 챔피온, 캡틴, 도둑, 사냥꾼, 수도자, 마법사, 룬 키퍼, 워던 등등 중에서 나의 클라스 (Role) 을 정할 수가 있고, 그 롤에 맞는 능력과 기술을 배우고 가지게 된다.
다양한 롤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능히 boss monster 까지 죽일 수 있는
다양한 능력과 기술을 생성해 낼 수 있게 된다.
나는 주로 쏠로를 즐겼다.
캡틴 롤을 가졌던 나는 이곳 저곳을 방문하며 지역의
특징을 살펴 보기도 하고 험한 산중과 암흑의 동굴에 들어가 가끔 몬스터와 싸우기도 했다.
그런데 지역마다 특이한 분위기와 특히 각인되는
고유의 백그라운드 음악이 있다.
게임을 오래 하다보면 이 모든 것 (느낌 +
BGM 등등) 이 나의 머릿속에 지역과 연결이 되어 기억으로 남게
된다.
라스트 브리지를 지나 폭포수근처에 가면 들리는
배경음악… 쳇우드를 지날때
들리는 긴장감 도는 배경음악…
구루스나 브레아등을 지날때 들리는 배경음악들은… 아직 까지도 생생하게 마치 나의 삶의 일부분같이
느껴지고 있다.
근무하던 보스톤의 회사를 떠난지도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그곳을 떠난 후에도 가끔 그곳이 생각날 때면 LOTRO 사이트에 접속하여 게임을 하곤한다.
다행히 전 회사에서 Former Employees에겐 영구 아이디를
유지하게 해 주어서 언제든지 원할 때면 The Lord of the Rings 게임을 할
수 있다.
얼마 전 거의 몇년만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접속을
해 보았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예전에 살던 (?) 그곳들을 말을 타고 터벅터벅 다녀
보았다.
내가 잘 가던 곳… 동쪽 끝에 있는 Last
Bridge 에 가기 전에 멧돼지들이 창궐하던 오른 쪽 언덕아래를 가 보았다.
귀에 익숙한 BGM 음악에 갑자기 옛 생각이 난다.
잠깐 서성거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멧돼지떼들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돌진한다. 예전의 그놈들이다! 시커먼 그놈도
아직 건재하게 보인다!
예전에는 기를 쓰고 그놈들을 죽였었는데 이제는
반갑다.
너희들 아직도 이짓 하고 있냐.. ㅎㅎㅎ 속으로 생각하며 저 만치 도망을 가니
따라 오다가 포기해 버린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나쁜 짐승이건 사악한 몬스터이건 무시무시한 괴물이건.. 세월이 지나서 다시 보니 … 다 반갑다.
다 옛 친구들 같다.
짐승들도 이런 느낌인데… 사람들이야 어떻겠는가?
한 때 미워했던 사람도 세월이 흘러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을 보니 측은하고 불쌍하고 반갑다.
예전에 대학시절 나의 소중한 등록금 떼어 먹고 (그리고 미안해서) 소식을 끊었던 그 친구도 .. 저번에 사진첩에서 다시 보니… 반갑고… 그까짓 그 잘난 돈이 뭔데 소식을 끊었나 싶으다.
예전 직장에서 나에게 까칠하게 굴고 다그치던 그
직장 상관도 저번 딴 동료를 통해 소식을 들으니 지병 땜에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는 소식인데… 그 나이에 혼자 어떻게 잘 살려나.. 걱정이 되고 보고 싶기도 하다.
세월이 지나면 나쁜 옛 추억은 다 잊어 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며 살아가는게 상책이다.
그런 면에서 이혼한 부부가 가끔 다시 만나 놀러도 가고 화장실이 고장이 나면 전남편 불러 고치게 하는 미국 Life Style 이, 전 거시기 사는 곳을 향해선 오줌도 안 눈다는 우리와는 달리, 어쩌면 훨씬 ‘통’ 크고 Kool 한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억속에.. 그냥 훑어보는 비디오만 들어가게 하지는 않으셨다.
비디오와 함께 오디오까지 넣어 주시고.. 때로는 거기다가 덤으로 ‘맛’ 과 ‘냄새’ 그리고 그 생생한 ‘감정’까지 넣어 주셨다.
군대 휴가 나와서 먹었던 대방동 골목에 있는 바지락
칼국수집의 그 구수한 칼국수 냄새를… 나는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국을 방문해 친척집에 초대받아 아래층에서 친척
누나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이층에서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
누구야?
아… 우리 막내딸 피아노 레슨 선생…
그리고.. 그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내려 오던 그 여인네를
보는 순간 느꼈던 그 감정..
아직도 생생하다… 세월이 지나 이젠 나의 마나님이 되셨지만… 가끔 마나님이 피아노를 칠 때면 그때 그 감정이 다시 살아 나곤 한다.
어쨋든 추억은 귀중하다.
더우기 그 때의 느낌과 나의 감정이 추억속에 포함된
그런 추억이라면…
그런데…
가끔가다 해 보던 그 LOTRO 게임의 로긴 (Login) 이 어느날 갑자기 안 된다.
아마도… 새로 합병한 그 (새)회사가 … 감히 옛 Employee 인 나를 몰라보고 나의 (Free
and permanent) 계정을 무자비하게 폐쇄 해 버린 것 같다.
이럴수가??
이제 나의 모든 추억의 포탈이 없어져 버렸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의 사랑하는 말을 타고 그
넓은 브레아 평지를 활보할 수 없다.
나의 아이디 우물라카차 (Umulakacha) 는 이제… 영원한 망각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슬프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