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내가 한국에서 대전에 살 때다.
아마도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기억하는데
밤에 자다가 갑자기 잠에서 깼다.
어릴 땐 왠만한 인기척이나 소음에도 잠에서 깨는
일은 초등생에겐 드물다.
그런데 내 스스러 깬 것이다.
그 때의 느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묘한 무서운 느낌이 엄습했다.
깨고 났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지진이 나기 전 동물들이 저주파를 먼저 느끼고
이리저리 설친다고 하는데, 어릴수록
가청범위가 넓어서 였던지 … 무언가 묵직한 소리를
들었던 느낌이었다.
마치 영화의 극적인 장면에서 들리는 아주 극저음의
웅웅~ 하는 소리
같은..
후다닥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부엌일을 도와 주시던) 아주머니가 마당 한 가운데 서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대전 중앙시장 대화재 사건이였다.
나는 불길이 그렇게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줄은 상상 조차 하지 못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한 밤중에 시뻘건 불길이 솟아
오르고 … 내가 그렇게 상상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무겁고 깊은 소리가 땅 바닥으로
부터 느껴지던 밤이었다.
그 중앙시장과 우리 집과는 불과 30분 거리도 안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뒤로는 나는 화재를 영화장면을 통해 본 적은
있었어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어젯밤까진.
어제 점심무렵… 흘러가듯 들었던 뉴스에서 우리집에서 10마일 정도 북쪽에 위치한 볼더 지역에서 Wild Fire 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산불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후에 Marshall Wildfire 라는 또
다른 불길이 볼더와 내가 사는 브름필드 중간 지역에 있는 수퍼리얼 (Superior) 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후 늦게 쯤… 회사일을 조금 일찍 끝내고… 찌부둥한 몸을 풀겸 동네를 한 바퀴 돌려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하늘 한 쪽이 뿌연 연기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강풍이 불어왔다.
바람이 이렇게 불면 불이 크게 번질텐데… 생각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왔더니.. 일 갔다 온 Chrissy (우리 딸) 가.. 지금 수퍼리얼 지역에 불이 났는데.. Freeway 오면서 혼났다고 하면서… 그 불길이 지금 위험하게 우리쪽으로 번지고 있다고
했다.
Wild Fire 하면 <산불> 만 생각했기에.. 아니
숲도 없는 주택가에 무슨 불이 날까… 생각하며 TV 를 켰다.
오.. 장난이 아니다.
집들이 타들어 가는 장면을 보여 주고.. Costco 에서 쇼핑하다 긴급피신 방송에 뛰쳐
나온 어떤 사람이 직캠한 장면을 보니.. 마치 전쟁터 같았다.
연막탄을 터트린 것 같이 뿌연 거리에 이리저리
사람들이 차를 타고 도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폰을 통해 화재 Map 을 보니..
Superior 을 중심으로 루이스빌과 라피아트까지 번저 나가고 있다.
수퍼리얼과 루이스빌은… 내가 살고 있는 브름필드와 바로 인접해 있는 타운이다.
뉴스를 보니 Peak 바람 속도가 110마일 이라고 한다.
세상에… 40마일만 되도 지붕이 들썩들썩하는데…
110마일이라고?
그리고 바람의 방향이 동남쪽 즉.. 브름필드를 향하고 있다.
루이스빌과 브름필드 사이에는 큰 하이웨이인 287 도로가 있고 I-36 고속도로가 있다.
이것만 넘으면… 내가 즐겨 트레일하는 엄청나게 넓은 Open
Space 가 나온다.
오픈 스페이스라는 말은… 그 안의 모든 것이 다 Consumable 즉 불에 그냥 탈 수 밖에 없는 야생 풀들과 나무들 이라는 말이다.
그 시각 … 축구장 만한 넓이의 스페이스가 딱 5초만에 다 타 들어 가는 장면을 TV 에서 보여 주었다.
이론대로 따지자면… 강풍이 계속 남동쪽으로 불어온다면.. 이 상태라면 10여분 안으로 우리 동네로 불길이 날아 올 수 도 있다는 말이다.
갑자기 다가오는 그 무서운 느낌이… 있다.
옛날… 대전의 중앙시장 화재의 기억이다.
마침 퇴근하고 들어 온 와이프랑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TV 속보에 귀를 기울였다.
속으로는 기도하며 이곳 저곳 아는 사람들과 쳇을
하기 시작했다.
TV의 앵커가 현재 숫치를 얘기한다.
580채 주택이 전소되었고 만명 넘게 사람들이 피신하고 있다고.
목사님과 연락이 되었는데… 교회 성도 몇 집이 지금 교회로 피신해 있다는 것이다.
한분은 자기 집이 타 들어 가는 것을 보고 피신하였다고
한다.
수퍼리얼 쪽엔 우리 교우들이 꽤 많이 산다.
그리고 조사를 해 보니.. 내가 다니는 회사도 화마의 정 중앙에 위치해
있기에.. 아마도 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틀어졌다.
남동쪽으로 향하던 바람이 남서쪽으로 향했다.
이것과 더불어 조금 줄어든 바람의 속도… 그리고 가운데 위치한 큰 도로 (287) 와 Freeway 때문인지.. 불길은 그 앞에서 멈춘 상태가 되었다.
이제 문제는 남서쪽으로 향하는 불길이다.
왜냐하면 남서쪽으로 계속 남하하면.. 우리 교회가 위치해 있고… 많은 교인들이 사는 웨스트민스터와 알바다가 나오기 떄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지역에 Pre-Evac 경고가 떴다고 한다.
몇몇 교인들은 이미 짐을 싸 놓고 상황을 보고
있었다.
이리가도 문제고 저리가도 문제다.
여기 저기에서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들어 오기
시작했다.
캔시스에서 … LA 에서 친구가… 한국에서 가족들이.
플로리다에 Vacation 가 있는 큰아들이 괜찮냐고
연락이 왔다.
덴버 다운타운 사는 둘째가… 얼마전에 산 큰 트럭을 다 비워 뒀으니까.. 만일 긴급시 즉시 부르라고 연락이 왔다… ㅎㅎㅎ 미 해병대 수숙대에 있었는데… 본능이 작동하는 모양이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속으로는 기도를 하며 TV 에 다시 귀와 눈을 기울였다.
잘 시간인데… 자야 하느냐.. 계속 모니터 해야 하느냐 결정을 해야만 했다.
바람이 줄어들고… 방향이 이젠 북쪽으로 향하고… 가운데에 있는 큰 도로와 프리웨이가 큰 장벽이 되어 막아주는 탓에 … 더 이상 불길이 우리 쪽으로 번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제 안심하고
자자… 라고 명령 (?)을 내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1-2시간 더 폰을 통해 상황을 모니터링 해야만
했다.
잠에서 깨어보니… 새벽 5시다.
느낌도 분위기도… 아무런 이상한 소리도 안 들린다.
상황을 살펴보니.. 더 이상 피해지역이 불어나지 않은 것 같다.
Pre-evacuation 지역도 없어졌다.
잘 아는 집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소된줄 알았던 수퍼리얼에 있는 집이 말짱하다는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건너편에 있던 지인들 집들은 전소되었다는… 소식도 전한다.
우리는 다행히 불운을 모면했지만 … 실지로 집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은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에는 내가 잘 아는 교인들도 몇명있다.
그들을 위로해야 한다.
2021년도가 마지막 하루 남은 오늘이다.
하나님은 한쪽 문을 먼저 열어 놓기 전엔 다른쪽
문을 안 닫으시는 분이시다.
2021년도 마지막에 당한 이 위기와 환란 (?)을 2022년도에는 하나님께서 곱절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는다.
비록 지금은 가슴이 아프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복구절차와 시간 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더
절실하게 하나님의 손길과 그의 궁휼을 구하고 그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자정에 있을 .. 송구영신 예배는 많은 성도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함께 회개하고 함께 손을 잡고 함께 위로하고 함께 새해의 소망을 가져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2022년… 호랑이 해에는
용맹한 호랭이가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인지 먼지를
콱 물어 죽여서
우리 모두가 기쁘게 모이기를 힘쓰는 호랑이 해
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보는 바이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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