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칼럼

Page Title Facebook 커뮤니티에 연재된 스티브의 페이스북 칼럼입니다. 생활속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목스티브의 Facebook 칼럼 2 (06) – 트로트 부르는 어린아이들2026-04-08 20:01
작성자 Level 10
예전에 북한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어린아이들 몇명이 나와서 (북한) 가요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누가 봐도 확연히 과장된 손짓과 몸짓 그리고 어색한 표정… 그 사이로 기계처럼 훈련된 창법과 교과서적인 음악적 표현.
북한의 청중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 노래들의 가사가 완전 어른들의 소재 (술, 실연, 이별, 인생고, 허무함 등등) 는 아니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으로 보였다.
뭐 북한의 청중들이 언제는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의 곡과 가수들을 선택해서 콘서트를 볼 자유와 권리가 있었겠냐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그 아이들의 공연은 감동의 무대가 아니라 측은감의 무대였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TV를 켜 보면 트로트 프로그램으로 도배되어 있는 느낌이다. 노래 잘하는 어린 친구들이 (어떤 아이들은 6-8세 어린이들도 있다) 무대에 올라 어른 못지않은 가창력을 보여 주는 장면도 자주 본다.
솔직히 말하면 그 어린 나이에 음정도 정확하고 무대 매너도 훌륭한 모습을 보면 감탄이 일단 나온다.
“와, 저 나이에 저렇게 노래를 잘하다니!”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감탄이 지나가고 나면 마음 한켠에 작은 질문이 생긴다.
“저 아이는 지금 자기 나이에 맞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까?”
트로트라는 장르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세월의 무게, 사랑의 이별,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데에는 트로트만큼 솔직한 장르도 드물다. 맞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지점이다.
트로트에는 흔히 다음과 같은 정서가 담겨 있다.
• 사랑에 속아 눈물 흘리는 이야기
• 세월에 지친 인생의 한탄
• 떠나간 사람을 원망하는 이야기
• 술잔에 눈물을 섞어 마시는 이야기
그래서 어떤 노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요…”
또 어떤 노래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 술잔에 눈물을 띄워 마신다…”
또 다른 노래에서는
“당신이 떠난 뒤 나는 매일 울며 산다…”
이런 가사들은 사실 트로트만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 본 사람들이 부르면 실체험처럼 공감이 온다.
그런데 이런 노래를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가 떠억~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는 장면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저 아이는 저 가사의 뜻을 알고 부르는 걸까?”
아마 대부분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아직 인생의 ‘인’ 자도 시작하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 인생을 다 아는듯한 표정으로 노래를 한다. 제스추어나 얼굴표정이나 어른 못지 않게 진지하고 마치 그 표정 그 제스추어가 자신의 인생사의 표현같이 리얼하게 느껴진다.
이것이 연기인가… 감정인가?
아직 인생을 살기도 전에 인생을 노래한다?… 생각해 보면 조금 재미있는 장면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숙제 안 해서 선생님께 혼났어요” 라고 말하던 아이가 오늘은 무대 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세상살이 참 쓰다…”
그 아이 인생에서 가장 쓴 경험은 아마 급식에 브로콜리가 나온 날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인생의 고단함을 노래하고 사랑의 배신을 노래하고 눈물 젖은 술잔을 노래한다.
귀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딘가 어색하고 강요된 장면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콧수염을 붙이고 “인생 참 힘들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이들은 가수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 방송은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제작진은 항상 새로운 재미 요소를 찾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어린 트로트 가수” 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아이가 어른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놀란다. 그 놀라움이 곧 재미가 되고, 재미는 시청률이 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조금씩 콘텐츠를 위한 소품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아이의 재능을 키워 주는 것과 아이를 엔터테인먼트 도구로 사용하는 것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아이의 재능을 키워 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아이가 어른들의 재미를 위한 장치가 되는 순간 우리는 분명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랄 권리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뛰어 놀고 엉뚱한 상상을 하고 실수도 하고 깔깔 웃으며 자랄 권리가 있다.
그 나이에 너무 빨리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면 아이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물론 어린 가수가 노래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노래는 훌륭한 재능이고, 그 재능을 키워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동요만 부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필요하다.
“이 노래가 과연 이 아이에게 어울리는가?” 그리고
“왜 이 아이는 이 노래를 어른 무대에서 부르고 있는 것인가?”
아직 짝사랑도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아이가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고 노래하는 장면은 귀엽다기보다 조금 무서운 풍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무대에서 이별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망가진 인생을 노래하고 술잔에 눈물을 섞어 마신다는 가사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어른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조금 이상한 풍경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아이들이 트로트를 부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이 여러 이유로 아이들을 엔터테인먼트 세계로 끌어 들이는 사이에,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인생의 무게를 너무 일찍 얹어 줄 수도 있다는 문제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은 한 번뿐이다.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인생은 가만히 있어도 충분히 빨리 어른이 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Remind 할 겸 말해 주고 싶다.
트로트는 훌륭한 음악이다. 인생의 깊이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장르다.
세월을 지나온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내려놓듯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어린아이들에게는 조금 이른 노래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무게가 담긴 음악이라면 그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날에 불러도 늦지 않다. 아이들에겐 그들에게 어울리는 노래가 분명히 존재한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사랑 때문에 울 일도, 세월 때문에 한숨 쉴 일도, 술잔에 눈물을 섞어 마실 일도 없다.
그 아이들의 하루는 친구들과 뛰어 놀고 깔깔 웃고 엉뚱한 상상을 하며
철없이 자라는 시간이어야 한다.
노래는 언제든 부를 수 있다. 무대도, 마이크도, 박수도 인생이 조금 더 지난 뒤에도 충분히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은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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