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칼럼

Page Title Facebook 커뮤니티에 연재된 스티브의 페이스북 칼럼입니다. 생활속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목Facebook 칼럼(179) – 오랜 일기장2024-07-02 12:54
작성자 Level 10
첨부파일diary.png (589KB)

오늘 우연히 서재를 정리하다가 1979년도에  나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40 전에  나의 일기다.

 

그때의 나의 상황을… 나의 신앙을 잠깐    있는 대목이 있기에 한번 Share 하고 싶다.

 

먼저  내용을 다시 Transcribe 해서 적어 본다.

(Screen capture  아래에 attac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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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Stereo  틀어놓고 Diary  쓰고 있다.

만일 어느 나라에서

끝없는  우주탐험을 위해

10 정도의 사람을 끝없는 공간속으로 보내기 위해

Candidate  뽑는다 하면

I’ll be the first one who goes for it!

 

성경책과 찬송가

그리고 일기장과 앨범 (음악 Library  말함)…

 

그것 만이면  Eon  공간세계

 없는  공간세계랑도

   있을  같다.

 

그곳에선   주님 곁에 가까이서

모든 그가 창조하신 우주를

느끼며

오히려 여기  지구보단

훨씬  외로울 것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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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  보니.. 기특한 면도 있고

(나는 알지만정말 외로왔던 유학시절이었는데

그런 외로움이 잔뜻 배어있는 글임을   있다.

 

어쨋든  외로움을  견디고

이리 저리 신앙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결혼도 하고 애들도 이제  갈길  가고 있고

성가지휘찬양인도성경공부인도   했고

장로직분  감당하고 이제 은퇴까지 했으니

 

 견딘 것이다 라고 자화자찬  본다ㅎㅎㅎ

 

그때도그랬지만

지금도

진짜 끝없는 우주여행의 Volunteer  뽑는다면

단연 선두 지원을  것이다.

물론 받아 줄리도 없겠지만… ㅎㅎㅎ

 

가끔

내가 대학생활을  때의 신앙과  지금의 신앙을 비교해 보면

지금은 깊이가  있지만

그때는 높이가  했던  같다.

 

이제는  때처럼 높이 뛰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럴 열정과 모티베이션이 없다,

 

그러나 깊은 뿌리처럼

왠만한 바람과 .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다.

 

높이와 깊이를  같이 가질  없다.

소수의 사람들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인생길을 많이 걸어 보면

높이만이 다가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었을 때는 내가 뛰는  높이로

나를 나타내고

나를 자랑하고

나를 판단하고

나를 점검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많이

청년부 대학부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뛰었는지가

 때에는

마치 동물들이 서로 킁킁대며 Size Up 하듯이

판단 기준이 되었다.

 

그때에는 사실 그래야 한다.

아니면 언제 그렇게 높이 뛰어 보겠는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성욕을 주시기 않았다면

하늘에 별같이 바닷가에 모래같은

아브라함의 자손 축복은

성취가 가능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젊었을때에는

높이 뛰게 아드레날린도  주시고

경쟁심도  주시고

나의 성취에 Focus 하는 시각을 주셨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높이 뛰는 것은

후배들에게 물려 주고 (?)

깊이 뿌리 내리는데 Focus 해야 한다.

 

가뜩이나 힘도 모자라고

모티베이션도 부족하고

기량도 쇠퇴해 지는데

뿌리마져   깊이 박혀 있지 않다면

무슨 수로 노년에

바람과 눈과 비를 견디겠는가?

 

고향에 돌아   까지는

그래도 굳건히 버티다 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높이 올라가는 나무는 뿌리도 깊단다.

조금 자라는 나무는 뿌리도 얇다고 한다.

 

결국 젊었을   모르게라도

이것 저것 오지랖 넓게 활동도 하고

헌신도하고

봉사도   사람이

그래도 뿌리를 깊게 내릴  있다는 역설적인 얘기다.

 

우리야 이제 늦었지만 ㅎㅎ

우리의 자녀들은 어릴때 부터

 강제라도 빡세게

신앙교육 시키는게

활동전반에 개입시키는게

주입교육이라도 시키는게

결국은 지나서 생각해 보면

맞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얘기이지만내가 아는 지인  분이 나에게 얘기를  주었다.

 

아들이 어렸을때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이기에

한국말  굳이 배우라고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고

신사적으로 (?) 오픈 마인드로

집에서도 영어만 썼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 들어 가고 나서 얼마 있다가 아들 녀석이 방학때 집에 와서

자기에게 화를 내며  따지더라는 얘기다.

 

 아빠는 나에게 한국말을  가르쳤냐고

한대 얻어 맞은 아빠가

 녀석아 나는 너에게 한국말 배우라는 스트레스를 일부러 하나도  주었는데

지금 와서 … 한국말 타령을 하면 어떡하냐?

그랬더니.. 아들  .

 

그러면 때리면서라도 나에게 강제로 한국말을 가르쳤어야지.

 친구들은  미국말 한국말 유창하게 하는데

나만 반쪽이잖아.. 씨이~

 

웃을 일이 아니다.

자식 교육에 근본적으로 오픈마인드로 자유롭게 원하는대로 놔두는 교육이 어디 있는가.

 어린 애들이 무슨 분별력이 있다고.

 

철이라고 하는  분별력이 들기 까지는 부모가 대신해서 그들의 선택을 결정해 주어야 한다.

그게 부모 아닌가.

남도 아닌 부모가 .. 우리는 애들 싫어 하는건  시켜…  한다면

이건 오픈마인드유돌이 그리고 멋진 부모가 아니라….

그냥 무책임한 부모일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공감한다.

애들 신앙교육은 철저히 일단 시켜 놓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유대인 어머니들의 교욱방식이다.

어릴땐 빡세게

나중에 철들면..  마음대로.

 

이야기가 새어 나갔지만

1979년도의 나의 일기를 보니

그래도 젊었을때 제법 신실한 마음가짐이 있었길래

지금의 내가 있지 않나…. 해서

두서없이 얘기   것이다.

 

40 여년간

뿌리를 내렸다면

제법 깊은… 뿌리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자신을 반성해 보며

한마디   것이다.

 

이상.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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