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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Facebook 칼럼 (232) – 사랑하는 이희봉목사님!2024-07-02 13:21
작성자 Level 10

어제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희봉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향으로 가셨다.

 

1994년 나는 켈리포니아에서 덴버로 가족과 함께 이주를 해 왔다.

 

다니던 회사에서 Transfer 를 한 것이었지만그것만 빼고는  지인이라곤 한분 장로님뿐… 모든게 낯설고  한번도 방문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덴버땅으로 이주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때가 내가 마악 40에 다가간 시기였고 남들이 말하는 <불혹>의 나이였지만모든 것이 미숙하고 원숙하지 않은 시기에 이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목사님은 1974년 부터 내가 섬기는 덴버한인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하셨고, 1989년에는 교단의 총회장으로 피선되시었던 교계의 리더이자 존경받으셨던 원로이셨다.

 

내가 켈리포니아에서 같은 교단의 장로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한 것이 공로(?) 가 되어 덴버에 와 보니 이미 목사님들끼리 연락이 되어서마침 공석으로 있던 지휘자 자리를 자연스레 맡게 되었다.

 

그 당시 이목사님께서는 군더더기없는 목회를 하신 분이셨는데,  상당히 보수적인 목회를 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었다.

 

교회 찬양팀도 그냥 찬송가 위주로악기도 피아노뿐이었다.

 

그러므로 드럼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고 앞에 나와서 기타치고 찬양하는 그림은 아예 그릴 수가 없었다.

 

그저 단정한 모습으로 지휘자가 강단 앞에 서서 찬송가를 한손에 들고 지휘를 하며 회중들의 찬양을 인도하는 모습이 정석이었다.

 

그런데 철모르는 지휘자/찬양인도자가 등장했다.

 

기억이 생생한데덴버에 도착하여 그 다음 다음주인가…  주일예배를 보는데 특송을 하라고 하셔서 감히… 겁없게 (?) 기타를 매고 찬양을 해 버렸다.

 

그 때…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길과… 저러고도 지휘자/찬양인도자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 가득한 성도들의 그 눈길들을 아직도 기억한다ㅎㅎㅎ

 

그러나  그날 해프닝 이후에도 주님의 은총으로  아무런 천재지변은 없었다.

 

아마도… 이목사님께서 삽살개 범 무서운줄 모르듯 재롱떠는 젊은 지휘자의 기를 꺽고 싶지 않으셔서 .. 잔잔한 미소로 이해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얼마 후…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색소폰을 가지고 특송을 했다.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찬양팀 조직이후.. 드럼을 사용해야 한다고 파격적인 (?) 안건을 올렸는데… 당회에서 통과가 되었다.

 

이목사님이 삽살개를 한번 믿어 보시려고 큰 작정 (?) 하신 것일 것이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 교회안에서 찬양시간에 드럼소리가 쿵작쿵작 울리고… 기타치는 청년들이 두어명 앞에 보이고  건반도 등장하고… 그때만 해도 무지 무지 보기 드문 OHP (Over Head Projector) 를 이용한 찬양 피레센테이션이 본당 앞쪽 벽에 미치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졌는데도.. 이목사님은 묵묵부답이셨다.

 

다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음을… 그 후 알게 된다.

 

이렇게 이목사님과 나의 만남 그리고 관계가 시작되었다.

 

전해지는 소문과는 달리 이목사님은 매우 단순하시고 순박하시고 재미있으신 분이셨다.

 

가끔 나와 마주칠 시간이 있으실 때면 애써 생각해 놓으신 조크를 한마디 띄우셨다.

 

마치  낚시밥을 던져 놓고 물고기가 낚이는지를 보는 강태공 같이 ㅎㅎㅎ

 

그러나 우리같이  닳고 닳은 자들에게는 이목사님이 던지시는 그 조크가 Punch Line 도 없고 얼마나 속이 깊지 않은 (ㅎㅎㅎ조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나 좋았다.

너무나 순박한 조크.

마치 어린애 같은 조크.

재미없는 조크.

 

그러나 그 의도에는 너무나 순박하고… 때가 묻지 않은 그분의 마음이 보였다.

 

이목사님의 학문의 깊이는 가름할 수 없다.

 

그 당시 쥐꼬리 같은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성경공부를 맡기셨는데 아마도 그것을 통해 내 자신이 성경을 더 연구하고 더 성숙해 지기를 바라신 목사님의 깊은 뜻이 있었음을 나는 나중에 알게된다.

 

초창기에 나는 목사님의 설교를 동시통역 했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통역을 해 보면 목사님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또 외람되지만 목사님의 설교준비 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목사님의 설교원고는 그 주중 목요일 저녁이면 내게 전달되었다.

 

나도 직장이 있으니까 금요일 오후쯤부터 통역준비를 하라는 말씀이시다.

툐요일 오전까지는 설교 원고에 대한 궁금한 점이나 질문이 있으면 알려 돌라는 말씀이시다.

 

혹 질문이 있어서 전화로 여쭈어 보면 자세하게 부가 설명을 해 주시고 특히 예화같은 것의 출처까지 알려 주신다.

 

절대 출처없고 Reference 없는 예화는 사용하시지 않으셨다.

 

그러고 보면 월요일에 잠시 휴식하시고화요일 부터 목요일까진 설교준비하시고 목요일에 설교 스크립트 보내 주시고토요일에 Finalize 하셔서 주일날 설교를 하시니… 한주 내내 설교에 집중하시는 분이셨다.

 

나는 예화와 성경구절만 제외하고는 주일날 통역할 떄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실시간으로 대화하듯 통역을 하는 습관이 붙었는데그 역시 목사님 조언 탓이다.

 

설교 구구절절 번역을 해서 하게되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매우 학문적인 (?) 표현으로 변하고 만다.

 

목사님께서는 (영어권회중들이 마치 대화하듯 설교 듣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설교자체는 대화하듯 통역하고… 성경구절이나 예화 같은 것은 정확성을 위해 미리 번역을 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진보적인 방법까지 나에게 전수 (?) 해 주셨다.

 

이목사님은 은퇴하신 후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다.

얼마전 부턴 치매증세가 와서 사모님이 부쩍 걱정하시곤 했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 같아 진다는 말도 있지만 여기에다 치매증세까지 겹쳐서 최근의 목사님의 모습은 천진난만한 모습 그 자체였다.

 

지나고 난 다음에야 후회하게 된다고 살아 생전 더 자주 만나서 목사님과 대화를 못 한게 후회가 되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나에게는 아버지 같은 스승같은 존재이셨던 목사님이 이제는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과 예전처럼 목사님에게 나의 고민과 생각을 얘기할 수 없다는 아쉽고 슬픈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이제 걱정도 고민도 슬픔도 눈물도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많은 천국의 성도들과 함께 계실 것을 생각하면  안심도 되고… 나 역시 언젠가는 가야할 그곳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목사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목사님.. 긴 여정 마치시고 이제 영원한 본향에서 평안하게 지내시길 삼가 기원드립니다.

 

혹 시간있으시면… 제 집도 한번씩 살펴 주시면 나중에 천국에 가서 목사님 생전에 좋아하시던 King Crab 거하게 쏘겠습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샬롬…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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