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인가 집 근처 야외 골프 연습장에서 스윙을 연습하던 중에 갑자기
오른손등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는데 알고 보니 벌침에 쏘인 것이다.
벌이 내 곁을 날아가다가 (아님 그분이 있는 곳으로 내가 실수로 다가갔던지) 내가 스윙을 하는게 자기를 위협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시어 가미가재 작전으로 나에게 진격을 한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지인은 무더운 여름철 밤에 I-70
Freeway 를 타고 산을 넘어 오다가 너무 덥길래 잠시 차창을 열었단다.
그런데 잠시 후 갑자기 머리 윗부분에 강렬한 통증을 느끼고.. (내
생각엔) 통증도 통증이지만 어지럽기도 하고 … 어쩌면 시력도 흐려지기도 하여 … 운전
자체가 위험하다고 결론을 짓고 차를 고속도로 옆길에 세웠는데, 자기 차만 그런게 아니라 많은 차들이
땡벌의 습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 벌들의 독침은 정말 무섭다.
극한 경우에는 황소가 벌침을 맞고 쓸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벌은 위협적인 적이 출현하면 이 봉침을 적에게 꽂아 독을 주입하게 되는데, 봉침 끝의 <미늘>이라고 불리우는
이 부분이 독이 주입되는 동안 봉침이 빠지지 않게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말은 봉침이 적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게는 하지만 반대로 빠져나오지 않게 하는 기능을 가진 이 미늘 때문에 … 독을 다 주입하고 난 후에도 봉침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은 봉침과 함께 내장이 몸통과 분리되어 벌은 죽고 만다.
참 이상하다.
적을 공격하여 피해를 준다 해도 결국 자신도 죽는 다는 것인데 자신이 죽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얘기 해 보기전에 며칠전 읽은 신문 기사를 생각해 본다.
지난 17일 발생한 한국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 화재 진압 중에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구조대장이 구조작업을 지휘하던 중 갑작스런
불길이 살아나면서 극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구조대장은 오히려 자기가 뒤로 움직이며 부하들에게 빨리 빠져
나가라고 명령을 한다음 뒷쪽에 있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불과 50여분 남은 산소통에 의지한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기에선 본능이 모든 생각을 지배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의 본능이라면… 생존을 위해 이기적이 되는 것이다.
다들 그래서 온갖 수단을 발휘하여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밟고 밀고 들은 척도 안하고 도망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반대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참 이상하다.
사브리나
코언-헤턴이라는 사람은 영국의 첫 여성 소방관이다.
20년간의 현장 기록을 담은 그의 책 ‘소방관의 선택'에는 재난 현장의 긴박감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고 한다.
사이렌 소리에 격하게 반응하는 신체 아드레날린…
불길보다 더 뜨거운 동료애…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기를 위해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일상적 헌신…
사브리나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높은 소방공무원 (웨스트서식스 소방대장) 이자 동시에 심리학 박사라고 한다.
155㎝, 48kg 작은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투지로 현재 영국은 물론 여러 나라의 긴급 구조 시스템에서 의사결정에 관한 혁신적인 기법인 ‘Decision Control
Process'를 전파하고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위급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 충실하고 어떤 사람은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까지 하려는 것인가.
참 이상하다.
그런데, 마태복음 22장:36-40을 보면,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제일로 큰 계명이 뭐냐고 물은 것이다.
제일 큰 계명 몇가지가 뭐냐고 물은게 아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지금 어느 음식이 가장 먹고 싶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해물전골” 이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해물전골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고, 스시도 먹고 싶고, 만두도 먹고 싶다.. 라고 대답한다면 … 논리적으로 보면 어린애 같은 중구남방식 대답이 될 것이다.
자 그런데… 이런 어린애같은 비 논리적 (?) 인 대답을 예수님께서 하셨다… Really?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고만 하셨으면… 아주~ 아주~ 논리적인 대답이 되셨을텐데… ㅎㅎㅎ
한술 더 뜨시어 …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라고 둘째 것 까지 언급하신 것이다.
둘째 것까지 묻지도 않았는데 대답을 하신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이 말은 둘째 것도 중요하다는 말씀일 것이다.
둘째 것에 그분의 관심이 있다는 말도 된다.
아.. 해물전골을 먹고 싶은데.. 짜장면도 먹고싶어요.. 라고 대답을 한다면… 사실은 해물전골이나 짜장면이나.. 또이또이라는 얘기도 된다.
어느것을 줘도 만족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어쩌면 같은 의미일 지도
모른다.
우리 시각에선 분명 다른 것이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선 동일한 것 일 수도
있다.
아마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위라고 하나님이 여기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즉,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므로 사실 따지고보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 두 계명은 두가지의 계명이 아니라 하나의 계명이라고 말
한다면 모순인가?
이웃 사랑… 여기에 비밀이 들어 있다.
다시 벌의 케이스로 돌아가 본다.
가만이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벌은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이다.
독침을 놓음으로써 자신은 비록 죽을지라도, 그 희생이 벌집 속에 있는 여왕벌과 어린 유충들 그리고 수많은 동료를 살리는 셈이
된다.
동료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다.
곧 이웃 사랑이다. ㅎㅎㅎ
불길 속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감을 느끼며, 살아있는 내 살이 불길에 익어가는 고통과, 감당할 수 없는 독연기가 나의
페속으로 스며들 때, 나라면 아마도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나 살기 위해 죽을 힘까지 다 쓰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숭고한 소방대원들은 … 그 순간에도 자신의 희생은 Given 이고 … 남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은 no doubt,
no second thought 이다.
오직 생각하는 것은 .. 남을 살리는 일이다.
이웃을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행위가 .. 예수님께서 직접 얘기하신 The Greatest Commandment 에
숭고하게 우똑 서 있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미미한 곤충인 <벌>의 뇌리속에 Firmware 를 넣어두시고.. 위급시에 자기동료들을 위해 기꺼히 자기 목숨을 바치게 program 하신 ..
programmer 이신 하나님의 섭리 (속 마음) 를 엿볼 수 있는 한 부분이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에게도… 여러가지 선택을 향한 자유의지를 주신 가운데도 … 극한 상황에서 굳이 ..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결단이 가능함을 보여주시는
행위에서.. 하나님의 속마음을 헤아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5:13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Confirm 하여 주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사람은 모든 것이 좋고 평안할 때는… 이상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고 목숨이 걸려있는 지경이라면, 내가 누구인지.. 나의 진면목이 들어나게 되어있다.
목숨을 담보로 거짓 행동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손해 보고 내가 위험하고 내 명성과 내 목숨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떄 … 그때도 내가 나의 이웃을 생각하고 사랑할 수있다면… 그것 보다 더 확실한 하나님 사랑의 증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심지어 교회내에서… 모든 결정의 판단기준은 결국 “나의 이익” 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슬픈 일이다.
위급시에 망설임 없이 다른 벌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히 희생하는
벌들에게서 교훈을 얻고 … 원한다면 자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히 내어주는 소방대장 .. 그분을 위해 잠시
기도를 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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