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우연히 한 책이 눈에 들어 왔다.
<최고의 하나님을 위한 나의 최선> 이란 오스왈드 챔버스가 쓴 책이다.
영어 원제가 무엇일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나의 최선은 My Best … 최고의 하나님은 Highest God..
그래서 My best for the highest God 아닐까 생각하고 원제를 찾아보았다.
영어제목은 My Utmost for His Highest다.
이것이 한국어로 <최고의 하나님을 위한 나의 최선> 이라고 번역이 되었다.
영문학과 신학을 전공한 분께서 번역을 하셨으니 이 보다 더 적절한 번역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한가지 생각할 것은 Utmost 라는 단어다.
이 단어가 Best 와 같은 뜻으로 사용도 될 수 있지만 Maximum 이라는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영어 단어임을 알 수 있다.
I did my best 와 I did my maximum 에는 미세한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최대 Bench Press 가 200 파운드인데, 어느날 Gym 에 가서 친구들과 누가 더 많은 중량을 드나 시합을 했다고 하자.
그날 따라 나의 컨디션이 영 나빴는지 죽을 힘을 다 발휘하여 들었는데 195 파운드 였다.
이때 나는 I did my best 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I did my maximum 이라고는 말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의 최고 기록은 200파운드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My Utmost for His
Highest 를 생각해 보면… 저자는 나의 유동성있는 Best 보다는 나의 최대, 나의 모든것, 나의 극한 한계인 Utmost 를 하나님께…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단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정도로 하고.
이 책은 2007년도에 내가 장로임직을 할 때 지인이신 어느 장로님이 나에게 선물을 한 책이다.
그때 한번 읽어보고 서재에 비축 (?)을 해 놓았는데 오늘 아침에 우연히 그 책이 다시 눈에 띠었던 것이다.
책을 집어들어 페이지를 랜덤으로 넘기며 머릿곡으로 스캔을 하며 훑어가는데 .. 귀한 귀절에 Focus 가 된다.
오늘 아침 내가 은혜받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나> 라는 짧은 귀절을 간추려보면….
하나님은 극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쉽게 평범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환경의 압박을 통해 말씀하신다.
이 세가지 포인트로 집약할 수 있다.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어떤 문제점을 두고 기도하는 자신에게 하나님이 어떤 극적인 사건으로 역사하시기를 내심 기대한다.
극적인 사건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작은… 그러나 충분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흘러보내고 만다.
그리고는 기도 응답이 없다고 투덜댄다.
어느 마을에 초유의 홍수사태가 일어나 모든 마을 가옥들이 물에 잠기고 기축들이 떠내려가고 사람들이 제일 높은 마을 회관 옥상에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 한 장로님이 계셨다.
역시 믿음의 용사인것 같다.
우리의 구원이 곧 올 것이니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하며 목이 쉬도록 기도를 한다.
물은 점점 차는데… 때 마침 저쪽에서 보트를 가지고 구조대가 나타났다.
빨리들 타세요… 하는데 이 장로님은… 나는 하나님이 친히 구원하실테니 하며 타지를 않았다.
이제는 가슴까지 물이 차는데 보트하나가 또 나타났다.
한 사람 자리가 있으니 빨리 오세요… 하는 말에도… 나는 우리의 하나님이 구해 주실 것이니 다른 사람 태우고 가세요.. 하며 기도만 한다.
깔딱깔딱하는 상황인데 구조대들이 철수를 하며… 밧줄을 던지면 빨리 잡고 오세요… 하는데도… 걱정말고 가라고했는데.. 잠시후 그 장로님은 익사를 하게 된다.
천국에 간 그 장로… 씩씩 거리며 예수님 앞으로 달려간다.
아니 예수님.. 이건 약속하고 틀리지 않아요?
믿음으로 기도를 했는데… 저를 익사 시키시다니요?
예수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원 이친구보게… 아니 내가 3번이나 너를 구하려고 보트를 보냈는데… 내가 안 태웠냐… 니가 안 탔지?
극적인 구원을 바란 것일까?
우리들도 극적인 기도응답을 바라는 것인가?
또 하나님은 쉽게 평범하게 말씀하신다.
우리에겐 하나님이 심어 놓으신 양심이라는 공통 Firmware 가 있다.
어떤 상황이든.. 일단 먼저 작용하는 것이 본능.. 즉 양심이다.
이 양심을… 믿지 않는 Non-Christian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아니 시킬 능력 (믿음)이 없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이 양심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연결 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고 읽을 수 있는 성경이 꼭 없더라도 .. 최소한의 하나님의 기본 말씀이 들어있는 양심이라는 Firmware 로도 말씀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나.. 쉽고 평범하니까 .. 근엄하게 극적으로 확연하게 주시는 말씀을 기대하는 우리들에겐 …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같은 티셔쓰라도 $9.95 써 놓은 것 보단 $300.95 정도 써 놓은 것에 관심이 가는 것이 우리들 아니던가?
중요하고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것일수록 오히려 간단하고 평범하고 쉬울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또 한가지는 환경을 통한 압박이다.
모든 환경과 주위상황이 흐르는 방향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확률이 높다.
환경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환경은 물론 개인적인 환경을 말하는 것이다.
가족들 모두가, 교회 목사님이.. 그리고 친지들이 다 이구동성인데… 독불장군같이 내 믿음 운운하며 장비가 마치 장판교에서 목숨을 담보삼아 홀로 적을 대하듯… 그런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독단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환경을 통한 하나님의 귀중한 섭리를 놓쳐버리는 격이 될 것이다.
요란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다.
요란하더라도 남이 모르게 요란하다면 그 요란함은 부지런함이 될 수 있다.
그런대 요란한 목적이…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어야지 남이 자기의 행적 (?)을 볼 수 있기 떄문이라면 이것처럼 수준낮은 신앙이 어디 있단 말인가.
솔찍히 기도도 떠들며 시끄럽게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들으셔야지 남이 들으라고 하는게 기도인가?
하나님이 Hard of Hearing 이신가?
예배도 왁자지껄… 최고의 무대.조명.음향…. 근사한 성가대… 멋진 찬양팀… 기막힌 예배 스크립트… 이렇게 왁자지껄 할 필요는… 그리 많지 않다.
청중들의 환심과 관심과 흥미유발이 목적이라면 몰라도… 하나님이 그런 인위적인 잔치에 감탄하실지는 의문이다.
다이내믹하고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요소 없이도 충분히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백년전 성도들은 멋진 예배프로그램이 없었으니 다 들 신앙이 시들해 졌던가?
겉으로는 평범한데 속으로 깊은 신앙생활이 진국이다.
너무 튀는 사역… 바람직한 것인가?
교회기능에서 사역이 목적인가 예배가 목적인가?
기본가능에 충실해야한다.
자기 스타일의… 자기 충족의…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지말고… 하나님의 섭리가 흐르는 그 강물위에 배를 띄우면 된다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하면 어떨가 싶다.
모처럼 나의 눈에 띤 오스왈드 챔버스의 <최고의 하나님을 위한 나의 최선>… 멋진 영적향상을 위한 최고의 서적이다.
강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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