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내가 한국 대전에서 고등학교 다닐때 시조와
한자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이 있다.
불행하게도 이제는 스승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불충(?)제자지만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조 한수가 있다.
어느날인가 결근한 어떤 선생님을 대신하여 이 선생님이
우리반에 들어 오셨다.
결근한 선생님때문에 혹시 자습내지는 뺑뺑이 (?) 의 기회가 있을까 싶어 속으로 조마조마하던
차에 이 선생님이 불쑥 대리학습을 위해 들어오시니 우리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겠는가?
그리고 무슨 수업이 귀에 들어 오겠는가?
그걸 다 알고 계신듯 선생님께서는 다들 책을 덮으리고
하시고 구수한 엣날 얘기를 시작하셨다.
한눈 팔던 친구들 조차 똘망똘망 눈망울을 굴리며
모두들 선생님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무슨 스토리를 (아마도 고려시대 사랑이야기?) 들려주셨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러나 얘기하시던 중 고개를 떨구시고 교단 위를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걸으시며 감정을 잔뜩 집어넣어 읊으시는 시조 한수에 우리 모두는 … 그떄 표현으로 <뽕> 갔던 것이다.
그때 읊으시던 그 시조의 이름은 <가시리> 라는 시였다.
사실 이 작자미상의 <가시리> 라는 시조는 일명 <귀호곡> 이라고도 불리는 고려가요이다.
이 가요는 한민족의
보편적 정서인 이별의 정한을 잘 표현한 노래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하며 부른 이
노래는 정인의 애절한 심정을 간곡하게 표현하였다.
그 날 이후 그 선생님 (이름은 까먹었지만) 의 별명이 생겼다.
우리는 선생님을 <가시리 선생님> 이라고 불렀다.
나는 아직도 그분을 가시리선생님이라고 기억한다.
그 유명한 가시리를 살펴보면 원가사는 다음과 같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버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어찌 살라 하고
나난 버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설온 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 오소서
조금 현대식 표현으로 해석을 해 보자면…
가시렵니까 가시렵니까
나를 버리고 가시렵니까
날더러 어찌 살라고
버리고 가시렵니까
붙잡아 두고 싶지만
서운하면 아니 올까 두렵습니다.
서러운 임 보내드리니
가시자마자 곧 돌아오십시오
사춘기는 기본이고 마음이 흙같이 거칠었고 생각이
과격하고 주의집중이 불가능하였던 우리들이었지만 (다들 그런건
아니지만) 왠지 우리 대 다수가 이 시조를 듣고… 그 해설을 듣고… 마음에 감동이 생긴건 사실이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자기는 나중에 시인이 되겠다며
그 당시 선생님중에 시인도 하시고 국어를 가르치시던 (이분 이름은 기억한다) ‘조남익’ 선생님을 찾아가
앞날의 진로를 위해 자문까지 받은 친구도 있다.
그 친구 결국 대학을 국어국문학과로 갔는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ㅎㅎㅎ
이토록 선생님의 역할은 학문을 닦는 것 이외에도
인격형성과 장래에 대한 소망을 키우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체육선생님이셨던 박창렬선생님이 있었다.
체육선생님이시니 당연히 유도등 무예를 하신 분이었다.
그 당시 우리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 (?) 중 하나는, 이 박선생님께서 대전 중동거리에서 깡패 서너명에게 희롱당하던 젊은 여자를 보호하던 중 그들과 벌어진 싸움 이야기이다.
거의 전설급의 소문이 전교에 다 퍼졌다.
입에 8기통 터보를 장착한 오지랖 친구의 해설을 빌리자면….
시내 한 복판에서 싸움이 붙었는데… 깡패중 땅딸하고 사납게 생긴 한명이 덤벼드는 것을
그대로 허리치기로 하늘로 3메타 정도 띠워서 도로위에 패대기 쳤단다.
그러자 두번째 깡패가 마치 무협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폼으로 발과 손을 휙휙 허공에 날리며 독수리 타법으로 박선생님을 공격하더라는것이다.
이에 박선생님은 씨익하고 웃더니만 달려드는 그
남자를 3단 돌려차기 (3단 돌려차기는 또무었인가?) 로 도로 저편으로 내 팽개쳤다는 얘기다.
잔뜩 화가난 깡패두목이 웃통을 벗는데 온 몸이
강철같이 단단우람하고 근육이 울뚝불뚝 장난이 아니더란 얘기다.
달려들어 박선생님의 멱살을 잡고 마구 휘두르는데, 박선생님은 침착하게 다시 한번 씨익~
(이게 학생들 사이에서 영웅적으로 퍼진 키 포인트다) 웃으시더니만… 뒤로살짝 빠지면서 Naked Choke 를 걸자… 그 깡패두목.. 깨갱소리를 내며 Tap 을 하더라는 것이다.
꿇어 앉은 그들을 향해 일갈을 하신 박선생님께서는
그들을 일으키시어 (흠… 꼭 김정은씨 얘기하는 것 같다 ㅎㅎㅎ) 앞으로는 절대 약한 여자들 희롱하지 말라며
다독거린 다음 돌려 보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싸움 광경을 실지로 본 학생은 없었다.
실지 상황에 잔뜩 조미료를 뿌렸는지 아니면 그
누구의 상상속에서 그 뉴스가 태동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날 이후 박선생님은 180도 달라짐 학생들의 자기를 향한 태도에 심히
놀라면서도 그것을 즐겼다는 후문이다.
박선생님이 체육시간에 늘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남자가 꽤째째하게 집에나 틀어박혀 나약하게 살면
안된다.
남자는 터프하게 자라고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친한 친구가 이 말에 감화를 받아 (내 개인적 추정이다).. 갑자기 합기도 도장에 등록을 하고 복싱도 배우고 하더니만 그 친구 결국 나라를 위해 큰 힘이 (?) 되고자 욱군사관학교에 갔다.
나도 그당시 … 공대를 지망하기 위해 이과에 있었는데… 선생님중 불어를 가르치시는 신선생님의 그 통통거리는 (불어 발음시) 콧소리와 깔끔하게 파리신사처럼 차리고 다니시는 그분을 동경하여 문과들이
택하는 <불어>를 독어 대신 택한 경험이 있다.
방송부를 만드시고 운영하셨던 선생님 (이름 까먹음.. 아마도 음악선생님?) 의 영향으로 나는 결국 미국에서 방송계통의 사역도 하게 되었다.
이 역시 스승에게 영향을 안 받았다고 말 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전혀 남의 말에 귀를 귀울이거나 영향을 받을 것
같지 않은 우리 학생들이…. 결국 한쪽
귀로는 선생님의 말과 신념과 사상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말이된다.
스승의 귀한 역할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한가지 더 얘기를 하고 끝내야 겠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영어 선생님…. 이동주 선생님.
장난끼가 출중한 나에게 한마디 부정적인 말씀도
안 하시고… 너는 나중에
크게 되겠다고 (말도 안되는) 칭찬에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이동주 선생님.
그 분은 특히 (영.한) 통역.번역 일도 하시고 교편이 끝나면 통.번역가로 활동하고
싶으시다는 말씀도 하신 적이 있다.
그 분의 말이 기억난다.
한국말이 영어로 번역하기 쉬운것 같아도 사실은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언어중에 하나라고.
그 때는 전혀 이해를 못했다.
그러다가 문뜩 <가시리> 시조를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공감하게 되었다.
다음을 그 상황과 분위기와 느낌을 보존한채 우리들은 영어로 완벽한 번역을 할 수
있겠는가.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버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어찌 살라 하고 나난 버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설온 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 오소서
난감하다.
차라리 다음은 번역하기가 쉬울것이다.
갈거예요 나를 버리고?
나는 어떻게 살라고 나를 버리고 가세요
붙잡고 싶지만 화내시면 안 돌아 오실까바
서러운 당신을 보내니 빨리 돌아 오세요!
그런데 ‘가시리 가시리 잇고’… 이 한마디만이라도 제대로 감정을 유지한채 번역을 할 수 있냐고.
Are you really going… 이라고 촌 스럽게 번역할 거냐고.
조금 엣체 섞어가며 Are thou really leaving? 한다고 달리질 것도 없다.
대답이 없다.
난감하다.
그게 한글의 미스테리이다.
처음 배우기는 쉬운데 파고 들수록 어려운 언어이다.
이런 한글을 우리들은… 누워서 떡 먹듯이 재잘재잘 댄다… 그것도 막힘도 거리낌도없이. ㅎㅎㅎ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제목중 하나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이 역사의 한 민족으로 선택하셔서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구약.신약 시대의 메시지를
전해 주셨듯이… 혹시 요즘 진짜 방방뜨는 한글 (과
한류) 를 통해 후세대에 어떤 귀한 메시지가 생겨 날지는… ㅎㅎㅎ 두고 볼 일이다.
나난 이만 가시리 잇고… !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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