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모님을 부를때 ‘어머님’ 이라고 부른다.
장인어른 생존시에는 ‘장인어른’을 ‘아버님’ 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예전에는 나의 가족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착각한 적도 있다.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 그 반열 (?)에 올랐다.
큰 아들은 한국인 며느리와 결혼했고 작은 아들은
미국인 며느리와 결혼했다.
막내 딸은 아직 결혼이 먼지 모르는듯 하다.
작은 아들이 먼저 장가를 갔는데, 며느리가 맨 처음에는 나를 부를때 “Gap” 이라고 불렀는데, 그때의 나의 심정은 밤늦게 막차를 놓친 사람의 심정과 같았다.
막차는 뒤돌아 보지 않고 제갈길로 가고 … 나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무슨 트롯트 노래 가사 같다.
거리감이 느껴지더라는 얘기다.
놀랄분들은 놀란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 나는 거의 (?) 미국화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 대부분의 사고방식이나… 차리고 다니는 모습… 등등만 본다면 내가 미국화 되었다는 말이 맞다.
예전에 한국 출장나갔을때 … 이곳 생각하고 같이 간 미국동료랑 (이 나이에) 반바지에 탱크톱 입고 전철탔는데 사람들이 힐긋힐긋 쳐다보는 것을 …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의아해 생각했던 적도 있었듯이… 나의 행동거지가 미국화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며느리로부터 ‘Gap’ 이라는 호칭을 들으니… 어디에 숨어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한국인’ 본능이 튀어나와… 나의 심통을
건드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얘야~ 나를 부를 땐 아버님~ 이라는 한국말이 어려우면 ‘Dad’ 라고 불러줄래… 이렇게 낯 간지럽게 말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뭐 미국이니 어쩌겠나.. 라고 자위하며 지냈는데..
어느날… 첫 손주놈 생일인가… 아들집에 갔는데… 뒷뜰에 있는 나에게 며느리가 다가 오더니만… Hey
Dad! 라고 청천벽력같은 호칭을 부쳐주시지를 않는가?
순간 머리털이 불쑥 올라가며… 떠난 막차가 아닌 내 앞으로 다가와 문을 열어주는
고마운 버스로 변하고 말았다.
이게… 이 호칭이 .. 이토록… 인간의 마음을 간사스럽게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왜.. 어찌하여… 며느리가 나를 Dad 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ㅎㅎㅎ
중요한건… Dad 라는 말을 들은 내가 심히 기뻐했다는.. 그 사실이다.
이상한것은… 내가 미국에 사는데 더군다나 미국 며느리인데 무슨 Dad 라는 호칭을 들을려고 하나.. 라고 하겠지만… 아니다… 실지로 들어보면 ..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말 한마디에 천량빚을 갚는다고 하듯이… 그 사건 (?) 뒤로.. 아마도 며느리는 왜 시아버지가 예전보다 더 자기에게 잘 해 주는지… 에 대해 의아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못해준게 아니다… 말은 똑바로 하자)
참 이상하다.
아버님~ 하는것하고 Gap~ 하는 것하고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이야.
큰 아들은 한국인 며느리와 결혼했다.
며느리는 머리가 좋은지 변호사로 취직하고 얼마후에 Partner 자리까지 올라갈 정도로 머리가
좋은 모양이다.
싹싹하고 다정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나서… 뭐 미국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저번에 추수감사절때 모였을 떄 나를 어떻게 부르는가… 하고 신경을 써서 살펴 보았는데 .. 오 마이 갓… “Dad” 라고 했다.
만일 한국인 며느리가 나를 “Gap” 이라고 불렀다면… 떠나가는 막차가 아니라… 운행이 중지된 버스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 며느리가 내 이름을 부른다면.. 뭐 미국애니까 그럴수도 있다.. 라고 그냥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인 며느리가 아무리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시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호칭한다면… 이상오묘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거의 일년에 한두번 정도 보는 닥터가 있다.
거의 20여년 넘게 단골 (?) 이다.
나이가 거의 60대 후반인 그분의 이름은 Richard
Hazen 이다.
나 나름대로는 존경의 의미로 Dr. Hazen 이라고 호칭했는데… 언젠가 Physical 을 하는데 나보고.. ‘You can just call me Richard” 라고 한다.
아마도 20년 넘게 알고 지내는데…
Mr. 라는 호칭에 좀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Hey Richard~ 라고 부른 다음부턴.. 진짜로 더욱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래서 미국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어 이름을 마구마구 부르는가.. 라고 생각도
해 보지만 ㅎㅎㅎ … 아니다.. 며느리에겐 아버님~ 소리를 들어야 친근감이 느껴진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우리 둘째 아들이 (미국인) 장인을 부를때 과연 어떻게 부르느냐는 것이다.
혹시 이녀석이 그래도 한국인 이기에 Dad 라고 부를까 아니면… 미국화되어 Don 이라고 부를까 무척 궁금했는데.. 우리 아들은 장인을 부를때.. 확실하게 ‘Hey Don!’ 이라고 불렀다.
Don 이라고 부르니까 사돈영감은 장단을 맞춰서..
Hey Paul, what’s up? 한다.
그러면서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보니까 … 뭐 그런대로 자연스러워 보이긴 한다.
내가 괜히 민감한 것인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이런 현상이 한국인들에게만 국한된
감정인가 하여 확인도 해 볼겸 직장에서 장가간 아들딸들을 가진 동료 몇명에게 넌즛이 물어 보았다.
대부분 (Dad 로 안 불리고 이름으로 불리는것에
대해) It’s OK하는데… “다”
OK 라고 말한 건 아니다.
그 중 한두명은… Dad 로 불리기를 원하는 듯하다.
깊은 이유까지는 물어 보지 않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쨋든 내 생각은.. 서로가 거리감이 있을땐 (가족관계가 아닌) 이름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두 남녀가 생판 모를 때 연애를 시작하면 … 갑돌씨.. 갑순씨.. 라고 이름을 불러준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가까와 지고 감정이 생기면 … ‘자기’ 나 ‘오빠’ 를 비롯한 갖가지 남살스런
명칭을 쓰기 시작한다.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Honey, Sweetie, Darling,
Sugar, Baby… 등등)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가족이 되었다고 호칭이
바뀐다.
‘여보’ 와 ‘당신’ 이 나오고 ‘우리 신랑’,
‘우리 각시’ 도 나오고… ‘개똥이 엄마’ 와 ‘언년이 아빠’ 도 나오고… 도통 이름은 사라진다.
가까울 수록 이름을 안 부른다는 이론이 맞는지는
몰라도… 존칭 애칭이
엄연히 있는 우리 한국 사람들에겐… 이 호칭이 큰 의미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같은 Father 이라는 말이라도… ‘아빠’ 보다는 ‘아버지’ 라는 단어가 왠지
마음에 든다. ㅎㅎㅎ
10살도 안 된 아들이 나에게 ‘아빠’ 하면 별 생각이 안 들다가도 (너무 흔하게 불리니까?) 그 녀석이 나에게 ‘아버지’ 하면 묘한 감정이 들 것 같다.
역으로 50살 다 되어가는 아들이 ‘아버지’ 라고 안 부르고 나에게 ‘아빠’ 한다면 그것 또한 묘한 느낌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호칭.. 중요하고 귀한 것이다.
돈도 안드는데 불러서 좋고 들어서 좋은 호칭을
사용하자.
하나님~ 하고 부르는 것 보단 ‘아버지’ 라고 부르면 더 가까워지는 것 같지 않은가?
내가 잘 아는 어떤 목사님은… ‘아버지~’ 라고 하지
않고 ‘아바지~’ 라고 하는 걸 몇번 들었는데… 나는 그 말에서 깊은 정감을 느꼈다. ㅎㅎㅎ
마치 골프에서 멋진 샷을 날리면.. 기름기 나는 발음으로 “Nice!” 하는 것 보단 투박스런 시골냄새
풍기며 외치는 “나이 수우~” 라는 말을 듣는게 더 정감을 느끼듯이 말이다.
그런 정감을… (미국) 며느리에게서 (미국) 사위에게서 느껴 보기를 원하는 것이…. 그리도 큰 죄라는 말입니까??
이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