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 대신 왜래어 쓰는것에 대해 지나친 과민반응을 보이는것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단어를 한국어로 localize 하여 써야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북한에선 골키퍼를 ‘문지기’라고 하고, 프리킥을 ‘벌차기’, 마스크를 ‘얼굴가리개’ 라고 한다.
그런데 우서운건 브래지어를 ‘브끄럼가리개’ 라고 하고 팬티를 ‘으뜸부끄럼가리개’라고 한다는데 사실인지 궁금하다. ㅎㅎ
조금 더 예를 들어보자면, 일본식 발음 라면은 ‘꼬부랑국수’, 도넛은 ‘가락지빵’, 뮤지컬은 ‘가무 이야기’, 젤리는 ‘단 묵’, 노크는 ‘손 기 척’, 쥬스는 ‘과일단물’등으로 고쳐서 말 한다고 한다.
언어는 서로간의 교통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일단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전달하고 이해하는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적어도 나 개인적인 생각으론 무슨말을 전달하든 일단 쉽고 빨리 그리고 상황에 가장 맞게 이해되는 표현을 쓰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70년도에 미국 육군대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주한 미군 부대를 방문했다. 갑자기 연설을 하기로 했는데 한국병사들도 같이 참석하는 것이니 당연히 통역이 필요했다.
서둘러 통역을 구하니 적당한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이래저래하여 그중에서 대학 영문과 다니다 입대한 사병 하나가 발견 (?) 되여 통역을 강제로 맡게 되었다.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 영문과는 그냥 문법 배우는 곳이다. 먼 통역을 하겠는가.
어쨋든 미리 전해받은 연설내용을 보면서 떠듬떠듬 통역을 하는데, 갑자기 Feel이 꽃혔던지 그 국방장관이 세상에 미국 조크를 느닷없이 하는게 아닌가?
그 사병이 그 조크를 알아들었을 확률은 내가 7천만불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더 적었을 것이고, 혹 알아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한국말로 통역을 실시간으로 하겠는가?
그래서 그 사병이 그냥 한국말로 “다들 그냥 웃어~” 했단다.
이게 대박이 났다. 미군과 한국병사들이 거의 0.1초 차이도 안나게 동시에 웃어 버린것이다.
나도 설교통역도 해보고 일상통역도 해보았지만, 순차통역 (Sequential Interpretation) 은 그런대로 여유 (?) 가 있다. 그러나 동시통역 (Simultaneous
Interpretation) 은 어렵다. 더군다나 어법순서가 전혀 다른 영어에서 한국어 통역은 일단 뒤를 들어봐야 앞의 번역이 나오는 경우도 많은고로 거의 동시에 통역하기가 불가능한데, 위의 경우는 거의 동시에 웃음이 나왔다는것 자체가 신기에가까운 통역 실력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육군대장이 세상에 이렇게 통역 잘하는 한국사람 처음 봤다며 포상휴가를 보내라고 했다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ㅎㅎ
암튼 말은 말이다. 언어는 언어다. 그리고 언어는 재치와 임기웅변의 기술이다.
그 의미가 전해지고 정치적 외교적으로 한자 한자 면밀하게 번역이 요구되지 않는 한, 일상생활에서의 언어는 교통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골프장에서 내 파트너가 300야드 날릴때 ‘나이스 샷!’ 하는게 그냥 자연스럽고 어감도 좋다. 그걸 굳이 ‘좋은 타격!’ 이래야 되는가?
회사에서 ‘좋은 아침’ 이란 좋은 한국적 표현법도 있지만 그냥 ‘굳 모닝’ 이라고 하면 전쟁이라도 일어 나는가?
미국 사람들은 해결책이 생겼거나 뭐 보여줄게 있으면 “Here it is” 라고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Voila~” 라고 한다. 봘라~ 는 프랑스어다. 그 봘라~라는 어감이 대화상황에 좋기 때문에 그걸 쓰는 것이다. 거기에 먼 애국이 필요하고 개념이 필요한가?
비슷하게 자주 쓰는 말 중에 Deja
Vu (seen before) 라는 말과 C’est
la vie (That’s life) 라는 말도 있다. 이 표현에 적합한 상황이 오면 자연스레 이 표현을 쓰는것 뿐이다. ‘그게 인생이야!’ 라는 뉘앙스보다 ‘쎄 라 비~’ 라는 뉘앙스가 개인적으로 원하는 분위기를 더 잘 표현할것이라 생각하기 떄문에 communication 의 수단으로 쓰는 것이다.
자주 쓰지는 않지만 가끔 미국인들이 ‘how
are you’ 라는 말 대신에 “와 구완~” (‘Wah
Gwaan’)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말은 자메이카 말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말 어감이 매우 독특하다. 절대 비속하지 않다. 마치 독특하고 약간은 레게이 적인 차림의 젊은 사람을 볼때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언어를 어떻게 국지화하여 표현할 수 있겠는가.
요즘 또 음악계에서 시작된 유행어중에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말가운데 ‘스웨그’ (swag) 라는 말도 있다. 이게 사실은 레슬링할때 상대방을 때려 눞혀 놓고 자랑하듯 그 앞에서 오만하게 뽐내며 하는 Taunting (예를 들면 John
Cena 의 ‘You can’t see me’ taunting) 과 비슷한 맥락이다. 다분히 Cool 끼가 내포된 표현이다. 이런걸 어떻게 번역해서 쓰겠는가.. 그래서 가끔은 뜻도 모르고 우습게 너도 나도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스웨그~ 라고 쓰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주로 힙합) 음악계에서는 그 모지라는 2%를 바로 이 스웨그에서 찾으라고 하기도 한다. 음정 박자 모션 감정 다 좋은데 먼가 먼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때, 스웨그를 넣으라고 한다. 그런데 이 스웨그의 정확한 언어상의 의 미를 모르는 젊은 애들도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 안다. 이 상황이라면 굳이 스웨그를 한국말로 번역하여 예를 들면 ‘개쩔탱’ 좀 넣어봐… 뭐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인가? 그냥 스웨그 좀 넣아봐… 이정도면 된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욕먹을 생각하고 한마디 더.
나는 가끔 ‘앗싸리~’라는 일본말을 사용한다. 그 어감이 그 상황에 딱 맞기 때문이다. 강조도 되고. 내가 매국노라서 일본어 쓰는것이 아니다. 그런데 미국말은 아이스크림이니 나이스니 굳모닝이니 러브샸이니 쓰면서 왜 일본말 단어 가끔 쓰면 안되는 것인지.
민족적인 악감정 때문인가?
나 개인으로선 나의 그무엇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게 일본말이든 중국말이든 북한말이든 쓸것이다. 어떤 틀 (예를 들면 꼭 한국어를 써야된다) 안에서 부족한 표현을 하느니 더 명쾌한 표현을 가진 왜래어를 쓰는게 낫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어떤 큰 의미를 거기다 부여하는것은 아니고 그냥 대화소통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쓰겠다는 것이다.
우스개 소리지만, 나는 고상하게 ‘팬티’ 하는것 보다 ‘사리마다’ 라고 하는게 왜 그리도 정겨운지. ㅎㅎ 그 친구 성질 있네 하는것 보단 그친구 곤조있네 하는게 앗싸리한 표현이다. ㅎㅎ
예전에 인기끌었던 TV 드라마 <야인시대> 에서 ‘두목’ 하고 부르는것 보단 ‘오야봉’ 이라고 부르는게 훨씬 리얼감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한국말 한국말이라면 .. 그러면 다음 한국말 중 당신은 몇개나 그 정확한 뜻을 알고 있는가?
졸맛탱, 사이다, 고나리자, 노잼, 입덕…
다 한국말이다.
한국말도 변한다.
내 생각엔 위에 한국말보단 ‘나이스’, ‘굳모닝’ 같은 왜래어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나만 그런가?
It was my two c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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