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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시간의 나그네들 7 — 갈멜 산: 불과 침묵 사이에서2025-12-27 10:21
작성자 Level 10

CHAPTER 7 — 갈멜 : 불과 침묵 사이에서

바람이 먼저 달라졌다. 뜨겁고, 건조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속으로 모래가 들어오는 듯한 느낌.

철수는 눈을 뜨자마자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전쟁터도, 궁전도 아니었다. 이곳은 척박하고 굶주린 땅이었다.

비가 온다.”
그가 중얼거렸다.

동일이 성경을 펼쳤다. 페이지는 이미 열려 있었다.
아합 시대에 엘리야라 하는 선지자가 이르되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엘리야.”
동일이 숨을 삼켰다.
이스라엘 역사상가장 불같은 선지자.”

철수는 SIMON 다시 확인했다. 화면은 흔들리며 하나의 지점을 찍고 있었다.

TARGET: ELIJAH
LOCATION: ISRAEL — DROUGHT PERIOD

순간, 멀리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울음 사이로, 철수는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홍해에서도, 엘라 골짜기에서도 스쳤던
차갑고, 눅진한그림자.

그림자는 까마귀보다 먼저 움직였다. 불길한 예감이 아니라, 의도를 가진 존재의 발걸음처럼. 철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들렸다. 아주 낮게.

굶주림은 사람을 믿음에서 떼어낸다.
배고픔은 경배를 바꾼다.’

동일이 철수의 표정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왔네…”
철수는 대답 대신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그릿 시냇가 근처에서 처음으로 엘리야를 보았다.

마른 체구, 햇볕에 그을린 얼굴, 그러나 눈빛만큼은 살아 있는 불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분이…”
동일이 낮게 말했다.
비를 멈추게 장본인.”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렇게 외로워 보이지?”

엘리야는 선지자였다. 능력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히 혼자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여호와여이제는 끝입니까.”

말에 동일의 심장이 움찔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걸었는데, 남은 메마른 땅과 하나뿐입니다.”

철수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내면이 찔리는 것을 느꼈다. 성과는 있었는데관계는 사라진 느낌. 능력은 있는데위로는 없는 상태. 엘리야는 이미 붕괴 직전이었다.

그때였다.
엘리야의 , 바위 그림자 사이로 검은 기운이 얇게 번졌다. 마치 연기 같았고, 마치 사람의 형상 같았다가, 다시 바람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속에서, 엘리야의 귀가 아니라 마음을 겨냥한 속삭임이 스며들었다.

봐라. 너는 혼자다.
네가 불을 불러도, 사람은 바뀐다.
네가 싸워도, 이세벨은 웃는다.’

엘리야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떨림은 공포가 아니라지친 자의 절망이었다.

동일이 이를 악물었다.
철수야저건…”
철수가 낮게 대답했다.
알아. 놈이야.”

철수는 SIMON 잠깐 켰다. 지도 같은 화면에이상 신호 잡혔다가 사라졌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휘감는 패턴 같은 .

철수는 중얼거렸다.
이번엔칼이 아니라 굶주림으로 오네.”

 

시간은 흘렀고, 장면은 갈멜산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 아합,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거짓 선지자 850. 하늘은 기묘할 정도로 푸르고 조용했다. 엘리야는 홀로 있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마음을 품고 있겠느냐!”

그의 외침은 전체를 울렸다.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

백성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철수는 침묵이 가장 무서운 소리라는 느꼈다. 믿지도, 버리지도 않는 상태. 그게 제일 위험한 거지. 그리고 철수는 보았다.

사람들 사이, 얼굴과 얼굴 사이로 검은 기운이 실처럼 얽혀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의 뒤에 붙었다가, 다른 누군가의 귓가로 옮겨 붙었다가, 아합의 어깨 위에서 앉았다일어나는 것처럼.

검은 추적자는 군중을 죽이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이것이었다.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
침묵하게 하는 .’
가만히 있게 하는 .’

침묵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진리를 선택하기보다 편한 쪽으로 미끄러지게 되어 있었다.

엘리야는 제안을 했다.

각자 제단을 쌓고 불을 부르자.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비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철수는 바알 선지자들 쪽에서 검은 기운이 짙어지는 느꼈다.

검은 추적자는 이번에는 그들에게능력 주지 않았다. 대신흥분광기 줬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군중의 마음을 빼앗고, 그리고 마지막에는허무 남기게 만드는 방식.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이 나섰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그들은 제단 주위를 뛰고, 소리 지르고, 그러다 안되니까 칼로 몸을 그었다. 피가 흘렀다. 광기 같은 . 절규.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은 무심했다. 엘리야는 광경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크게 불러라. 너희 신이 혹시 잠들었나 보다.”

말은 조롱이었지만, 속에는 절박함도 섞여 있었다. 제발이번엔 하나님이 응답해 주셔야 한다. 철수는 엘리야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보았다.

확신과 두려움은 같이 오는구나. 검은 추적자는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봐라. 떤다.
불이 오면 너는 끝이다.
너는 선지자가 아니라 광대가 된다.’

철수는 주먹을 쥐었다. 동일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짧게 기도했다.
주님이건 싸움이 아니라영혼의 전쟁입니다.”

 

이제 엘리야의 차례였다. 그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쌓았다.
열두 이스라엘 열두 지파.

그리고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물을 가져와라.”

지금?”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가뭄에?”

.”
엘리야가 말했다.

물이 제단과 나무와 도랑을 가득 채웠다.

동일은 숨을 삼켰다.
이건퇴로를 없애는 행동이야.
일종의 배수진이지.. 자신감의 표현이자 절박함의 위장이지…”

철수도 이해했다.
불이 내려오면 완전히 끝이라는 뜻이지.”

엘리야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순간, 철수와 동일은 엘리야 바로 뒤에 있었다. 엘리야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호와여이번만큼은 인생을 걸겠습니다.”

기도에는 자신감보다 두려움이 많았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면 나는 미친 사람이 된다.

바로 그때, 검은 추적자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꺼냈다. “의심 아니고공포 아니었다.
기억이었다.

엘리야의 머릿속으로 스치는 장면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등을 돌리던 순간들,
아합의 비웃음, 이세벨의 웃음, 홀로 남았던 밤들.

그리고 끝에 박히는 문장.

너는 결국 버려진다.’

엘리야의 목이 잠깐 메었다. 기도가 박자 끊길 뻔했다.

순간, 동일이 거의 본능처럼 낮게 말했다. 엘리야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영혼을 향해 닿을 정도로.

선지자님끊기지 마세요. 기도는 증명이 아니라붙드는 겁니다.”

철수도 숨을 삼키며, 손을 모아 가슴 앞에서 잡았다.
주님불을 보여주십시오.
검은 정죄를 산에서 꺾어주십시오.”

엘리야가 외쳤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 이스라엘 중에서 주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순간 하늘이 갈라졌다. 불이 내려왔다. 번개가 아니라, 삼키는 .

제단을 태우고,
물을 핥아버리고,
돌까지 녹였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엎드렸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갈멜산 전체가 전율했다.

철수는 불길 속에서 어떤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처음 번개를 맞았을 때와비슷해.

동일은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주님이건 능력이 아니라존재 자체군요.”

그리고 철수는 보았다. 불이 내려오는 순간, 군중 사이를 누비던 검은 실들이 끊어지듯 흩어졌다.

검은 추적자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물러났다가 다시 기회를 노리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앞에서, 그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며칠 ,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갈멜산의 영광 뒤에 남은 것은 허무와 공포였다.

주님이제 그만 죽게 주십시오.”

그는 울었다.

나는나만 남았습니다.”

말에 동일은 이상 참지 못하고 엘리야 곁에 다가갔다.

선지자님.”

엘리야는 놀라 눈을 떴다.

너희는누구냐.”

동일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신을 도우러 시간의 나그네들입니다.”

엘리야는 피식 웃었다.
나그네?  그래나도 나그네지.”

철수는 조용히 엘리야 옆에 앉았다.

선지자님, 불은 내려왔지만당신 마음엔 아직 비가 같습니다.”

엘리야의 눈이 흔들렸다.
“…
그렇다.”

그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싸웠지만, 사람들까지 바뀔 거라 믿었다.
그런데여전히 이세벨은 살아 있고, 나는 도망자다.”

그때, 로뎀나무 그늘이 잠깐 깊어졌다.”

철수는 안다. 검은 추적자가 다시 붙었다.

이번에는 엘리야를 죽이는 칼이 아니라, 엘리야의 마음을 마르게 하는 침묵으로.

봐라. 불은 잠깐이다.
사람은 바뀐다.
너는 지쳤고, 끝났다.’

동일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님은 항상 즉각적인 성공보다 사람을 먼저 다루십니다.”

동일은 그저 성경에 씌여있는 내용을 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엘리야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나를 이렇게 쓰셨나.”

순간 침묵이 흘렀다.

바람도, 불도, 지진도 아니었다. 아주 작은 세미한 음성.

엘리야야.”

부름에 엘리야의 어깨가 무너졌다.

네가 혼자가 아니다.”

동일은 목사 안수 받던 . 기도중에 자기의 이름을 부르시던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해 냈다.

동일아!”

이름을 부르시던 하나님. 검은 추적자는 장면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을 맞닥뜨린다.

하나님이능력으로가 아니라관계 사람을 붙드시는 순간.

정죄는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정죄는 라고만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름을 부른다.

엘리야야.”
동일아.”
철수야.”

순간, 로뎀나무 그늘 속에 붙어 있던 검은 기운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찢겨나가듯 물러났다.

 

엘리야는 다시 일어섰다. 그는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걸을 수는 있었다.

철수는 마지막으로 엘리야를 바라보았다.

불을 부른 사람. 그러나 침묵에서 회복된 사람.

선지자님.”

엘리야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의 이야기는 능력보다 고독을 통해 빛날 겁니다.”

엘리야는 아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철수와 동일을 삼켰다. 갈멜산의 연기와 로뎀나무의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불보다 깊은, 침묵의 하나님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공기 중에 이상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고, 정체불명의 책은 또다시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SIMON 푸른 색으로 변하며 커다란 지명을 띄웠다.

LOCATION: MEDIA
TARGET: CYRUS THE GREAT — BIRTH

동일이 숨을 삼켰다.

고레스…? 이사야가 예언한 페르시아의 ?”

철수도 표정을 굳혔다.

이건단순한 전쟁 이야기가 아니잖아. 세계사를 뒤흔드는 왕이잖아.”

동일이 차분한 어조로 중얼거린다.

격변하는 군웅활거의 전쟁터리디아, 메데, 바빌론, 페르시아
제국들이 서로 어르렁 대는 시대 곳으로가는 거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빛이 사람을 삼켰다. 순간, 철수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불과 침묵이 남긴 자리 저편, 아무도 없는 공기 속에서 검은 추적자의 기운이 아주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번 라운드는 졌다.

그리고 철수는 처음으로 검은 존재를 두려움이 아니라 경계로 바라볼 있었다.

이번엔…”
철수가 낮게 말했다.
불로 졌으니, 다음엔다른 걸로 오겠지.”

동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린 이제 압니다. 그가 아무리 꼬아도결과를 바꾸는 분은 그가 아니란 .”

빛이 완전히 닫히며 사람은 역사와 역사 사이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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