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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시간의 나그네들 10 — 고속도로: 번개는 멈추고, 길은 시작된다2025-12-27 10:23
작성자 Level 10

CHAPTER 10 — 고속도로: 번개는 멈추고, 길은 시작된다

먼저 들려온 것은 엔진 소리였다. 그리고 와이퍼가 빗물을 쓸어내는 소리.

철수는 눈을 떴다. 앞유리 너머로 고속도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번져, 마치 위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왔어.”

그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울음 뒤에 남는 목소리처럼. 좌석에서 정동일이 숨을 들이켰다. 그도 천천히 눈을 떴고, 마치 세기를 다녀온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했다.

“…철수야. 지금 시야?”

철수는 계기판을 봤다.  10 21
시계는 그들이 번개를 맞기 직전과 거의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하지.”
철수가 낮게 말했다.
우린수천 년을 다녀온 같은데.”

동일은 잠깐 입술을 달싹이다가, 기어이 말했다.

시간은그분 손에 있잖아.”

둘은 아무 없이 잠깐 창밖만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확히 현실의 비였다. 갈멜 산에서 기다리던 , 골고다 위로 내려오지 않던 ,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철수의 가방 안쪽에서 익숙한 진동이 울렸다.

SIMON.  철수는 손을 넣어 그것을 꺼냈다. 전원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화면이 켜졌다. 푸른 빛이 아니라, 아주 잔잔한 빛이었다. 그리고 화면 한가운데, 그동안 수없이 보던 표시가 떴다.

TARGET:

잠시 깜빡이더니, 글자가 천천히 바뀌었다.

TARGET: NONE

철수의 목이 말랐다.

“…타겟이 없어.”

동일이 고개를 들었다.

끝났다는 뜻인가?”

그러자 화면 아래에, 처음 보는 문장이 떠올랐다.

MISSION STATUS: COMPLETE
NEW MODE: WITNESS

철수는 문장을 읽고도 한참 말을 했다.

증인…”

동일이 작은 목소리로 따라 읽었다.

우리는이제사건을 조력하는 사람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을 증언하는 사람이 거야.”

철수는 SIMON 손을 떨며 웃었다.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했다.

그럼우리가 지금까지 뛰어다닌 이유가
결국 뭔가를 고치는 아니라보게 하시려는 거였네.”

동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홍해도, 여리고도, 삼손도, 다윗도결국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잖아.”

동일은 박자 멈추더니, 목이 메인 다시 말했다.

“…십자가.”

철수는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에 다시 장면이 떠올랐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리고, 그분이 이루었다하시던 순간. 순간이 아직도그들의 가슴속에서 끝나지 않은 진동처럼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 차의 라디오가 갑자기,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 지직 하고 잡음이 섞이며 켜졌다. 잡음 사이로 낮고, 서늘한 웃음 같은 소리가 스칠 지나갔다.

“…….”

정확히는 말이 아니었다. 메시지도 아니었다. 그러나 둘은 동시에 느꼈다. 나타나려는 .

철수야…”
동일이 숨을 삼켰다.

철수도 눈을 크게 뜨고 앞유리를 바라봤다. 비가 내리는 , 고속도로 갓길. 가로등 빛이 어둡게 꺼지는 구간에서 마치 누군가 있는 듯한, 길고 얇은 그림자가 흔들린 같았다. 철수의 손이 본능적으로 SIMON 쥐었다.

순간, SIMON 화면의 빛이 아주 잠깐 붉게 흔들렸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DO NOT FEAR.
HE HAS NO CLAIM.

동일의 입술이 떨렸다.

권리가없다…”

철수는 숨을 멈췄다. 그림자는 다가오지 않았다. 가로등 아래로 발을 들이려다가, 마치 보이지 않는 앞에서 움찔, 멈추는 것처럼. 감히 나타나지 못하는 . 공기가 서늘해졌는데, 동시에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동일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십자가 아래에서, 이미 끝났구나.”

라디오 잡음은 다시 지직하고 꺼졌다. 마치, 누가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눌러버린 것처럼. 철수는 그제서야 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방금그거…”
그가 말했다. 동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나타나려다 나타났어.”

철수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그럼 우리진짜로 돌아온 거네.”

동일은 대답 대신, 성경책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의 손이 떨렸다.

철수야. 이제야였는지 알겠다.”

?”

동일이 말했다.

우리가 거기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우리가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야.”

철수는 씁쌉한 숨을 내쉬었다.

필요한 사람이라…”

동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평생 계산하고, 설계하고, 통제하던 사람이었잖아.
근데 하나님은 네가 통제 하는 보여주셨어.”

철수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맞아.”

동일이 이어 말했다.

나는 평생 말로 하나님을 전한다고 했는데,
정작 십자가 앞에서 말이 하나도 남지 않았잖아.”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자리에서 남은 설교가 아니라… ‘였어.”

차는 빗길을 조용히 달렸다. 와이퍼가 규칙적으로, 마치 심장 박동처럼 움직였다.

그때였다. 하늘이 갑자기 하얗게 갈라졌다. 번개. 처음 그들이 시간 속으로 떨어지던 바로 .
빛이 다시, 고속도로 위로 내리꽂힐 듯이 번쩍였다. 철수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오는 거야?!”
동일이 외쳤다.

하지만, 이번 번개는 내려오지 않았다. 하늘에서 번쩍였으나, 빛은 마치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덮어버린 중간에서 멈췄다. 정확히, 멈췄다. 그리고 빗소리만 남았다. 철수는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막으신건가.”

동일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끌려가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철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좌표가 없다. 책이 그들을 끌고 가지 않는다. SIMON 타겟을 찍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일아.”

.”

이제 우리가 가야 곳은…”

동일이 조용히 받았다.

우리의 .”

SIMON 화면이 마지막으로 깜빡였다. 줄이 떴다.

YOU ARE NOT WANDERING. YOU ARE BEING SENT.

철수의 눈이 커졌다.

잃어버린 아니라보내심을 받았다.”

동일은 문장을 보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이제우리는 나그네가 아니라, 증인이네.”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는 이상 내리지 않았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천천히 흘렀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결론을 이제야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는 것처럼.

 

다음

정동일은 아내와 마주 앉아 있었다. 말은 길지 않았다. 설명도 필요 없었다.

당신다시 시작하고 싶은 거지?”

아내의 질문에 동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가 아니라바르게.  보이기보다진짜로.”

잠시 침묵이 흐른 , 아내가 말했다.

아버지께서 다시 말씀하셨어요.
대전 외곽 , 작은 교회인데 담임목사를 찾고 있다고.”

동일은 말을 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부담이 아니라안도였다.

거기로 가고 싶어  처음 부르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내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요. 당신이 제일당신다웠던 자리로.”

 

며칠 , 동일은 청빙에 응답했다. 화려하지 않은 교회, 성도 수는 많지 않았고, 주변엔 논과 밭이 펼쳐진 대전 외곽의 작은 마을.

그러나 동일은 알았다. 여기가 도망이 아니라 귀환이라는 것을.

 

철수의 결심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했다.

회의실에서 또다시 오간 말들. “전략적 가치”, “정치적 파급력”, “군사적 균형”. 그는 이상 고개를 끄덕일 없었다.

프로젝트처음 의도와 너무 멀어졌습니다.”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날 , 철수는 이메일 하나를 열었다. 개월 전부터 있던 미국발 Job Offer. 그동안 미뤄 두었던 선택. 그들은 시간 제한없이 철수의 대답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는 짧게 답장을 썼다.

 

Yes, I’ll take your offer.

 

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그는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미국으로 가는 도망은 아니겠지.”
아니, 이건방향이야.”

그의 마음 한편엔 오랫동안 멀리 두었던 신앙이 있었다. 그리고, 헤어져 미국에 남아 있던 아내의 얼굴이 스쳤다. 다시 시작할 있을까. 확신은 없었지만, 기대는 생겼다.

주님이번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이상하게도, 사람이 결심을 굳히자 공기는 잠시 무거워졌다.

밤에 깨어나면,
괜히 내려가는 아냐?”
지금까지 쌓은 아깝지 않아?”

그런 생각들이 속삭이듯 스며들었다.

보일 듯한 그림자. 정체를 드러내지 못하는 기운.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동일은 성경을 덮고 조용히 말했다.

이미 십자가 아래서 결정했어.”

철수는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와서 흔들려도내가 어디서 무너졌는지는 알아.”

순간, 기운은 다가오지 못했다. 마치 선을 넘지 못한 힘없이 흩어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둠의 세력은 느꼈다. 이번엔 틈이 없다는 것을.

 

미국으로 떠나기 일주일 주일.
철수는 이른 아침, 대전 외곽의 작은 교회에 도착했다. 주차장이라 부르기엔 소박한 공간. 멀리 들판이 보였고, 바람에 풀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예배당 문을 열자 낯선데도 묘하게 익숙한 공기가 느껴졌다. 강단에 이는 이전보다 단정했고, 이전보다 훨씬 담담했다.

정동일.

설교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종종 일을 해야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충성은 크기와 상관없다.”

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아멘 속삭였다.
순간, 동일의 시선이 잠깐 철수를 스쳤다.
낯익은 얼굴.
믿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눈빛.
동일의 목소리는 조금 또렷해졌다.

십자가는 우리를 대단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철수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광고 시간. 동일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 예배에 제가 정말 고마운 친구 명이 함께했습니다.”

철수는 순간 당황했다.

신앙의 친구이자, 제가 흔들릴 때마다 조용히 옆에 주던 사람입니다.”

성도들이 따뜻하게 박수를 쳤다.
철수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예배가 끝난 , 사람은 교회 뒤편의 시골길을 걸었다.

앞에는 넓은 들판. 하늘은 높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홍해 기억나?”
그럼. 네가 숫양 위치 보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나.”

둘은 웃었다.

삼손 때는 진짜 무모했지.”
갈멜산은아직도 소름 돋아.”

웃음 속에 눈물이 섞였다.

우리가 진짜 시간여행을 걸까?”
철수가 물었다.

동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가거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끝에서 사람은 멈춰 섰다.

미국으로 간다.”
알아. 거기서도 걸어.”

철수가 손을 내밀었다.

우정은시간도, 거리도 이기네.”

동일이 손을 잡았다.

우린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주님을 섬기는 거야.”

잠시 침묵. 들판 위로 햇빛이 내려앉았다.

축복한다.”
동일이 말했다.
네가 가는 길에서 사람을 살리는 손이 되기를.”

철수가 답했다.
축복한다. 네가 서는 강단마다 사람들이 십자가를 보게 되기를.”

 

철수는 서울로, 동일은 교회로 돌아섰다.

서로 다른 방향.
그러나 같은 아래.
장면이 멀어지며 사람의 뒷모습을 비춘다.


들판 바람, 하늘을 가르는 햇빛.

어딘가에서 나타날 듯한 그림자가 스쳤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진다.

이상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화면이 천천히 어두워지며 마지막 문장이 떠오른다.
그들은 이상 시간의 나그네가 아니었다.

십자가를 자로서, 각자의 길을 걷는 보냄 받은 사람들이었기 떄문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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