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 예루살렘: 십자가 아래에서 무너진 나그네
먼저 코를 찌른 것은 냄새였다. 양 털 냄새, 피 냄새, 향품 냄새, 그리고 땀과 먼지가 뒤섞인 냄새. 철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가, 곧바로 기침을 했다.
“여긴 또…”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남자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인들, 손을 잡힌 아이들. 골목마다 양과 염소가 끌려 다니고, 노점상들은 과일과 빵을 팔고 있었다.
“예루살렘…”
정동일이 숨을 삼키며 말했다.
“유월절이야.”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멀리 성전 방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줄이 보였다. 노랫소리와 기도 소리, 장사꾼들의 외침이 공기를 가득 메웠다.
“여기가… 그 예루살렘인가.”
철수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우리 성경 속에서만 보던… 그 도시.”
그의 손은 이미 주머니를 더듬고 있었다. 익숙한 촉감. 손바닥에 차가운 기계가 닿았다.
SIMON 프로토타입. 전원을 켜자 파란 불빛이 눈앞에서 살아났다. 잠시 수신을 기다리더니, 화면 한가운데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LOCATION: JERUSALEM
TIME: PASSOVER WEEK
그 아래, 작은 글자가 이어졌다.
TARGET: GOLGOTHA
철수의 목이 말랐다.
“…골고다.”
동일이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이제야… 온 거야.”
그런데 그때였다. 화면 하단, 원래 있지 않던 경고창 하나가 짧게 튀어나왔다.
ANOMALY: UNKNOWN HUMAN
— NO THERMAL SIGNATURE / NO HEART-RHYTHM DETECTED
— VISUAL CONFIRMATION REQUIRED
철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동일아… 이건 뭐지. 사람이라면서… 심장 리듬이 없어.”
동일은 성경을 가슴에 안은 채, 작게 숨을 들이켰다.
“…사람의 ‘형태’로 온 거겠지.”
예루살렘 거리는 축제 같았다. 그러나 그 축제의 공기 밑바닥에는 알 수 없는 긴장과 날카로움이 깔려 있었다. 골목을 지나던 어느 순간, 앞쪽에서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다!”
“랍비 예수가 오신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몰렸다. 두 사람도 무의식적으로 그 흐름에 휩쓸렸다. 골목이 열리자,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오는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앞쪽에 서 있는 한 남자. 그는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다. 수수한 겉옷, 먼지가 묻은 샌들. 그러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아이들이 그 곁으로 달려갔고, 어머니들은 멀리서 손을 모으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어떤 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수군거렸다.
“저 분이…”
동일의 목소리가 떨렸다.
“예수님이야.”
철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괴상한 긴장감 속에서, 예수의 눈이 한 번 둘을 향해 멈춰서는 순간이 있었다. 멀리, 사람들 사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두 낯선 남자.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낯선 사람을 본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을 보는 듯한 따뜻함과 깊이가 있었다.
잠깐의 눈 맞춤. 예수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철수의 심장이 뛰었다.
봤나…? 지금 우리를 보신 거, 맞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예수의 시선이 잠깐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의 시선이 어떤 ‘빈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철수도 반사적으로 그 방향을 봤다. 사람들 틈 사이, 햇빛이 닿지 않는 벽그늘. 거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평범한 옷차림.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람의 얼굴은 한 번 보고도 기억이 남지 않는 얼굴이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눈을 떼려 하면 오히려 더 신경 쓰이는 존재.
그 남자가… 철수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웃었다.
“왔네.”
철수의 목이 바짝 말랐다. SIMON 화면이 순간적으로 꺼졌다 켜지더니, 그 남자 주변만 픽셀처럼 깨졌다. 동일이 낮게 말했다.
“철수야… 저기.”
“저 남자… 뭔가 이상하지?”
남자는 군중 속으로 한 발 더 들어오며, 마치 아무렇지 않게 속삭였다.
“너희 둘. 시간 여행자들. 잘도 여기까지 왔다.”
철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남자는 미소를 지은 채, 너무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이제 마지막 장면이야. 여기선… 너희가 뭘 해도 내가 이겨.”
그 말은 협박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예수는 군중 사이를 지나 성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로는 사람들의 환호와 논쟁이 동시에 따라붙었다.
“호산나!”
“저자가 무슨 자격으로!?”
“죽여버려야 해!”
찬양과 저주의 말들이 같은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그 뒤편에서, 그 남자가 조용히 웃었다.
“봐. 입술은 이렇게 쉽게 뒤집혀.”
그날 오후, 두 사람은 성전 뜰 근처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다. 비유와 질문, 바리새인들과의 공방. 예수의 말 한마디마다 누군가는 눈이 열렸고, 누군가는 이를 갈았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옆에서 마음을 찌르는 것 같았다.
동일은 말씀을 들으며 여러 해 동안 설교문을 준비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왜… 이렇게 못 전했지?
예수는 군중을 향해 말씀하던 중 한 번 더 두 사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이 상한 자를 내가 고치러 왔다.”
그 말이 두 사람의 심장 한가운데 박히는 것 같았다. 그때, 군중 한쪽에서 아주 평범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치러 왔다고? 그럼… 오늘 밤엔 스스로를 고칠 수 있을까?”
철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남자였다. 아까 그 그늘의 남자. 그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데도 이상하게 누구도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듯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피해가고 있었다.
남자가 철수의 귀 가까이에 대고 속삭였다.
“겟세마네. 오늘 밤 거기서 ‘선택’이 일어난다.”
동일이 움찔했다.
“너…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냐.”
남자는 웃었다.
“끌고 가?
아니. 난 늘 ‘선택지’만 준다.
너희가 스스로 고르게 하지.”
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동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주의 종… 당신은 설교에서 늘 말했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럼 오늘 밤엔… 진짜로 사랑해 볼래?”
철수의 SIMON이 다시 진동했다.
GETHSEMANE
붉은 점들이 감람산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철수는 이를 악물었다.
“겟세마네….”
남자는 한 걸음 물러서며,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가 봐.
오늘 밤 너희는 ‘자비’가 아니라
‘무력감’을 배우게 될 거야.”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의 소란과 달리 조용했다. 감람나무들 사이로 흙길이 이어지고, 달빛이 희미하게 잎사귀들을 비추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무리가 땅에 엎드려 있었다. 예수와 제자들. 몇 사람은 피곤에 겨워 졸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선 예수가 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동일은 그 기도를 듣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아들도 이 길이 두렵다고 말씀하시는구나. 그러나 이어지는 말이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멀리서 횃불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다…”
철수가 SIMON를 확인하며 말했다. 붉은 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박수 한 번 치는 소리가 났다.
짝.
철수와 동일이 동시에 돌아보자, 그 남자가 나무 그림자 사이에 서 있었다.
“잘 왔네. 여긴 참 아름다운 장소야.
사람이 무너지는 데엔… 이런 정원이 어울리지.”
동일이 이를 악물었다.
“너… 누구냐.”
남자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나?
사람들은 날 여러 이름으로 불러. 하지만 오늘은… ‘정체불명의 나그네’로 해 두자.”
그가 웃었다.
“너희도 나그네잖아.”
철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보조 모듈을 꺼냈다.
“적어도 몇 분이라도….”
섬광이 터졌다. 병사들이 혼란에 빠졌고, 잠시 길이 어지러워졌다. 동일은 그 틈을 타 예수에게 뛰어갔다.
“예수님! 피신시키고 싶습니다. 우리가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예수는 잠시 동일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동일아~”
그 이름이 그분 입에서 나오는 순간, 동일은 몸이 굳어버렸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안다.”
예수는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그러나 이 길만큼은… 너희가 막을 수 없다.”
철수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주님… 그럼 우린 뭘 합니까. 아무것도 못하는데….”
예수의 눈빛은 책망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위로였다.
“함께 있어라.”
그때, 어둠 속 남자가 비웃듯 말했다.
“함께? 하하. 함께 있다가… 무너지는 걸 보겠다는 거군.”
그 후의 시간은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 밤새 벌어진 공회(산헤드린)의 재판. 새벽녘 빌라도의 심문. 군중들의 고함.
“십자가에 못 박으라!”
동일은 견딜 수가 없었다.
“저 사람들이… 어제까지만 해도 병 고쳐달라고 모여들던 사람들이었을 텐데…”
철수는 빌라도의 손 씻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상사들과 자신을 떠올렸다. 책임을 피하려는 손짓.
나는… 내가 만드는 것의 결과를 남 탓할 생각이었겠지.
정오를 향해 갈 즈음,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했다. 그 뒤를 철수와 동일도 따라갔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 아래.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더 가까이. 군중 속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그는 로마 병사 옆에 서서,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병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빨리 세워. 시간이 중요하잖아.”
병사는 그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손놀림은 더 거칠어졌다.
동일이 떨며 말했다.
“…저자가… 병사에게 말하고 있어.”
철수는 SIMON을 켰다. 그 남자 주변만 여전히 ‘공백’이었다. 데이터가 잡히지 않았다. 그 남자가 철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CTO 님… 이번엔 플래시도, 전자파도 소용없어… 흐흐흐”
그가 아주 천천히, 십자가 준비된 자리 쪽으로 걸어갔다.
“여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대거든.”
철수는 이를 악물었다.
“당신이… 사탄인가?.”
남자의 얼굴이 미세하게 찢어지듯 웃었다.
“흐흐흐.”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 위로 눕혔다. 둔탁한 망치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려왔다. 철수는 손을 움켜쥐었다.
나 같으면… 지금 당장 내려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했을 텐데….
예수는 침묵했다. 그리고 십자가가 세워졌다. 사람들이 비웃었다.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바로 그때, 그 남자. 사탄이 군중의 조롱을 지휘하듯 손가락을 튕겼다.
딱.
조롱이 더 커졌다. 사람들의 입술이 더 잔인해졌다. 사탄은 십자가 아래까지 걸어와 예수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하게도 철수와 동일에게만 또렷하게 들렸다.
“보세요. 당신이 사랑한 것들이 당신꼐 돌을 던집니다.”
사탄은 고개를 들어 예수의 얼굴을 확인하듯 바라봤다.
“이젠 내려와 보시지. 당신이 진정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 기도는 군중을 향한 것이었지만, 그 순간 사탄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철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확신이 아니라 당혹감이 지나갔다. 사탄이 이를 갈았다.
“지금도 용서를 말하십니까?”
예수는 사탄을 바라보았다. 딱 한 번. 그 시선은 분노가 아니었다. 정죄도 아니었다. 오히려… 완전히 알고 있다는 침묵이었다.
그 순간 사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수는 아주 낮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여기까지다.”
사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뭐?”
예수는 다시 말했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흔드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잃지 않는다.”
사탄이 웃으려 했다. 그런데 웃음이 끝까지 올라오지 못했다. 마치 목에서 뭔가가 걸려 올라오지 않는 것처럼. 그는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그 한 발이 비틀했다. 정신이 흔들린 사람처럼. 동일이 숨을 삼켰다.
“…철수야. 지금… 저자가…”
사탄은 다시 가까이 오려 했지만 그 순간 예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랑은… 네가 모르는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사탄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쩍’ 하고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났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대신… 존재의 균열 같은 것이 번졌다.
사탄이 미간을 움켜쥐었다. 마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진 사람처럼. 그의 눈빛이 변했다.
분노—공포—그리고… 모욕감.
“닥쳐…”
그는 낮게 내뱉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사탄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제 그는 공격이 아니라 회피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그 어둠은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그 어둠 속에서 사탄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그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봤다.
“…아니… 아직….”
사탄의 입술이 떨렸다. 그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변명하는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이길 수 있는 판이었는데…”
그는 두 손을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경련처럼 떨렸다. 정신이 ‘꺾였다’는 건 이런 거구나. 상처가 아니라,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
그때 예수가 마지막으로 숨을 들이켰다.
“다 이루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사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마치 귀가 찢기는 듯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막히지 않았다. 그 한 문장이 사탄의 머릿속을 통째로 갈라버리는 것 같았다.
“그만…!”
사탄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는 도망쳤다. 아까처럼 그늘 속으로 스며드는 우아한 퇴장이 아니었다. 군중 틈으로 비집고,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분노와 공포가 섞인 얼굴로 비참하게 물러났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잠깐 썩은 냄새 같은 공기가 남았지만 곧 바람에 쓸려 사라졌다.
철수는 무너져 내렸다. 동일도 무릎을 꿇었다. 이제 그들은 ‘현대에서 온 나그네’가 아니었다. 어디서 왔든, 무엇을 했든 지금 이 순간에는 단지 십자가 아래에 엎드린 죄인 둘일 뿐이었다.
철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주님… 저도… 죄인입니다.”
동일도 울먹였다.
“주님…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그 순간, 예수의 시선이 조용히 두 사람 쪽으로 내려왔다. 고통 속에서도 눈빛만큼은 분명했다.
“철수야…”
자기 이름이 십자가 위에서 들려왔다. 철수는 눈을 크게 뜨고 얼어붙듯 굳었다.
“네가 만든 것들, 네가 설계한 것들, 네가 계산한 모든 것들…”
예수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바람을 타고 정확히 귀에 들어왔다.
“그것들이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위험한지 나도 안다.”
예수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너를 부르신 이는 무기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자로 너를 부르셨다.”
철수의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예수의 시선이 동일에게로 옮겨왔다.
“동일아~”
“예… 주님…”
동일은 흐느끼며 대답했다.
“너는 오랫동안 내 말을 전하는 입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네 마음이 먼저 닫혀 있었다.”
예수의 눈빛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이제 네 마음이 열렸다.
그러니 네 입도, 네 삶도, 이제는 내가 사용하겠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더 이상 자존심도, 변명도 없었다. 그저… 살려 달라는 마음만 남았다.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해가 가려지고, 바람이 이상하게 불었다. 땅이 흔들렸다. 멀리 성전에서는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르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고 있었다. 예수가 마지막으로 숨을 들이켰다.
“다 이루었다.”
그는 머리를 숙이며 숨을 거두었다. 그 순간, 철수의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지고, 동시에 다시 만들어졌다. 정동일의 마음에도 한 문장이 선명히 새겨졌다.
내 설교는… 이제 여기서부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고, 백부장 하나가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철수와 동일은 조용히 언덕 아래에서 일어섰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목은 말라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슴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이제…”
철수가 어려운 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지?”
“모르겠다.”
동일이 성경을 가슴에 안으며 말했다.
“근데… 어딜 가든, 이 장면은 놓고 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때, 익숙한 기운이 가방 안에서 일었다. 정체불명의 책이 한 번 더 페이지를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새 페이지 위에 글자가 떠올랐다.
RETURN TO
ORIGINAL TIME / HIGHWAY
골고다 언덕 위, 조용해진 십자가들. 해가 서서히 지고 붉은 빛이 언덕을 물들이고 있었다. 철수와 동일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예수를 올려다보았다.
“주님…”
둘이 거의 동시에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바람이 조용히 불어왔다. 그리고 빛이 둘을 감쌌다. 이번엔 두렵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고, 누가 함께 하시는지도 이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소음, 골고다의 침묵, 사람들의 외침과 울음이 한꺼번에 멀어져 갔다. 대신, 조용한 엔진 소리와 와이퍼가 빗물을 쓸어내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처음 번개를 맞았던 그 고속도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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