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믿음> 이 절대적으로 변치 않는다고… 말 할 수 없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그 자체가 흔들린다면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논 할 자격조차 없을것이다.
말씀을 “Said Word of God” 라는 Logos 와 “Saying Word of
God” 라는Rhema 로 설명할 수 있듯이, 믿음에는 “Saving”
Faith 와 “Living” Faith 가 있다.
일단 관문은 Saving Faith 이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목적지로 향할 수 있다. 이 관문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 어떤 다른 믿음을 가지고 따르든, 우리가 향하는 그 목적지에 갈 방법은 없다.
많은 관문밖의 사람들은 우리가 가는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길들이 허다하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실지로 그말을 듣고 관문 바로 앞에까지 왔던 사람들이 다시 다른 길을 택하여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므로 이 관문을 통과 하는것은 생과 사를 가르는 일 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참 오묘하신 하나님은… 들어 온 이 관문 안에 목적지를 바로 두지 않으시고, 멀찌감치 목적지를 두시고 이 관문을 통과한 성도들에게 이제 “진짜” 여정을 다시 시작하라고 하신다.
이 여정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Living Faith 를 한번 보시겠다는것이다.
기대반 호기심 반으로 이 관문안에 들어 온 사람들 중 일부는 실망과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어쨋든 우리는 이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
이 여정을 계속하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 이 여정의 무리들을 내가 따라만 간다면 나는 목적지인 그곳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여정이 무척 복잡하다. 절대 만만치 않다. 목적지에 대한 확신이 빵빵해도 내가 가는길이 맞는 길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내 생각대로 방황하기도 한다.
가끔 우스개 소리로 “당신에게 누가 총을 들이대고 예수 믿냐? 믿는다고 하면 너를 죽일것이고, 안 믿는다 라고 하면 그냥 살려 줄것이다!” 라고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하겠느냐 라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성경에 베드로라는 제자가 나온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가족과 생업을 버리고 주를 따라 나선 12 제자중의 수제자이다.
그의 이름을 예수님께서 직접 ‘게바’라고 개칭하여 주실 정도로 믿음의 반석이었던 제자이다.
그는 주님의 말 한마디를 믿고 바다위를 걷기도 했고 병든자를 고치는등 이적과 기사의 능력도 보여주었던 믿음과 능력의 수제자였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르게, 그는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했던 ‘확실한’ 증거를 본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잡히시기 직전,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주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까지 했던 그가, 왠일인지 … 어떻게 되었는지 …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을 하였다. 그것도 세번씩이나 저주까지 하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관문 안에 일착으로 당당하게 들어 왔던 베드로가, 여정길에서 실족을 한것이다.
하나님이 일찌감치 선택하여,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골리아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2대 왕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꼬옥 들었던 다윗, 그가 일순간에 밧세바에 빠져 불륜과 살인을 저질렀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관문 안에 모범생으로 들어와 정도만 걷던 그가, 여정길에서 실족을 한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윗과 베드로 보다 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 대답이 NO 라면, 우리 모두는 역시.. 언제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존재들이다.
예수님과 같이 동거동락하던 수제자도 무너졌다.
하나님이 강한 손을 직접 펼치셨던 의인 다윗도 일 순간에 무너졌다.
이거 진짜 큰 일이다. 우리는 바람만 휘익~ 불면 무너지게 되어있다. 게런티다.
그래서 나는 나의 믿음을 믿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Living Faith 의 실족에 대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나의 삶의 모습이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모습이 조건과 상황에 관계없이 동일해야겠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의 다른 모습을 최소화 하는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의 나의 모습과 집안에서의 나의 모습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나를 따라주는 사람을 대할 때와 내가 껄끄럽게 여기는 사람을 대할 때의 나의 모습은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내가 이익을 볼 상황에서의 나의 모습과 내가 손해를 볼 상황에서의 나의 모습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이 차이점이 작으면 작을수록 내가 ‘실족’할 확률은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일단 ‘초심’을 잃지 않으면 ‘실족’할 확률은 줄어든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초심을 회복하고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나의 모습을 변함없이 유지하려는 내가 되기를 노력한다면, 기쁘고 행복한 여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두고 볼 일이지만.. ㅎㅎㅎ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