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ly Correct 라는 말이 있다.
이게 ‘계륵’같이 묘하게 우리들 인생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
“Politically” 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정치 분야에서만 쓰이는 용어인가 할 수 도 있겠으나이 Politically
Correct 라는 말은 세상사 모든 면에 오지랖 넓은 사람처럼… 깊숙하게… 관여되어 있다.
우스개 소리에… 세상엔 세가지 Way 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 Way 는 Right Way 다.
두번째 Way 는 Wrong Way 다.
세번째 Way 가 있다고?
있다!
그것은 … Women’s Way 라고 …. 농담 삼아 얘기들을 한다.
이 말은 세상에 Right or
Wrong 을 초월한 방법이 있으니 … 이것이 바로 “여자들의 방법” 이라며… 어떤 경우에서도 이 방법이 Right Way 를 이긴다는 … 무서운 statement 이다. ㅎㅎㅎ
그런데…
이것 조차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제 4의 옵션이 있으니 .. 그것이 바로 Politically Correct Way 라는 것이다.
우리 같이 평범하고 남의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이 Politically Correct 라는 말에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정도 사회속으로 자신의 활동 영역이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사업이든, 학문이든, 정치이든… 이 Politically
Correct 의 올무에 빠지게 된다.
내 뱉는 한 마디 말.. 그것이 자신의 소신이든, 신념이든, 신앙이든… 이 세상이 레이다 같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그 “그물에 걸리지 않는” 말이 … 바로 Politically Correct 한 말이 된다.
주관적 신념에 의해 반 동성애 발언을 하면 동성애 옹호단체로부터 집단 언론 공격을 받거나 한 걸음 더어 나아가면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다.
좋은 취지라도 여성들의 약한 신체적 능력을 얘기하면 여성인권 단체로 부터 질타를 받는다.
꽤 유명하신 모 목사는 한국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 난 것을 정부의 탓으로 돌린 모 국회위원에게 “무당이냐~” 라는 발언을 했다가 대법원 소송까지 가서 가까스레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공중연설 중 ‘중이 고깃집에 갔다’는 예화를 들었더니 스님들이 들고 일어났다.
인생 세미나 중에 ‘내가 밑바닦 인생 길에서 쓰레기 줍는 알바도 해 보았다’고 말했다가 전국 미화원 연합으로 부터 우리가 쓰레기 인생이냐며 집중 공격 받은 사람도 있다.
이래도 걸려 … 저래도 걸려니까… 먼 말을 할때 .. 걸리는 이것 저것 다 피해서 … 그냥 두리뭉실 애해모호 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매스컴에서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인지… 그렇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 당최 감을 잡을 수 없는 화법이 유행하고 있다.
젊은 커플이 TV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MC 가 여친에게 물었다.
“남친이 어때요?”
“냉~ 좋은것 같아요!”
원.. 좋으면 좋았지… “좋은것 같아요” 가 뭐냐?
“니 이름 뭐니?
“네.. 이갑식인것 같아요~” ㅎㅎㅎ
이갑식이면 이갑식이지… 이갑식인것 같다니… 이게 먼 소리냐?
이게 정상적인 말 투냐?
뭐 직접 관계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대화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
“네 고객님… 그옷은 50만원이 되시겠습니다”
‘옷’ 님에게 존대말을 쓰자는 건가, 아니면 ‘돈’ 님에게 경어를 쓰자는 건가?
웃긴다.
한가지만 더 생각 해 보자.
이 Politically Correct 란 말은 … 자기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공감대> 에서 …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이 말은 내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결정이 ‘옳고’ ‘그름’의 기준 혹은 선택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형성한 어떤 <공감대> 에 자신도 편승하여 Feel Comfortable 하겠다는 … 우유부단내지는 Play Safe 하겠다는 말이다.
교도소에 가서 감방에 들어가면 먼저 오신 분들이 팔장을 끼고 새로 들어 온 나에게 눈을 내려 깔고 쳐다 본다. 긴장감과 불편감 그리고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나도 그들과 함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리고 신입이 들어 오면 어느새 나도 감방동료들 처럼 그들의 위치에서 신입을 째려 본다.
소속감이 주는 위력이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간 사이에 아론이 그 대행이 되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안 내려 오는 모세를 향해 이스라엘 민족들이 불평을 토로했다.
아론은 슬슬 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그들 사이에서 형성된 <공감대> 속에 자신도 속해야만 Politically Correct 할 것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드디어 금송아지를 만들게 하어 그 우상에다가 제사를 드리게 했다.
공감대 참여는 내 마음의 평안을 제공하지만 대부분 ‘타협’을 요구한다. ‘Right or Wrong’ way 라는 판단기준에서 ‘Politically
Correct’ 라는 판단기준으로의 타협이 생기는 것이다.
드디어 Politically Correct 라는 기차를 타게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옳은 것과 그른 것의 정류소에 내릴 필요가 없다… 아니 내리고 싶지 않게 된다.
예전에 한국의 유명하신 목사님께서 모 대학 강단에 초청을 받아 구원에 대해 얘기를 하시던중 지극히 ‘종교 다원론’ 적인 발언을 하셔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나중에 그걸 해명하느라 고생고생한 시건을 기억한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그 기준에 의해 얘기하면 되는데, 청중들 대부분이 불교 신자이고 불교 대학이고 보니, 여기에 Politically
Correct 한 공감대 편승이 작용한 것 같다.
미국의 유명한 레이크우드 쳐치의 조엘 오스틴 목사도 비슷한 경우다.
제이 리노 쑈에 나와서, 구원으로 가는 길이 예수 한 길이냐.. 라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당황하여 (?) 그만 Politically Correct 한 길을 택한다. “Well.. I don’t know.. God is a god
of love…” 어쩌고 저쩌고.. 수백 수천만 여러 종교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으니 .. 제 4의 옵션인 politically
Correct 옵션을 택한 모양이다.
미국 대통령 선서식엔 성경에 손을 얹는다.
많은 공공기관엔 십자가가 걸려 있었고 중고등학교에선 기도와 성경공부와 신앙모임으로 자유롭게 모일 수 있었던게 엊그제 같다.
미 건립 초기때 부터 Christian Spirit 으로 지켜져 왔던…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Women’s way 를 넘어.. 드디어 Politically
Correct way 로 다 바뀌어 지고 있다.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
숫자가 크면 이긴다.
맞고 틀리고 간에… 숫자 많은 쪽이 더 크게 소리 치면 … 그쪽으로 향하는게 요즘 시대의 우리들이다.
정치인들은 당연하고… 소수 이겠지만..목사들도 성도들 눈치 살피고… 공감대가 어디 있는지 살피고… 큰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살펴서 Politically
Correct 한 정치에 편승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이런 Politically Correct 를 선택하는 우리 크리스챤들의 타협적인 그리고 공감대 편승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기독교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이유중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감히 생각 해 본다.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생각과 가치관을 원래 대로… 성경대로… 돌려 놓아야 Christianity 가 Revival하고우리들 모두가 다 영적으로 Sound하게 된다.
스포츠 선수들이 슬럼프가 오면, 아뭇 소리 않고 다시 기본기 훈련으로 돌아 가듯이, 우리 크리스챤들도 이런 저런 소리 말고 … 제 5의 옵션… 제 5의 방법인… Jesus’ Way 로 다시 돌아 가기를 고대한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