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장로 은퇴를 했다.
성도들이 시원섭섭하시죠… 라고 묻는데 솔찍히 섭섭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시원한 것도 딱히 없다.
은퇴식 도중에 목사님께서 울컥하시며 잠시 정적이 흘렀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때가 되면 앞뒤 보지말고 은퇴를 강행해야 한다.
조금만 더 해 볼까 하며, 미지근 거리고 미련을 가지고 붙어 있으면… 그때는 인간의 사적인 <정> 때문에 절대 내려오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게 되는게 … 세상의 모든 직분들이다.
교회일 이라고 해서 다를건 없다.
어쨋든 이모 저모의 유혹 (?)을 물리치고 모든 시무직을 칼로 무우 베듯 베어 버리고 물러났다.
은퇴장로는 하지말고 사역장로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목사가 권유도 하였고, 당회와 시무사역같은 행정적 직분에선 은퇴를 하되 성가대 지휘같은 기능적인 직분은 그냥하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렇게 권유하는 분들의 공통점은 내가 아직도 나이가 그리 늙지는 않았다는 것과, 아직도 써 먹을 만한 (?) 능력이 있고, 그동안 쌓아 온 아까운 연륜과 지위가 있는데… 너무 일찍 은퇴하는게 아니냐는 얘기다.
꼬시는 말이지만 달콤하다. ㅎㅎㅎ
그리고 내 나이 시방 65.. ㅎㅎㅎ Sweet 욱십대인데 .. 그리 늙은 것이 아니라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한번 마음먹은 것은 거의 변치않고 밀고 나가는 내가 그런 말을 들을리는 없다.
솔찍히 나이 때문에 은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체력이 딸리거나 머리 기능이 저하되어 은퇴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회사에서도 젊은이들에게 순발력에서 딸리는건 사실이지만, 관록과 경험으로 충분히 커버를 하며 별 문제없이 근무하고 있는데, Performance 때문에 질책당하고 짤릴 염려가없는 교회생활이야.. ㅎㅎㅎ 나이가 먼 상관이 있겠는가.
회사도 그렇지만 교회직분에 관해서도 나의 주관은 뚜렸하다.
힘없고 기량 떨어지고 눈치 보일 즈음에서 은퇴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Peak 는 아니지만 아직 여력이 남아 있을때, 자진해서 내려오는게 나의 오래전 부터의 은퇴에 대한 소신이다.
한 사람이 교회를 좌지우지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없다.
한 사람 때문에 혹 교회운영에 지장이 있는 교회라면 그게 무슨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약 3년 전 부터 은퇴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조금씩 조금씩 실천 해 왔다.
그 당시 65세 정년은 현 시대적 특성상 적합한 나이가 아니라고 교회내규에서 상향 조절을 하자며 당회 안건이 나왔었지만 번번히 (선임장로라는 나의 의도적인 술책으로 (?)) 미루어 지곤 했다.
그 다음으로 2년 전 부턴 내가 해 오던 기능에서 슬슬 나를 빼는 작업을 시작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힘이 들거나 의욕이 없거나 능력이 없거나 해서 그런것은 전혀 아니다.
나 나름대로의 힘빼기 작전이라고나 할까. ㅎㅎㅎ
주일 찬양팀 인도를 그만 하겠다고 했다.
예배와 경배찬양에 비전이 있다며 신학교에서 예배사 공부까지 한 장로가 주일 찬양인도를 관두겠다고 하니, 처음엔 어떤 시험에 들었나 목사님이 의아해 하신것은 사실이다.
자리가 허전할것 같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부목사님께서 찬양과 경배를 (억지로) 맡으셨는데.. 솔찍히 말해서… 더 은혜롭게 인도를 하시며 한층 더 나은 단계의 세션을 인도 하셨다.
그 다음으로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금요 찬양팀 인도을 관두겠다고 했다.
금요일에는 스타일을 다양하게 해서 Christian topic 의 비디오도 띄우고, 이런 저런 Share할 만한 에피소드도 나누고, 최신 CCM 계통으로 기획 진행을 했었는데… 목사님이 처음엔 막막하셨나 보다.
그런데 이것도 쓸데없는 걱정이다.
나이든 내가 빠지니까 여기 저기 젊은이들이 모여 들어서.. 내가 계획한 대로… 말 그대로 젊은이 찬양팀이 되었다.
주일찬양팀 인도에서 빠지면서.. 허전하지 말라고 가끔 색소폰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드럼으로 찬양세션을 도왔는데, 드럼에서도 빠졌다.
그 대신 내가 눈 여겨 본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된 그러나 드럼실력이 괜찮은 초신자 청년의 부인을 잘 꼬셔서 그 친구를 주일찬양팀 드럼주자로 앉게 했다.
원 세상에… 기회를 주니까 펄펄 날아 다니듯 드럼을 잘 친다.
덕분에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생기고, 그 청년도 이제는 구역과 잘 어울리며 교회에 정착을 한듯 하다.
교회 절기마다 앞에나가서 행사기획하고 진행하던 그 책임을.. 1년전 부터 못한다고 발뼘했다.
목사님이 왜 그러시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이제는 내가 수년전부터 왜 그런 <정> 떼기 (?) 훈련을 했는지 아시는 것 같다.
야외예배에서도 연말 행사에서도 내가 안 나서니까… 모 집사가 게임과 진행을 맡아서 쭈빗쭈빗 하더니만… 이젠 전문가 처럼 하고 있다.
내가 그래도 관록이 있다고 아직까지도 잡고 안 놓고 계속 하였더라면, 어제 은퇴하였는데.. 오늘 부터 당장 그 누구가 그 기능을 담당하겠는가?
통역도 1.5세들 몇명 모아다가 훈련을 시키고 잘한다 잘한다 해가며 투입하였더니.. 이제는 그 집사.. 전문 통역사처럼 기막히게 설교통역을 하고 있다.
1-2년에 한번 정도 하던 예술공연도.. 딱 관두었다.
몇년전 미니영화 <돌아온 탕자> 를 만들고 나서… 심심하다며 성도들이 그리고 목사님이 슬쩍 물어 와도 전혀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다 매꿔져서 청년들이 여기저기서 듣고 배우고 해서 자기들끼리 잘들 하기만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연극하던 분이 나타나서 가끔 Skit 도 훌륭하게 수행한다.
한 사람이 비키니까… 안 보이던 사람들이 나타난다.
똥차가 비끼면 .. 달리고 싶어도 못 달렸던 차들이 여기 저기서 달려 나가기 마련이다.
어제로서 마지막까지 잡고 (?) 있던 성가대 지휘를 마지막으로 놓았다.
시원하냐고?
그렇진 않다.
섭섭하냐고?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 there’s time to walk…
지난 2년 정도는 ..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 나름대로는.. 나 없애기 과정이었다.
모든것을 하루 아침에 갑자기 놓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 다음은 그 다음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다… 라고 무책임하게 … 끝까지 할수 있을때까지 잡고 있는 것은 더더욱 나의 성향에 맞지 않았다.
어제 목사님들과 성가대원들과 함께 마지막 성가대 회식을 했다.
목사님이 농담으로.. 이 장로님 다음주일에 아무 생각없이 성가대 들어가서.. 연습시키는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웃으셨다.
어쨋든 이제 나는 힘 없는 (?) 은퇴장로이다. ㅎㅎㅎ
다음은 내가 어제 주일날 은퇴식에서 한 즉흥 답사를 최대한 기억하여 적어 본 것이다.
“1981년도에 첫 지휘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첫 지휘하며 곡중 테너 솔로를 한 곡이 오늘 제가 마지막으로 지휘하며 부를 곡 <아름답다 저 동산> 입니다.
첫 지휘와 마지막 지휘를 같은 곡으로 하는 셈입니다.
1994년도에 다니던 회사의 전근때문에 켈리포니아에서 콜로라도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26년간 덴버한인장로교회 성가대 지휘를 하며 장로로서 시무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성도들 앞에서 예배순서 담당자로서만 활동을 해 왔습니다.
오늘 장로은퇴를 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이제는 성도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제대로 마음을 집중하고 평안하게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 받으라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물러납니다.
물러나기 전에 여러 성도분들께 한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랑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의 13절에는… 믿음 소망 사랑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교회생활을 지금까지 하면서 느낀 한가지 중요한 요소를 더 넣고 싶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충성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은 충성이라… 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충성은 내가 속해있는 곳이 좋거나 만족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은 내가 섬기는, 내가 보필하는, 내가 동역하는, 나와 교제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잘하고 이익을 줄 때만 하는게 아닙니다.
내가 교회에 만족할 때만 하는것이 충성이 아닙니다.
내가 목사님을 좋아하고 성도들을 좋아할 때만 보이는 것이 충성이 아닙니다.
충성은 초지일관 초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사랑하기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결혼했기에 이제는 사랑하는게 맞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교회가 좋기 때문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에 나왔기 때문에 이 교회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성도님들 마음속에 우리가 다니는 이교회에 대한 불만이나 불평, 이교회성도나 목사님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있다고 하여도, 은퇴하는 이 장로의 마지막 부탁인…. <충성> 이라는 말을 기억하시면서, 한 교회에서 30년 40년 50년 충성봉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물러 나면서 인사를 한번 하고 물러 나겠습니다.
충성!!! ”
충성이라는 구호와 함께 강대상에서 멋지게 경례를 성도들에게 하면서 나는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이제… 성도들과 여유를 가지며 앉아서 예배를 드리며 때론 졸기도 하고 때론 잡담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