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조수미 미주7개도시 투어 콘서트 덴버 공연이 지난 5월 13일 저녁 8시,
덴버가 자랑하는 Boettcher Concert Hall 에서 성황리에 거행 되었읍니다.
얘기를 계속 하기 전에 한가지의 발견과 두가지의 죄를 먼저 고백 하려 합니다.
첫째, 저는 덴버 거주 10년 동안 보지 못했던 그렇게 많은 한인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읍니다.
둘째 , 저는 그날 조수미씨의 음악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죄를 범했읍니다.
세째, 저는 그날 조수미씨와 무대위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오페라를 부르는 황홀한 (?) 공상을 하는 중대한 죄를 저질렀음을 제 아내에게 고백합니다.
아뭏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짙은 오렌지색 의상을 입고 조수미씨가 무대위로 등장하는 순간 모든 청중들의 입에선 <와우~>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 나왔고 그때부터 청중들의 시선은 불멸의 지휘지존인 카라얀이 극찬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신이 내린 소리> 의 주인공 조수미씨에게 고정이 되어 버렸읍니다.
먼저, 무대기획은 심플 했으나 세심한 계획이었음을 엿볼수 있었읍니다.
Cyan, Magenta, Yellow 의 기본 조명은 심리학상 그리고 무대 조명상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각인해주는 칼라로서,
각 씬의 뒷 배경이 이 세 칼라들로 각각 은은하게 채색된 가운데 드디어 공연은 시작 되었읍니다.
무대 한가운데 마치 뒷동산 큰 소나무같이 고고하게 자리잡고 있던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의 첫 음이,
명문 맨하탄 음대를 나와 각종 콩쿠르와 훼스티발을 거쳐 오랫동안 조수미씨와 호흡을 맞추어온 Vincenzo Scalera 씨의 손끝에서 울려 나오는 순간부터 모든 청중들은 그만 숨쉬는 것 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읍니다.
첫곡은 <Adam> 의 Ah vous dirai je, Maman 이었는데, 특히 Cadenza 부분은 실오라기 같은 소리조차 완벽을 요구하는 기계적인 테크닉과 마치 악기인양 고음역과 저음부를 자유자제로 드나 들어야 하는 것으로, 콜로라투라의 달인 조차도 쉽사리 첫곡으로 선택할수 없는, 그런 곡으로 적막을 깬 조수미씨의 Position Statement 에서 저는 강한 카리스마를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감은 마지막 앵콜 곡에서 완결을 보였습니다.
조수미씨는 <Amazing Grace> 를 마이크를 통해 무반주로 노래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도라는 것을 많은 솔로이스트 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수미씨는 완벽한 피치로, 이미 R&B 내지는 Soul 풍으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곡조차 그녀의 기막힌 클라식 창법과 컨템퍼러리 기법을 절묘하게 혼합한 스타일로 청중들의 뇌리에 깊은 조수미적 매력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클라식 전공자들에겐 팝 뮤직은 일종의 금기 사항 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수미씨는 얼마전 <Only Love> 라는 컨템퍼러리 곡들을 수록한 앨범으로 무려 70 만장이나 판매를 기록하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Once upon a dream> 이라는 노래를 Cross-over 창법으로 불렀습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감기 걸린듯한 감미로운 목소리와 아리사 프랭클린의 거칠면서도 깊은 우물 같은 목소리도 아니였지만, 그녀의 매혹적인 목소리는 이미 팝 분야까지 섭렵하는듯 했습니다.
조수미씨의 가곡에 대한 해석은 일반 솔로이스트 들과는 조금 다른 듯 했습니다.다른 장르의 곡들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 가곡은 그 곡이 내재한 향기가 이미 있기에 (예를 들면 슬픈, 힘찬, 애타는 등등) 독창자들은 청중들이 그 향기를 맡을수 있게 의도적으로 그리고 당연히 표현하는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조수미씨는 청중들에게 하얀 도화지와 물감 부러쉬를 쥐어주고 청중들 자신이 그 그림을 그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실은 <동심초> 같이 슬픈 곡인데도 저는 강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고 <꽂구름 속에서> 를 들으면서는 웬지 가벼운 미소가 생기게 되고 <아리 아리랑> 에서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생각나야 함에도 어쩐지 두 연인의 모습이 생각 남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른 오펜 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Doll Song> 은 조수미씨의 또 다른 모습을 볼수 있는 좋은 레파토리 였습니다.
물론 동화 같은 이야기속의 <인형> 이 아리아를 부르는 형태였지만 조수미씨의 바디.렝귀지는 야릇한 메시지로 청중들이 결국 참지 못하고 (참다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지하곤)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액션 가운데서도 호흡이 흔들리지 않고 정교한 콜로라투라 를 구사하는 조수미씨의 능력이 한층 돋보이는 곡이었습니다.
제 1부와 2부 두군데 특별한 연주가 있었습니다. 바이올린 교육의 대부라 일컬어지는 <딜레이> 교수가 격찬했다는 쥴리아드 출신 <오주영> 씨가 성큼 성큼 무대중앙으로 걸어나와 선사한 곡 중 첫곡인 <Carmen Fantasy> 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작곡가 <사라사테> 곡으로서 그 음악적 행보와 리듬의 흐름이 매우 경쾌하고 고저부 음역의 왕래가 빈번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콜로라투라의 칼라를 생각한 조수미씨의 제안으로 선곡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 날 정도로 발랄하고도 생기에 넘친 연주 였습니다.
특히 선율 하나 하나를 음미하듯 휘감기는 듯한 제스쳐를 구사하는 (전통적으로 동양권 연주자들은 문화적 그리고 특히 신체적 이유로 이러한 제스처가 부족하거나 어눌함) 오주영씨의 모습에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부듯한 감정이 솟아오름을 느꼈습니다.
덴버 음악 애호가들의 관람 매너는 무척 좋았습니다.
특히 박수를 아끼지 않고 기립하여 열광하는 모습은 조수미씨를 비롯한 협연자들에게 이곳 덴버 교민들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을 남겨 줄것으로 믿습니다. 옥에 티는 있는법, 가끔 연주도중 빈 자리를 향해 과감하게 돌진하시는 분들, 독창자가 퇴장할시 모습이 출구로 사라짐과 동시에 박수를 그치시는 분들 (일반적으로 독창자들이 퇴장한 후에도 예의상 1분정도 박수는 계속 됨), 앵콜곡이 아직 진행 중인데도 일찍 벗어나려고 슬금슬금 일어나시는 분들… 극소수 였지만 시정 했으면 하는 부분 이었습니다.
콘서트를 마치고 입구근처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입가엔 가득한 미소와 즐거운 인사말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부듯한 감정 그리고 어느새 스며드는 행복감.. 바로 이런 맛이야 말로 우리가 머나먼 조국을 떠나서도 그리고 고달픈 이민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를 지탱하게 해주는 인생의 활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멋진 밤이었습니다.
조수미 파이팅!!
아이 러브 수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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