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대 지휘자 활동을 하다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 스스로에게 하게 됩니다.
성가대 찬양 반주를 피아노로만 국한 할 것인가 아니면 키보드, 기타 그리고 나아가서는 타악기까지 사용할 것인가? 찬양 자체를 합창과 솔로/듀엣등의 Vocal
Expression 으로만 국한 할 것인가 아니면 네레이션및 율동등도 혼합 사용할 것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휘자의 개인적인 선호 스타일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겠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 교회의 전통및 분위기와 특히 담임목사의 찬양에 대한 시각에 달려 있다고 보겠습니다.
즉,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말인데, 통상적인 예를 살펴보면, 교회 당회와 성도들이거북해 하지 않고 컴플레인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선 순전히 지휘자의 스타일에 100% 달려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경건하고 심플한 보컬과 반주만을 고집하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뮤지컬 같은 요소들을 가미함으로서 좀더 폭넓은 찬양을 시도 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성이란 차원에서 보아야 할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다양성을 선호합니다.
원래 찬양 이란 말의 의미는 목소리로 (vocal) 만 하는것을 넘어 여러 형태의 표현 (노래, 연주, 무릅꿇고, 손을 내밀고, 고백하고, 감사하고, 절하고) 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한다면, 성가대의 찬양만이 ‘찬양’ 이 아니라, 밴드들의 연주도 찬양이 될 수 있고 율동 (body worship) 도 찬양이 될 수 있고, 감사하며 경배하는 모든 행동들이 찬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저는 주일 찬양을 할때 여러가지 형태의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경쾌하고 리듬감있는 찬양곡이면 (예를 들면 ‘영광 집에 들어가세’), 젬베이나 기본 드럼을 도입합니다. 한국전통 장단조의 찬양곡이면 (예를 들면 ‘이 기쁜날’)
, 마침 교회에 국악전공한 자매님이 있어 장고를 사용하기도하고 어떨땐 해금도 (예를 들면 ‘사명’), 도입해 보았습니다.
은혜롭고 선율이 아름다운 찬양곡에는 (예를 들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가끔 2-3명의 젊은 자매님들에게 율동 (엄밀히 얘기해서 Sign language) 를 하게 합니다.
또 메시지 전달이 강렬한 찬양곡 (예를 들면 ‘엘리아의 하나님’) 에는, Prelude 로 목소리 굵은 남자 대원에게 엘리아떄의 간략한 도전 상황을 Narration 으로 만들어 주어, 낭독하게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마치 드라마의 일부분같이 역동감을 느끼며 찬양에 깊은 은혜를 느끼는것 같습니다.
저의 이런 시도는 전통적인 성가합창의 형태를 부정하려는게 절대 아닙니다. 절기에 따라 피아노의 심플한 반주로 부르는 (예를 들면 ‘세상 죄 지고가는 어린 양을 보라’ by 김두완) 찬양곡은 이것 저것 군두더기없이 연주하는것이 훨씬 더 피워풀한 은혜가 됩니다.
객관적으로 얘기할때, 성도들은 새로운 형태 그리고 새로운 느낌의 찬양곡을 은근히 기대하는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얼마전에 부른 찬양곡을 이번주에도 다시 부른다면 감동은 많이 줄어들을 수도 있고, 이것이 계속된다면 성가대 찬양에 대한 성도들의 관심과 집중과 은혜 역시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새로운 레파토리를 골라야 하는 것 못지 않게 새로운 다양성을 추구하는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휘자는 정해진 권한및 자유 범위내에서 다양한 해석과 표현 그리고 형태를 통한 찬양 연주를 창출해 낼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시도하는것은 성도들 뿐만 아니라, 성가대원 자신들에게도 도전과 기대와 만족을 줌으로서 성가대의 질과 역량을 계속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귀중한 그리고 확실한 방법임을 알아야 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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