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칼럼

Page Title Facebook 커뮤니티에 연재된 스티브의 페이스북 칼럼입니다. 생활속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목Facebook 칼럼(190) – 나의 7가지 별 것 아닌 그러나 조금은 흥미로운 에피소드2024-07-02 13:01
작성자 Level 10

2020년도도 벌써 반이 지나가는 6월이다.

 

새해가 시작되어 웜업을 하려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닥쳐서 어영부영 몇개월이 지나가고 이제 다시 후반기 6개월을 그럭저럭 보내면 2020년도도 지나가게 된다.

 

금년엔 몇가지 근사한 계획과 짜릿한 꿈도 있었는데 … 다음 해로 미루어야 겠다.

 

요즘 3개월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일과 시작  기도를 한다.

  마다 마음속에 생기는 생각이 …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라는 감사의 마음이다.

 

지금까지의  일생을 돌아보면  누구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과연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밖에 없다.

 내용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유학 초창기때 부터  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있었는데 중에서도 몇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오늘 .. 잠시 시간을 내어 .. 재미삼아 … 많은 에피소드중 … <Gap’s Best 7 Episodes>   한번 적어 볼까 한다.

 ㅎㅎㅎ

Here we go~

 

1)    촌놈들과 맥도날드

1977 초에 미국에 왔다.

미국행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친구도 시카고로 (누나댁이민가는 녀석이기에 친해져서 통성명을 하고도착하여 짐도 풀고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 전화통화를 하고드디어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도통 지리를 모르니 어디서 만날지 엄두가 안나는데 친구가 “우리  근처에 노랗고 빨간 아치모양을  햄버거집에 있는데…  ... 라고 하는  같다” 라는 말에… “거기 우리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있는 곳이야… 와우.. 우리 가까히 살고 있었네… 당장 만나자!” 하며 성질 급한 한국인 아니랄까바 그날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는 둘다  기진맥진하여 2시간  씩씩 거리며 집으로 돌아 와서 전화통에다 “~ 2시간 이나 기다렸는데.. 뭐하냐?” 라고  같이 성질을 냈던 에피소드가 있다.

 

ㅎㅎㅎ 그때만 해도 아마 시카고 지역에 맥도날드가 수십개는 되었을 것인데한국 촌놈들이 그게 체인점인지 먼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ㅎㅎ

 

2)    Dog Food & Minestrone Soup

미국생활 몇일이 되어서 이제 혼자 걸어서 근처 그로서리까지 가는 능력 (?)  생겼을때.. 어느 마트에 가보니.. 한국에서  좋아야 먹던  맛있던 고기 통조림이 선반에 가득 보였다.

몇개 사가지고 아프트에 돌아와서 근사하게 김치와 함께 볶아 먹었더니 맛이 기똥차다.

 

저녁때 일하고 돌아온 누나 (나는 그때 누님댁에 얹혀 살았다에게 이거 먹으라고 했더니.. 잠시 통조림 뚜껑을살펴 보더니만 “이거 개가 먹는 통조림아니냐”  기겁을 한다.

 세상에… 내가  당시  통조림이 있다는   처음 들었다.

 

한국에선 사람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미국처럼 개님과 고양이님을 위해 통조림이 따로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했겠는가ㅎㅎ

 

 한번은 누구 집에 (누나따라 나간 교회 교인집이다가서 먹은  채소 스프가 너무나  있어서 그걸 사먹으려고 마트에 갔다.

그때 슬쩍 레이블을 보고 기억했는데 Minestrone 이라고 쓰여 있었던  같았다.

 

그래서 거기 직원에게… 혀를 굴리며  “웨어 리스 마인 스트론 스푸?’ 했다.

갸우뚱 갸우뚱 하면서 모른다고 했다.

그러다가 잠시 연구 (?)  하더니만  “미네스트로니 …!” 라며 찾아주었다.

Minestrone  잘났다고 Mine Strone 으로  맘대로 띄어쓰기를 해서 마인 스트론 이라고 발음을  것이다ㅎㅎㅎ

 

3)    동양인 처음 보는 백인들

드디어 시카고에서의 생활을 접고 컴퓨터로 전공을 바꾸며 켈리포니아로 이주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던 그해 여름경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고물차를 끌고 혼자 장거리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차가 똥차라서 쉬고 쉬고 하여 2-3일째인가 (어딘지도 모르는 깡촌이다)  하도 배가 고파 어느 작은 마을이 나오길래 혹시 먹을게 있나 둘러 보다가 조그마한 식당이 보여서 그곳에 들어 갔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푸짐하게  터지게 근사한 음식을 “공짜 얻어먹고 나왔다.

 

거기 주인이 자기 일생 60여년 동안 동양인을 face to Face 로는 처음 봤다면 .. 기념이라며… 저녁 일체를 공짜로  것이다.

대신  먹는 내내… 5-6명의 손님들이 나를 둘러 싸서 … 서울이 일본의 도시냐한국에는 비행기가 있냐?   기차 같은 것도 있냐햄버거 있냐등등 질문공세를 감수해야만 했다.

There ain’t no free lunch!

 

 

4)    성실(?) 취직

대학 3학년때 … 남들은 졸업 후에도 조금은 (?)노력 해야 잡는 다는 Job  나는 3학년 말쯤 정식 Hire  되었다.

내막은 이렇다.

 

저녁 수업이 하나 있었다.   당시 나는 낮에는 수업듣고 오후엔 컴퓨터.랩에서 LA (Lab Assistant)   하고저녁 기숙사로 돌아가선 RA (Residence Assistant)  기숙사  하고, 12시까지 공부하고, 1시부터 아침 6시까지 Seven-Eleven 에서 밤일을 하던 때다.

(그러면 언제 자냐아침에  3-4시간 그리고 밤일 가지 전에 잠시 자곤 했다.)

 

 야간 수업의 강사가  당시 국방부 프로젝트을 담당하던  휴즈 항공사라는 회사의 개발부 메니져였는데나를 몇번 유심히  모양이다.

 

왜냐하면성적도 Top 이었지만 일단 먼저 와서 책을 읽고 있고자기를 대신해 LA  컴퓨터 작업 보조를 하고몇번 아마도 내가 수업끝나고 강의실 정리하는 것도  모양이고결정적인 것은.. 어느날 수업 (Analogue Computing)  위해 기기를 끙끙대며 운반하던  강사 (Jack Parker  기억한다에게  동양인 사나이가 뛰어 가서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힌국에선 보통 있는 당연한 일이지만) … 수고를  ..  날과   주인공인 나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내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3학년 말에 덜컥 휴즈항공사에  application 냈다.

 

Hiring Manager 였던 Jack  … 졸업생도 아닌 녀석이 겁도 없이 지원서를 내어서 그냥 휴지통에 집어 넣으려다… 잠시 스쳐 보이는  얼굴 모습….  기억한 모양이다.  (그래서 일단 얼굴이  생기고 보아야 한다.. ㅎㅎㅎ)

 

그래서… 취직이 되어서 ..  많은 친구들 그리고 선배들의 부러움을 샀다는 에피소드다.

 

5)    제프와의 대화

몇년이 지난  나는  당시 꿈에 그리던 최고의 컴퓨터 회사인 IBM  취직하게 된다.

그리하여  배우고 좋은 팀에 들어가 근무하던중나와 친한 제프라는 흑인 친구와 가끔 통신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80년도 초반스마트폰이 없고… 다들 유선전화를 사용하였는데우리 IBM  Brick 라는 별명을 가진 Wireless Device  있었는데일종의 Voice/text 통화및  정보 접근과 공유가 가능했다.

 

제프와 내가 문자로 장난을 하던 그녀석이 나보고 너희는  눈이 그리 작냐.. 하길래 나도 너희는  입술이  그리 두껍냐.. 라는 문자를 보냈다.

 

이게 Security  걸렸다.  (무작위로 아무때나 통신을 모니터/스캔하는데 마침  없게 (?)  문자가 바로 그때  시간에 걸린 것이다)

 

다음날 내가 HR 디렉터 오피스로 소환 되었다.

 당시도 인종차별 발언은 실직의 이유가 당연히 되었다.

 

디렉터가 자초지종을 묻다가제프랑 얘기하고 Fire 시킬건지 결정하겠다며 자리에  있으라고 한다.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기도뿐  것이 없었다.

(제프에게의 연락은 이미 차단되어 있었다)

 

결과는.. 나는 무사했다.

그놈의 제프놈이 … 우린 그냥 장난으로  것이다.. 라고 나를 옹호해 주었고… 직장 생활기록부 (?)  나타난 나의 성실(?)  능력 (?)  증거가 되어.. 없었던 일로 하기로  것이다.

 

물론  주말에 제프를 데리고 한인타운 음식점에 가서  터지게 먹이긴 했지만.  어쨋든 땡큐!

 

 

6)    연기(?)  강도들 퇴치

휴즈항공사 근무시절.

어느날  끝나고 곧장 LA 다운타운 근처의 모임에 가야했다.

한인타운 인근에서 Freeway  내려 gas  넣고 있는데저쪽에서 흑인 2-3명이 몽둥이를 들고 걸어 오면서 사람들을 협박하며 돈과 금품을 갈취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때 정장에  글라스를 쓰고 (국방부 secret project  하던 중이라 벳지에 security clearance  표시하는 빨간 줄이 두개 그어져 있었다… 이게 멀리서 보면 FBI  수사관 뱃지 같긴하다.. ㅎㅎ있었는데순간의 기지를 발휘하여… 다가오는 그들을 보며 오른 손을 주머니에 넣고 (마치 총을 잡고 있는듯)  양복상의를 약간 여러서 뱃지를 보이게 했다.

그러면서 .. Hey brother, undercover operation is in progress… if you jeopardize my sting operation, I’ll bust you guys.. so I’ll count 10, you better run now! 하며 뻥을 쳤다.

 

결과는?

몽둥이도 버리고 세녀석들이 혼비백산하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후다닥 그곳을 벗어 났다는.. 에피소드다.

때로는 뻥도 필요한데… 그것도 젊었을 때나 가능하다.  지금은?? ㅎㅎㅎ

 

7)    대사건들 한꺼번에 (실직발목티켓)

마지막 에프소드인데… 수년  내가 북가주에서 직장땜에 기러기 생활을 하던 .

내가 하던 프로젝트가 끝나고 자연스레 Layoff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매달 콜로라도로 가족상봉 (?)  오가면서 다시 콜로라도로 돌아 가려고 이미 그곳에 있는 회사에인터뷰를  마치고 시작 date  협상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기분좋게 회사를 관두고 집이 있는 콜로라도로 돌아 왔다.

와서  회사에 연락을 하는데 나를 Hire  중역들이 전화를  받는다.

 

나중에 알아보니… ㅎㅎ 내가 콜로라도로 돌아오던  1-2주간에다른  회사 (Hasbro)  회사를 인수해 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회사의 중역진들이  회사 메니지먼트를 전부 물갈이  버린 것이다.

 

연락이 되어 설명을  보았는데…  진전이 없었다.  물론 소송을 하면 가능성도 있었겠으나.. 시간과 노력이 .. Not worth it.

 

결국 포기하는 시건이 벌어진 것이다. (덕분에  동안 실컷 놀다가 다시 취직을 했지만).

 

그런데 같은 해에… 나는 불과 한두달 사이에 경찰에 걸려서 티켓을 3번이나 떼이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교회 체육대화중 오른발목이 부러지는 시건이  벌어졌다.

 

 해는 나에겐 생각하기도 싫은  였다. (누구는 그해가 나에겐 아홉수라고 했는데…  소리인지)

 

이상은 간략히 얘기해  기억나는  7가지 에피소드다.

 

역시 결론은… 나는 감사하다… 이다.

지금 나는 건강하고 나의 식구들도 건강하고… 아이들도 다들 좋은 직장 잡고 가정도 가졌고.. 너무나 감사하다.

 

당시에는 황당하고 어렵고 힘든 사건들도…  인간이 감당할 것들이고  그것을 거쳐나온 후에는 다른 시각으로 되돌아   있는 것들이다.

 

다시 한번 결론은… 감사하다는 것이다.

 

이제…  놈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진다면… 조금  활기찬 생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이대로 가라면  가라는 법은 없다.. ㅎㅎㅎ

 

그러나 빨리  상황이 지나가서 .. 훨훨 돌아다녔으면 좋겠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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