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한국에서 신병 훈련소에서 4달 동안 훈련 받을 때의 일이다. 다 알겠지만 훈련소에서는 먼일을 했다하면 무조건 선착순이다. 그날 훈련이 끝났는데 추가 작업이 있거나 주말에 재수없이 특별사역에 병사들을 차출할때면 어김없이 선착순으로 목표물을 돌아오게 해서 지원자(?)를 고르는 것이다. 먼저 돌아온 선두그룹 병사들은 대게 이런 작업에서 열외를 시켜준다. 그런데 아까부터 중얼중얼 거리던 박이병이 털썩 주저 앉으며 내뱉는다. “야 씨… 나는 한참 처진 놈들이 기를 쓰고 따라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짜피 선두 그룹 놈들은 열외를 한다고 치자… 그런데 뒤에 처진 놈들이 기를 쓰고 달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주위에서 또 하나가 거든다. “맞다… 군대는 요령아이가. 일단 선두대열에서 벗어나면.. 슬슬 눈치 보면서 적당히 뛰는 시늉만하고 에너지를 아껴야지… 열라게 뛰어봤자 얻는게 없다아이가!”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충남 공주에서 왔다는 송충이 같은 눈썹에다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쓴 정이병이 땀을 닦으며 한마디 하셨다. “그건 모르는거여어~ 열라게 뛰어가는 흉내라도 내서 선두 그룹에 가까이는 가야.. 교관들이 열외시켜주는 기회라도 생기는거여~ 비실비실 근처에도 못가면 아예 그런 기회조차도 안생긴단 말이여어~” 가만히 듣고 보니 그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Try 를 안하면 아예 Chance 가 생기지도 않는다? 영국의 유명한 부흥사요, 작가요, 방송캐스터인,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J. John 이라는 목사가 있다. 이 목사는 유모러스한 예화를 바탕으로 설득력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교로 유명한 분이다. 얼마전 이 John 목사의 설교를 들었는데, 머릿속에 남아있는 예화 하나가 있어 조금 각색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어느날 어느교회의 목사님이 주일날 예배를 은혜롭게 마치고, 저녁 무렵 자기의 집으로 돌아와 가족끼리 모처럼 앞뜰에서 갈비를 구어 먹으며 좋은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한마리가 다람쥐를 쫓아 앞뜰 나무를 타고 올라가다가 그만 미끄러져 떨어지면서 밑에 있던 나무가지 사이에 박혀버렸다. 아이들이 야단 났다고 소란을 피우자 아버지 목사가 나섰다. “얘들아 걱정마라… 아빠가 해결해 줄께!” 그런데 그 나뭇가지는 묘하게 위치해 있어서 나무를 타고 직접 올라 갈 수도 없었고 장대를 이용해 끌어 내기도 어려웠고 더군다나 사닥다리를 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던 그 목사가 번뜩이는 아이이더가 생각 났는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내가 트럭을 뒤로 대고 끈을 던져 나뭇가지에 걸쳐 묶은 다음 내 트럭에 단단히 매고 살살 앞으로 나가면 저 가지가 밑으로 내려 올거야. 그때 자기가 고양이를 사뿐히 내려 놓으면 돼… 알겠지?” 하며 곁에 있던 부인에게 말했다. 자 그리하여 작전은 시작되었고.. 순조롭게 나무가지가 조금씩 조금씩 내려오던 순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트럭에 묶었던 끈이 풀리며 한참 내려왔던 나뭇가지가 마치 새총 고무가 튕겨나가듯 피용~ 하며 솟구쳐 올라간 것이다. 물론… 당연히… 그 고양이와 함께. 그 순간 이후 모든 식구들이 뿔뿔히 흩어져 그 고양이를 찾았으나 결국 그 고양이의 행방은 묘연하게 되어 버렸다. C’est la vie~ 인생은 그런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 목사와 가족들은 위안을 삼아야만 했다. 그 다음주 주말경. 목사는 구역심방을 나섰다. 그 날은 바로 자기 집 맞은 편에 사시는 90세 할머니 권사님 댁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도어벨을 딩동~ 누루니 할머니 권사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목사를 맞이했다. 할머니의 인도로 거실쪽으로 향하는데, 왠 고양이 한마리가 눈에 띈다. 가만히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고양이인데 한번더 눈을 찡그리며 보니 분명히 일주일 전에 자기 집에서 날아갔던 바로 그 고양이인게 분명했다. 그러나 분위기상 그 사실을 그대로 얘기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 자초지종을 한번 들어 보기 위해 할머니에게 물었다. “권사님… 저 고양이는 안 보던 고양이인데…” 그러자 권사님이 목사님의 팔을 강제로 끌다시피 하면서 거실의 소파에 목사를 앉친다. “You won’t believe this, pastor!” 그러면서 권사님의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목사님 아시죠… 제가 얼마나 고양이를 가지려고 노력했는지. 우리 딸이 절대로 안된다! 고양이를 키우면 밥도 줘야 하고 놀아 줘야 하고 병원에도 데리고 가야하고… 절대 안돼 엄마!!! 하면서 반대를 했죠!” 물 한모금을 꼴깍 마시며 권사님의 간증(?) 은 계속 되었다. ‘그래서… 혼자 외로운데 개는 키울 수 없고 잘난 고양이 한마리 키울라는데 우리 딸의 반대가 저렇게 심해서… 고민하다가… 목사님이 항상 설교에서 말씀하시는… 기도하는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얼마전부터 드디어 기도를 시작하지 않았겠어요 목사님?” 이번에는 목사가 꼴깍하며 물 한모금을 마셨다. “기도 시작한지 딱 3주째 되던 그날 … 그러니까 정확히 얘기하면 지난주 주일날 저녁 6시경… “ 목사가 속으로 민첩하게 계산하여 보니 그 날 그 시각이 정확히 그 고양이가 하늘로 사라져버린 바로 그 시간과 일치했다. 권사님의 간증이 계속 되었다. “저는 그날 갑자기 뒷뜰에서 기도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뒷뜰 의자에 앉아서 열심히 기도를 했죠. 이쁜 고양이를 한마리 주세요. 이쁜 고양이를 한마리 주세요~ 하며 손을 올리고 기도를 마치고 손을 내리는데… 갑자기 어떤 물체가 저의 품속으로 날아 오는게 아니예요. 깜짝 놀라서 보니 그건 저의 기도의 응답…하나님의 선물인.. 이쁜 고양이였어요. 할렐루야~ 오 감사합니다. 주님!” 목사는 입맛만 쩝쩝 다시며… 다음과 같은 축복기도를 했다고 … 아니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할렐루야 권사님… 권사님의 기도가 드디어 응답받으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권사님 할렐루야~” 이 에피소드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기도를 하면 응답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기도를 안 하면 우연한 일이 연관되지 않을 확률이 클 수 있지만, 기도를 하면 우연한 일이라도 나와 연관될 확률이 높아진다. 만일 할머니가 뒷뜰에서 기도를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시각에 뒷뜰에 떨어진 고양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그 고양이는 담장을 넘어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확률이 클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기에 고양이가 할머니 품속으로 우연히 떨어질 수 있게 되었다… 라는 뭐 조금은 억지스런 설명일 수도 있겠지만… 결과론적으로 수긍이 갈 수 있는 비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군대 훈련시절… 선착순 비유와 비슷하지 않는가. 아예 안뛰어 (No Pray) 버리면 열외의 기회 (Chance) 조차 없었을테지만, 그래도 끝까지 최선 (Pray)을 다 하면, 혹시 교관의 자비로 추가열외 (Chance) 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 라는 말이다. John 목사는 Pray 와 Chance 를 그렇게 설명했다. 한걸음만 더 나아가, 내가 생각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기도 응답의 방법은 다양하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길을 통해서 응답이 올 수도 있고, 하나님의 섭리로 우연한 사건이 필연의 응답같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가 없으면 그 우연의 사건 조차 내 인생과 연결점이 없게 된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동서남북에서 여러 형태로 우연같이 혹은 계산된 계획같이 응답이 오게 되는 것이다. 우연이든 계획이든 응답은 응답인 것이다. 그리고 기도는 그 응답의 가장 확률 높은 통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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