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하도 여기저기서 범이 내려온다고 하길래 도대체 무슨 호랑이가 내려 오나 하고 알아봤더니 <범 내려온다> 는 노래 얘기다.
개인적으로 국악에 대해 거부 반응은 없지만 내가 선호하는 장르는 아닌지라 별 관심없이 넘겼는데 이놈의 범이 자꾸 내려오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요즘 TV 를 켜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게 트롯트다.
경연대회와 오디션 프로그램하면 거의 다 클라식이나 팝.발라드.락등이 주류였는데, 이젠 트롯트가 대세인 모양이다.
너무 트롯트가 창궐 (?) 하니까 식상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장르마다 특유의 <창법> 과 <기교>가 있다.
클라식은 원래 많은 개성을… 정해진 창법과 기교로 통일하는게 목표이다.
다시 말해서 너나 내가 가진 개인적 음악적 특성을 확실하게 원칙이 세워진 성악의 Template 에 맞추는 작업이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성악은 Cookie Cutter 를 가지고 그 속에 나를 맞추는 작업이다.
내가 가진 음색 기교를 Full 로 개발하기 이전에 나의 모든 것을 죽이고 (?) 성악의 원칙에 나를 찍어 내는 작업을 선결해야 한다.
그래서 성악 오디션은 간단하다.
성악 원칙에 따라 점수를 주면된다.
내 음색이 아무리 좋아도 기본인 박자 음정은 당연지사…. 세밀한 표현법도 호흡법도 기교도 정해진 성악 원칙대로 해야 인정받고 선택받을 수 있다.
그 다음이 내 개인이 가진 음색이나 기교가 된다.
예를들면 예전에 (마치 염소처럼) 극도의 비브라토를 사용하던 가수가 있었다.
어린시절 남미로 이주해가서 멕시코 남미가요제에서 2위까지 한 <임병수> 라는 사람인데 한국으로 돌아와 〈사랑이란 말은 너무너무 흔해〉 로 히트를 친 가수이다.
이 사람이 성악 오디션에 나가면 단박에 떨어질 판이다.
개성이고 기교고 어쩌고를 떠나 .. 엄격한 성악원칙에 그의 특이한 창법은 근본적으로 미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가요계는 전혀 다르다.
개개인을 거대한 원칙에 맞추는 클라식과는 달리… 일반가요계는 그 반대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말은 개개인이 음악적 기본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 전혀 아니다.
일반 가요에서는… 기계처럼 정확한 기본기 보다는 개성표출이 더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임병수처럼 에에에에~ 하는 염소소리의 비브라토가 오히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매에에엥~ 하는 김건모의 코 맹맹이 소리가 그의 매력이 되었다.
가끔 불안한 음정을 자랑하는 (?) 전인권의 그 쇳소리 고음이 무한 매력으로 받아들여지는게 일반가요이다.
대중가수들을 보라.. 그들이 대학에서 성악가 처럼 음악을 전공한 다음 가수가 되었는가?
조용필은 (믿거나 말거나) 득음을 하기 위해 목에서 진짜 피가 나오도록 성대 찢는 연습을 하고 난 다음 재탄생(?) 한 성대를 가지고 특급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소위 잘 나가는 보컬코치 중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가수들도 많다.
남에게 이렇게 저렇게하라고 보컬 코치를 하다가.. 나도… 하고 오디션에 나왔다.
당연히 음정박자 정확하고 기교 완벽하다.
그런데 마치 서울 시내 돌아다니는 여자들 얼굴이 (성형수술땜에) 동일하게 보이듯이 … 이 사람에겐 뭐 특징이나 개성이 없다.
결과는뻔하다.
가요계에선 아무리 백그라운드가 좋고 기본기가 완벽해도…. 개성이 없으면 성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기본기는 얼마든지 훈련시키면 되기에 .. 특이한.. 이상한 (?) .. 남들과 다른 원목을 찾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런데 <국악> 은 베일에 감추어진 세계이다.
우리 나라 전통 음악이니 … 한국인인 내가 더 잘 알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다.
국악보다는 팝송이 더 편하고 더 많이 알고 있는 내 자신이다.
그런데 국악은… 묘한 매력이 있다.
정말 묘한 매력이다.
일단 … 우습게 들리겠지만… 국악은 .. 내 목소리를 <늙게> 만들어야 한다. ㅎㅎㅎ
좀 순화된 말로 하자면 … 내 목소리를 <성숙>하게… <익게> 만들어야 한다.
젊은 사람이 판소리나 창을 부를 때 눈을 감고 들으면 부르는 사람이 다 늙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드러진… 간드러진… 특유의 비브라토나 고저완급의 기교나 창법이 신기로울 뿐이다.
R&B 의 스케일 훑는듯한 현란한 에드립 테크닉?
웃기는 소리다…. <창> 에 비하면 초라하다.
성악에서의 낮은 음과 높은 음 사이의 다이내믹한 변환?
<판소리> 의 속사포 고음 저음 처리를 들어보면 부끄러울 수가 있다.
일반가요를 무반주로 들어 보라.
당연히 음정과 호흡의 불안을 부끄러울 정도로 느낄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들어본 바에 의하면 판소리 하는 분이 이런 불안을 가진채 완창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판소리는 그저 한명의 고수 (장고) 장단만 가지고 진행된다.
외국인들은 우리 나라 판소리를 들으면 정말 신비롭다고 생각한다.
가끔 우연히 흘러 나오는 <창>을 듣노라면 오래 전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눈 앞에서 그려지는듯한 환상을 경험할 때도 있다.
이제… 범에 대해 얘기 해 볼 때다.
이놈의 범 범 하길래… 대체 왜 범이 내려왔을까 알아 보았다.
이 노래의 원전은 판소리 《수궁가》다.
바다 밑 세상 <수궁> 에서 그리 높지 않은 ‘주부’ 벼슬을 하고 있던 자라가 몸이 아픈 용왕의 치료제를 구하러 육지로 나왔다가 토끼를 꼬여 수궁으로 데려간다는 《수궁가》의 줄거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미션 과정중에, 토끼를 찾으러 절벽을 오르다가 온 힘을 다 쓰고만 별주부 (자라)가 마침내 절벽에 올라 저 멀리에 있는 토끼를 발견했겠다.
기쁨에 찬 자라가 “토선생!”하고 부른다는 게 그만 힘이 빠져 “호선생!” 하고 발음이 새버렸단다.
마침 그때 호랑이(범)가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자라 한 마리가 보인다.
몸에 좋다는 자라로 만든 용봉탕을 먹고 싶은 마음에 호랑이는 신이 나 한달음에 산을 내달린다.
이에 겁에 질려 바닥에 바짝 엎드린채 어쩔 줄 몰라하는 자라의 위기상황이 그려진게 이 <수궁가> 의 한 장면인데, 그 중에서 발췌되어 <범 내려온다> 의 가사로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이 퓨전국악을 부른 그룹의 이름은 <이날치> 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날치와 댄스 그룹인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의의 협연인 셈이다.
<이날치>라는 이름이 매우 신선하여 혹 이태리식 이름인가 (Inalchi?) 하여 찾아 보았더니 … ㅎㅎ 조선시대 유명한 판소리 명창 (혹은 광대) 의 이름이라고 한다.
주역인 이날치 밴드는 내가 보기엔 “푸젼” 국악 밴드인 셈이다.
우리나라 민요를 ‘록’으로 재해석하여 부르고 있다.
가만히 보니… 그리 흔한 … 건반/피아노.. 전기기타… 브라스 멤버가 없는 단순하게 드럼과 베이스기타로만 밴드구성을 하고 싱어들은 국악전공한 4-5명 그리고 엽기적인 그러나 묘한 춤을 추는 춤꾼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몇명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특히 이 <범 내려온다> 는 고전과 현대 음악의 조합으로 지루하지 않게.. 식상하지 않게.. 거부감도 없이…너무나 멋지게 표현한 곡으로 느껴진다.
나도 들어 보았는데… 지루한 <창>이 아니다.
춤도 막춤이 아니라.. 치밀한 커리오그라피를 통한 묘한 춤이다.
아뭏든 .. 여러분들도 이 범을 만나 볼 필요가 있다.
범 내려 온단다… 가 보자!!!
https://youtu.be/SmTRaSg2f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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