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살려 러시아 방문기를 간략히 써 보기로 한다.
2008년 가을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보스톤에 있는 온라인 게임 회사에 근무 중 이었다.
유럽쪽에선 이미 인기순위 톱에 올라가 있었던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온라인 게임을 러시아에서 클베/오베 (Closed
Beta와 Open
Beta) 테스트를 끝내고 이제 출시 (launching) 를 하기 위해 나를 포함한 관련 팀원 4명이 어느 늦 가을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위스까지 델타로 가고 스위스에서 러시아 항공을 갈아타고 모스코바로 향했다.
비행중 한가지 느낀것은 미국인과 러시아인은 생김새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스위스까지는 미국인 스튜어디스가 그리고 스위스부턴 러시아인 스튜어디스가 서비스를 했는데, 러시아 스튜어디스들은 얼굴 자체가 훨씬 작았고 피부가 하옜고 얼굴 골격이 조금은 각진듯한 느낌이었다.
러시아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대에 섰는데, 정말 영화에서나 느꼈던 그 팽팽한 긴장감과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입국심사원은 무표정으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내 여권과 내 얼굴을, 거짓말 안 보테고, 약 10번 정도 번갈아 훑어 보더니만, 굵직한 목소리로 ‘잇티~’ (가~) 라고 한다.
이럴때 써 먹으려고 준비해 두었던 ‘스빠시보~’를 군기가 빠짝든 목소리로 외쳤더니 그제서야 그 인간이 씨익~ 하며 웃는다.
‘도모데도보’ (?) 국제공항은 말이 국제공항인데 솔찍히 미국이나 특히 인천 공항에 비교하기 여려울 정도로 열약했다. 화장실은 더럽고, 출.입국 수속 게이트는 좁고 탑승게이트 찾기가 어렵게 설게된듯 보였다.
픽업나온 협력회사 직원들의 차를 나누어 타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일단 도로가 무지 넓다. 도심이 아니여서 그런지 좀 황량한 느낌.
약 한시간 넘게 달렸나, 도시가 보인다. 밤에 보는 모스코바 시는 특이한 느낌이다. 길가에 네온싸인이 좀 많은것 같다. 건물들이 모두묵직하게 느껴진다. 큰 건물들이 많다. 사람들도 많이 걸어 다닌다.
모두들 첫 방문인지라 안전성을 생각해서 이왕이면 미국 호텔 체인으로 가자고 하여, ‘티르스카야’ (?) 에 있는 Marriot Hotel 에 들었다. 놀라지 말라. 일박 숙박료가 $600 여불에다 인터넷 하루 사용료가 $100 이 넘었다. ㅎㅎ 내 돈 아니니까 거기서 머물었지 내가 돈을 내야 했다면 아마도 노숙 (?) 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경험(?) 을 얻어서, 얼마후 제 2차 러시아 방문시에는 아예 회사인근 타운에 아파트를 한달 빌렸는데, 그 비용이 (약 10일간 체류) 호텔 stay 비용의 10분의 1도 안되었다.
거리마다 식당마다 그리고 오피스 안에서도 모두들.. 다.. 죄다… 담배를 피워댄다. 지독하게 줄 담배를 피워댄다.
협력회사 빌딩 안쪽 입구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경비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거짓말 아니다) 기관단총으로 보이는 무기를 어깨에 매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 작업환경은, 여기처럼 큰 공간에 cubicle 이나 office 를 만들어 근무하는게 아니라, 작은 방들이 다닥 다닥 붙어 있었고 (모텔 처럼) 그 방에 적게는 4명 많게는 10명정도가 작은 개인 테이블을 두고 근무하였다.
사람들은 ... 모두가… 친절했다. 그리고 순박했다. 무표정 같아도 씨익하며 잘 웃었다. 어떻게 보면 속세에 물이 안들은듯 느껴졌다. 협력회사 직원들은 사소한 커피값부터 점심.저녁 모두를 후다닥 대신 지불했다. 예전에 한국에 출장갔었을때, 완벽하게 알파와 오메가로 모든것(?)을 책임 져 주는 한국 협력회사 사람들과는 감히 비교가 안되겠지만 그래도 무척 감동스럽게 우리들을 대우해 주었다. ㅎㅎ
지하철을 타려고 에스켈레이타를 타고 아래로 내려 가는데 (거짓말 아니다) 나중에 시간계산을 해 보니 4분이 넘게내려 간다. 그런데 다 내려가니 장관이다. 이건 지하철이 아니라 어느 박물관이나 성당에 온 느낌이다. 온통 천정과 벽 구조물들이 화려하고 벽화는 물론 조각물도 예술 그 자체였다.
전철은 좁고 더러웠다. 자주 정차했고 자주 흔들렸다. 다들 나만 (동양인) 쳐다 보는듯 했다.
쇼핑몰에 가보면 대부분 5-6층 정도인데, 넓이는 별로 안 넓고 아담하게 만들어 놓았다. 6층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래층들이 다 보일 정도로 설계가 잘 되어있다. 숍들이 화려했고, 젊은 여자들이 많았다. 동양인들이 많이보였는데, 왠 러시아말을 그리도 유창하게 하는지… 나중에 알고보니 전부다 거기서 태어난 (조선족?) 3-4세 들이다.
가는곳 마다 일본 레스토랑 (특히 스시) 이 많이 보였고 생각보다는 달리 체식주의자 들도 많았다. 한국 식당은 별로 없는것 같았다. 맥도날드도 군데 군데 보였다.
차를 타고 가는데 경찰에게 (진짜로) 질질 끌려가는 사람, 두두려 맞는 사람도 보였고, 여럿이 대낮에 술병으로 나발부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나이든 여자들은 대부분 뚱뚱했지만, 젊은 여자들은 정말 날씬하고 이뻤다.
가끔 이 친구들이 술 먹으로 (회식) 퇴근후 나갔는데, 마지막날은 밤샘 술 파티 한다고 해서, 나는 빠진다 했더니, 호텔까지 택시 태워준단다.
밖에 나와서 택시가 어디있나 보는데 이친구가 지나가는 개인 승용차를 그냥 잡아 세운다. 대한민국 6-70년대에 많이 보던 장면이다. 그러더니 흥정을 하며 미리 운전사에게 돈까지 주고 나보고 타란다. 내가 거기서 근 10일 있었으니 호텔가는길을 내가 빤히 아는데, 이놈이 딴길로 간다. 거의 밤 8시 쯤이다.
어떡할까. 이놈이 날 으쓱한 곳으로 끌고가서 강도짓 하고 줘 팰라고 하나보다 생각하고 이런 저런 생각 다 했다. 모스코바까지 와서 나의 마지막 인생을 마감하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뛰어 내릴까 이놈 목을 잡아 꺾을까 등등 방법론을 모색하는데, 결국 싱겁게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교통이 막히는 시간이니 안 막히는 샛길로 갔단다. 역시 사람은 편견을 가지고 의심하면 안된다.
주말을 이용해 러시아 친구들이 모스코바 여러군데를 관광시켜 주었다. 인상적인것 중에 하나가, 붉은광장으로 향하는 도심의 가장 번화한 건물 위 큰 전광판에 ‘SAMSUNG’ 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는것을 보았다. 그리고 왜 그리 현대차나 기아차들이 많은지…
Red Square 에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보초) 근위병들이 있었는데 그 혹독한 추위에 어떻게 몇시간 서있나 살펴 보았더니, 뒷쪽으로 조그마한 부스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난로같은 것을 켜 놓은것을 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을 가니 성당 (성 바실리?) 들이 있었는데, 어느곳은 지붕 전체가 금으로 칠해져 있었다. 유명한 모스코바 크렘린 박물관도 가봤는데 한 섹션엔 온통 금관과 칼을 비롯한 금으로 만들어진 유품들이 가득했다. 특이한건, 입구에서 안내자가 우리에게 작은 워키토키같은 것을 주었는데, 어느 특정 전시 spot 에 가면 그것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영어로)
wifi 커넥션을 통해 나오는 것이었다. 지금은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10년전 일이다.
툐요일에 나랑 친했던 러시아 친구 (프로젝트 메네저) 가 러시아 클럽을 구경 시켜 준다고 해서 우루루 따라갔다. 예상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일단 클럽 자체가 크고, 춤추는 무대가 넓다. 그런데 그곳 클럽은 (예외였을 수도 있지만) 큰 저택같은 기분?리빙룸들이 여러군데 있어서 소파에 앉아서 얘기하고 먹고 중앙에 위치한 무대에 나가서 춤추고 하는..그런 분위기였다.
진짜 술들을 고래같이 부어대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꽤 사교적인것 같다. 일부러 찾아와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음료수도 건네고 한다.
회사인근에 있는 마트에 혼자 간적이 있다. 오렌지 쥬스 한병 골라 나와서 계산 하는데 주인인듯한 둥둥한 아줌마가 영어를 전혀 못한다. 손짓 발짓 다 했는데 피차간에 서로 뭘 말하는지 모른다. 거스름돈 포기하고 나오려는데, 나를 잡아 세우더니 내 손에다 아까 낸돈을 타악~ 올려 놓더니만 손짓으로 그냥 가라고 한다.
아줌마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러시아다 다 똑같다. 갑자기 없던 정이 생긴다.
하루는 길을 가는데, Street Sign 같은 것이 보이는데 CTOP 라는 거리 이름이 너무 여러군데 자주 보여, 러시아 친구에게 너희들은 거리 이름이 같은 곳이 여러군데 있어서 어떻게 혼동 안하고 구별하냐 했더니.. 껄껄 웃으며 CTOP 은거리 이름이 아니고,
STOP 싸인이란다. ㅎㅎ
여러가지 음식을 먹어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에치포치마크’ 라는 미국으로
치자면 일종의 (삼각) 파이와 ‘다게스탄’ 캐밥이 환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이나 러시아나 (미국은 아니다) 공중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청소부 아줌마가 서스럼없이 활보하는 장면은 어찌나 똑같고 정겨운지 (?) 몰랐다.
러시아에서의 10일간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정이 많은듯했고 때가 안 묻은듯 소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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