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이라는게 있다. 기억을 잃는다는 말이다.
나는 결코 전문가는 아니지만 망각을 이해 하려면 기억이라는게 무엇인지 부터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아마도 플라톤의 이론에 근거하여) 기억이라는것을 우리가 쇠못을 가지고 담벼락에 흔적을 남기는것에 비유한다. 깊고 강하게 흔적을 남길수록 오래 그리고 생생하게 기억해 낸다는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하고 깊게 흔적을 내어도 시간이 갈수록 그 흔적이 사라지듯 우리의 기억도 언젠가는 소멸된다는 얘기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의견에 동의 하지 않는다. “소멸”된 기억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다시 기억되는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워진 그 흔적이 다시 생겼다는 것인가?
또 다른 이론은, 컴퓨터를 전공한 나에겐,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다. 즉, 모든 기억은 뇌속의 ‘창고’에 모조리 저장이 된다. 기억이라는것은 그 저장된 ‘정보’를 재생해 내는 작업이다. 이 이론에선 한번 저장된 정보/기억은 영원히 존재하게 되지만 그 저장할때의 ‘방법’과 재생할때의 ‘기능상태’에 따라 기억 접근이 쉽고 영원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력이 좋다는 사람들을 연구해 보면, 실지로 기억력이 좋은것 보다는 기억저장과 기억재생 시스템이 남들과는 다른것을 볼수가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이사집센터는 전화번호를 2424 (이사이사)로, 치과는 2828 (이빨이빨)로, 쇼핑 포털은 4989 (사고팔고)로, 택배업체는 8282 (빨리빨리) 등으로 기막히게 활용하는것을 본다. 이런 기억저장 방법을 할용하면 쉽게 그 기억을 재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도 예전에 사람들이 꽤 기억력이 좋다고 (?) 말들 했는데, 내가 실지로 기억력이 뛰어난게 아니라 어떤것들을 외울때 (기억을 저장할때) 위에서 말한 기억을 저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잘 활용했을 뿐이다.
나는 ‘연상법’을 이용했는데, 두가지만 예를 들어 본다.
하나는 전화번호등과 같은 숫자외우는 방법인데 모든 숫자를 한글단어로 연관시키는 것이다. 즉, 1은 “ㄱ”, 2는 ‘ㄴ”, 3은 “ㄷ” 등이 된다. 예를 들면, 39 는 ‘돼지’가되고,
33은 ‘도둑’ 이 된다.
그러므로 어제 만난 거래처 담당자 전화번호 3933 은 그것을 기억학때 까지 외우고 외우고 외울 필요없이 그냥 연상시켜 ‘돼지를 훔친 도둑’ 이 바로 그 거래처 담당자였다’ 라고 기억만 한다면 그 담당자를 생각만해도 “돼지 훔친 도둑’ 이라는 그 기억은 생생히 그리고 즉각적으로 생각나게 되고 거기에 연관된 숫자를 계산만 해 내면 되는것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어떤 일련의 단어나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인데, 일단 내가 항시 잘 알고 있는 예를 들면 내 집안의 구조나 내가 잘 가는 길의 순서나 직장의 구조들을 일단 정하여 기억해 두는 방법이다. 나는 아직도 예전 한국에서 살던 집 구조를 정확히 알고 있다.
대문앞 – 집안옆 큰 나무 – 우물 – 큰 장독대 – 지하실 – 목욕실 – 부엌 – 마루 – 큰방 등등등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이 방법을 이용해 별건 아니지만 예를 들면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순서를 어려움 없이 다 외고 있다. 거의 30년전에 저장해둔 기억인데 언제든 쉽게 재생이 가능하다.
다시 망각에 대해 얘기하자면.
컴퓨터에는 케쉬이 (Cache) 라는 시스템이 있다. 정보를 하드드라이브 등에 저장으르 하는것과는 별개로, 자주 쓰이고 중요하게 활용되는 정보등을 아예 메모리안에 구조적으로 저장하여 즉각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하는 시시템이다. 이런 구조에선 컴퓨터가 일련의 연결 링크를 거쳐 저장장소에 접근하고 그 하드디스크에서 원하는 정보를 끄집어내 재생하는것이 아니라, 아직도 활성 상태에 있는 케쉬 메모리에서 직접 재생하는것이기 떔에 언제든 빨리쉽게 접근이 가능하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앨고리즘에 따라 다르겠지만 케쉬에 내재해 있는 정보들도 자주 안쓰거나 어떤 원리에 의해 priority가 떨어지면 다른 더 중요하거나 자주쓰는 정보들에게 있던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이경우엔 정보가 사라지는게 아니라, 하드드라이브에 그 정보가 그대로 남아있게 되지만, 케쉬 시스템에서는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론 좀 더 재생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하드접근에 문제가 생기면 정보가 available 하지 않을 수 도 있다는 말이된다.
망각이라는것도 결국 같은 원리라고 생각된다.
하나님께선 이 ‘망각’이라는 축복(?)을 만들어 놓으셔서 우리 인간이 스트레스 안 받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신것 같다. 10년전에 당한 그 끔찍한 교통사고를 10년 후에도 생생하게 후덜덜 떨리듯 기억하고 느끼게 된다면, 우리 인간은 절대 새로운 마음으로 그리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될것이다.
마치 Least Used First Out
(LUFO) 이나 Least
Priority First Out (LPFO) 같이 하나님도 옛 추억이나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망각’하게 하셔서 우리 인생의 바퀴를 게속 돌아가게 하시는것 같다.
Cache 에서 사라지는 데이터도 있지만 끝까지 남아 있는 데이터도 있듯이, 우리들 기억속에서 언젠간 없어지게 되는것들과 영원히 남게 되는 추억이 있을것이다.
나의 Cache 속엔 쓸데없는 기억들은 사라지고 많은 좋은 추억만이 남게 되기를 바란다. |